MBC 김영희 PD는 한국 예능 방송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1990년대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몰래카메라’와 ‘양심냉장고’ MBC ‘느낌표’의 ‘눈을 떠요’와 ‘책을 읽읍시다’ 등을 통해 공익 예능 프로그램의 새로운 장을 연 그는 2011년에는 MBC ‘나는 가수다’로 다시 한번 대한민국 예능계를 주름잡았다. 그리고 다음해 플라잉 PD(연출과 자문 역할을 하는 프로듀서) 자격으로 중국으로 건너간 그는 ‘나는 가수다’와 ‘아빠 어디가’의 중국판을 대성공시키며 새로운 한류를 이끄는 주역이 됐다. 한국 방송의 미래를 중국 시장 진출에서 찾고 있다는 그를 만나 예능계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Q. 보통 1%대가 넘으면 굉장히 성공한 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 중국에서 ‘나는 가수다’가 평균시청률 2%, ‘아빠 어디가’가 4%를 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김영희PD: 한국이란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여기서만 최선을 다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시장에 눈뜨고 나니 할 일이 참 많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나에게 이런 기회가 오는 게 아닌데 참 운이 좋게도 이런 세상을 접하게 된 것 같다. 그 곳에서 내가 필요한 존재고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어마어마한 운이 따른 것 같다는 느낌이다.
Q. 드라마와 예능 양쪽 모두에서 중국시장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대단한 것 같다.
김영희PD: 한국의 크리에이티브 능력을 굉장히 부러워하면서 따라오려고 큰 노력을 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인민대회 같은 곳에서 종종 언급하고 있기도 하고. 실제로 제작진을 만나보면 절치부심하며 한국의 방송제작 역량을 쫓아오겠다는 열망이 가득하다.Q. 그런 중국 시장을 보면서 이후 여러 계획도 세웠을 것 같다.
김영희PD: 지금은 새로운 구상을 해야 할 때인 것 같다. 그냥 가서 연출만하는 것 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뿌리내릴 수 있게 하는 데 관심이 많이 간다. 방송의 경우 한국시장에서 경쟁하고 먹고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다. 제한된 시장 안에서 여기서 계속 경쟁만 하게 되면 서로 마이너스다. 방송사들의 적자 구조가 심각해지고 있는 게 이런 점을 방증한다. 한국 방송을 위해 선배된 입장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게 중국 시장 진출의 길을 열어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Q. 구체적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나.
김영희PD: 공동제작이다. 반드시 공동제작으로 가야 한다. 한류 1세대가 ‘대장금’ 같은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방식이었다면 2세대는 ‘아빠 어디가’ ‘나는 가수다’ 같은 프로그램의 포맷을 판매했다. 세 번째로 해야 할 일은 공동제작 시스템을 구축하는 거다. 지금은 대부분 제작 하청을 외주를 받아 하고 있는 형태인데 그건 사실 중국에 제작 경험을 쌓아주는 방법이다. 진정한 공동제작은 공동기획을 해서 저작권을 함께 가져 매출이나 이익을 함께 나누는 방식이다. 중국 방송시장의 규모를 감안할 때 이런 방식이 앞으로 가장 미래지향적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판 ‘나는 가수다’
Q. 중국 시장 진출에 있어 가장 고려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김영희PD: 돈만 벌어오겠다고 하는 생각이면 절대적으로 실패한다. 방송을 통해 중국 사회에 기여하고 중국 사회의 발전에 도움을 주고 그 이익을 서로 나누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향을 찾고 각자의 정서나 문화에 상처를 주면 안된다. 중국은 중국이고 한국은 한국이다. 섣불리 ‘한류’라는 이름으로 우월적 지위를 행사하려해서는 안된다. 한류라는 말도 그래서 사실 위험성이 있다. 한류라는 말을 쓸수록 모두 경계하게 된다. 일본문화가 한국에 한창 들어오던 시기 우리가 반발심을 가졌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들 문화와 정서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 중국사회에 기여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선행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돈은 그 이후에 따라오는 거다.
Q. 김영희 PD는 예능 방송을 통해 사회에 어떻게 아름다운 변화를 이끌어올까란 고민을 한 사람이다. 중국에서도 그런 점을 고민하고 있나.
김영희PD: 중국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 경제적 격차가 심한 만큼 엄청난 잠재력도 지닌 사회다.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 잘 살게 됐지 않나. 방송을 통해 중국사회가 현재 겪고 있는 혼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한다. 우리가 10~20년 전에 겪었던 가치에 대한 혼란을 비슷하게 겪고 있는 중국 사회를 보며 그들의 의식과 문화 수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Q. 예를 들면 어떤 프로그램이 있을까.
김영희PD: ‘양심냉장고’의 중국판을 해보자는 의뢰를 많이 받았다. 아마도 급속한 자본주의적 변화를 겪고 있는 중국에 지금 현재 필요한 프로그램이 아닌가 싶다. 성룡에게도 김영희와 성룡이 함께 하는 ‘양심냉장고’같은 프로젝트를 제안받았는데, 어떤 형태이든 의미도 있고 인지도도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Q. 중국 시장의 가능성을 어디에서 느꼈나.
김영희PD: 현지 스태프들의 모습을 보면 한국의 제작역량을 배우고 싶어하는 열망이 눈에 가득차 있었다. 모든 스태프들이 다 그렇더라. 프로그램 하나를 제작할 때면 300~400명에 달하는 스태프들이 달려들어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하나하나 다 물어보더라. 뭔가 잘못된 점을 하나 지적하면 다음날 다 고쳐져 있다. 밤잠을 안자고 우리보다 훨씬 열심히 일한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배우려는 이들과 함께하면 충분히 중국에서 잘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 혼자 잘하면 되지’란 생각으로 가면 실패할 수 있겠지만 나를 믿고 따르고, 열정이 있고 가르쳐주면 전문적인 영역까지 할 수 있는 이들을 보며 한국에서보다도 더 잘할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
Q. 결국은 그곳에서도 사람을 통해 많은 감동을 받았나보다.
김영희PD: 맞다. ‘아빠 어디가’ 팀은 첫 방송 전에 함께 밤을 새며 편집했는데 방송이 나간 후 PD가 찾아와서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더라. ‘너무 감사하다’며 빨간 봉투에 돈을 넣어 주더라. 스태프들이 걷었다며 자신들의 마음이라고. 깜짝 놀라서 ‘받을 수 없다’고 했더니 중국에서는 이게 예의라며, 뭘 사드리려고 했는데 뭘 좋아하시는지 몰라 중국식대로 예를 차린 거라며 눈물을 글썽이더라. 하는 수 없이 받으면서 ‘다음부턴 이러지 말라’고 일렀는데, 그런 젊은 PD들의 진심을 보고 감동받은 순간이 많다.
Q. 사실 한국에서 건너간 PD가 처음부터 리더십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았을텐데.
김영희PD: 처음에는 경계심이 느껴졌다. ‘어디 잘 하나보자’ 하면서 나를 시험해보려하는 마음도 느껴졌다. 그런데 매일같이 중국 스태프들과 함께 밤을 새고 모든 부분을 하나 하나 직접 챙기고 지적하면서 알려줬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저 사람은 진짜구나’ 하는 눈빛으로 달라지더라. 서로 신뢰관계가 쌓이면서 프로그램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Q. 결국 해외 진출시 가장 중요한 건 신뢰관계를 쌓는 것이란 얘기인 것 같다.
김영희PD: 그렇다. 신뢰라는 건 다른 말로 하면 좋아하게 만드는 거다. 난 한국에서와 똑같이 했다. 설렁설렁하거나 낯설다는 이유로 ‘못해도 되지’란 생각은 없었다. 첫날 2시에 회의를 하러 갔는데 반 정도 왔다갔다 하고 2시 10분쯤 돼서야 모여들기 시작하더라. 바로 소리를 빽 질렀다. ‘내가 앉으면 여러분은 모두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인상을 완전히 구기면서 얘기했더니 모두들 깜짝 놀라 그 다음부터는 모두 정시에 앉아 있더라. 서로 모든 걸 함께 하면서 한 시즌을 보내고 나니 처음에는 B급이었던 제작진이 어느새 A급이 돼 있더라.
Q. 최근 중국으로 진출하는 한국 연출자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현지화 전략은 어떤 게 필요할까?
김영희PD: 한국 감독과 100% 신뢰관계가 없으면 현지화가 어렵다.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한국적인 구성을 중국에 맞게 조금 바꾸면 될거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한국과 중국의 정서가 융화가 돼야 하고 그 밑바탕에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지 않으면 어렵다. 예를 들어 ‘나는 가수다’ 중국판을 연출할 때 중국 출연자들은 옷도 울긋불긋하고 노란 조명을 쓰더라. 한국 정서로 볼 때는 유치하다고 느꼈는데 중국사람들은 노란색이나 빨간색을 행운이 온다고 해서 무척 좋아한다고 하더라. 그런 식의 정서를 이해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Q. 한국에서 프로그램을 연출할 때도 좀더 글로벌한 시각이 필요하겠다.
김영희PD: 국내 위주로만 보던 사고방식을 확장시켜야 할 것 같다. 중국에서도 통하고 세계적으로도 통할 수 있는 방안이 뭘까란 생각을 해야 한다. 지금 방식대로 프로그램이나 포맷 수출에만 집중한다면 중국은 3~5년 사이에 한국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때문에 그 사이에 단지 돈만 벌려는 시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공동제작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시스템이 정착되면 그 이후에도 그 시장과 함께 갈 수 있다. 최근 중국 정부에서 한국 프로그램과 관련해 규제 조치가 늘어나고 있는데 정부 차원에서 그런 부분을 풀어주도록 도와주는 면도 필요하다.
Q. 중국시장을 보는 데도 상당히 공익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게 느껴진다.
김영희PD: 한국 방송이 중국에 성공적으로 진출한다면 두 가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중국 시청자들에게 기여를 했다는 것과 또 하나는 한국 방송이 중국과 시스템을 교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인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감동을 주고, 동시에 한국에는 중국에 진출할 수 있다는 시스템을 줄 수 있다면 서로에게 윈윈일 것 같다.
Q. 예능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김영희PD만의 가치관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
김영희PD: 사는 데 돈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돈보다 훨씬 중요한 가치가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먹고 살만 하니 저런 말 한다’고 굉장히 건방진 얘기로 들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돈을 쫓아 무엇인가를 하지는 않았고,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뭔가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게 무엇인지는 각자가 찾아야 하는 것 같다. 돈에 너무 좌지우지되지 않고 무엇인가를 찾아간다면 프로그램도 인생도 훌륭하고 훨씬 더 가치있어지지 않을까란 생각은 한다.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제공.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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