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폰부스의 팀 이름을 우리말로 말하면 공중전화다. 지금은 스마트 폰이 세상을 지배하는 개인통신시대다. 디지털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공중전화박스는 생활 속의 친숙한 공간이었다. 이제는 사용하는 이가 거의 없어 애물단지가 되었지만 과거 공중전화박스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넘치는 비밀스런 공간으로 역할을 다했다. 70년대에 콧수염가수 이장희가 종일토록 동전을 바꿔가며 번호판과 씨름한 것은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라고 애타게 외쳤던 공간도 공중전화박스였다.

사람들은 그 작고 밀폐된 공간에서 사랑, 희망, 환희, 슬픔, 절망, 분노를 상대방과 소통하면서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했었다. 사라져가는 공중전화박스에 아롱 새겨진 애틋한 추억처럼 폰부스는 살아가면서 느끼는 자신들의 생각과 모두가 공감할 평범하고 솔직한 삶의 이야기를 음악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려는 밴드다. 신나는 록큰롤로 무장한 이들의 기본 정서는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자신들의 창작곡으로 현재의 이야기를 노래한다.
군 입대로 3년의 공백기를 가졌던 5인조 로큰롤 밴드 폰부스가 정규 3집을 발표하며 컴백했다. 이전의 노래들은 20대 시절의 열정과 불안한 미래에 대한 고뇌를 담아냈기에 위험수위의 가사내용이 많았다. 1집은 금지곡 하나 없는 착한(?) 앨범이지만 차 선루프에 목을 내놓고 가는 장면과 광화문 안전지역에서 연주하는 뮤직비디오 장면이 심의에 걸려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금지된 경험이 있다. 2집은 분노를 폭발하며 비판적 정서를 담았던 ‘리볼버(Revolver)’와 ‘슈퍼 몽키(Super Monkey)’가 ‘19금’ 판정을 받았다. 2집에 방황하는 정서가 가득했던 것은 군 입대를 앞둔 멤버들의 불안감이 원인이었다. 그래서인가.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멤버들과 3집에 수록된 노래들은 한결 여유롭고 편안해졌다.

봄기운이 화창했던 지난 4월 24일. 컴백앨범인 3집이 발표된 후 멤버들과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멤버 대부분은 어느덧 20대 청년에서 30줄로 접어드는 나이가 되었다. 인터뷰 내내 군 시절의 무용담과 신보 제작 이야기를 들려준 멤버들의 말 속엔 유쾌한 기운이 넘쳐났다. 밴드 멤버들이 갯벌에서 개구쟁이 아이들처럼 뒹굴며 노는 역동적인 피쳐사진은 오랜 전부터 꿈꿔왔던 이미지다. 성사된다면 국내 밴드역사에서 최초의 일이기에 꼭 한 번 시도해보고 싶었다.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폰부스 멤버들을 유혹하자 “군대의 추억을 되살려보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사전탑사 과정을 거쳐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강화도 동막해수욕장의 광활한 갯벌로 촬영장소가 결정되었다.


지난 5월 21일 오후. 멤버 5명이 비장한 모습으로 강화도 갯벌에 모였다. 햇볕은 따가웠지만 불어오는 바닷바람에는 차가운 기운이 상당했다. 2시간가량 진행된 폰부스의 갯벌 피쳐사진 촬영은 예상치 못한 한기로 인해 녹록치 않은 작업이었다. 폰부스는 고교 동창생 밴드다. 리드보컬 레이저(본명 홍광선), 트윈기타 김태우, 이상민, 베이스 박한은 경기도 하남에 소재한 한국 에니메이션고 동창생이다. 밴드결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인물은 레이저다. 중3때부터 밴드 활동을 꿈꿔왔던 그는 고등학교 입학 후 기타연주가 가능했던 김태우(별명 곰태우)와 여러 친구들을 끌어들여 유치뽕짝 밴드 ‘내려가’를 결성했다.
당시 김태우는 리드기타가 아닌 베이스를 쳤다. 고1때 학교축제에서 첫 공연을 한 후 뜨거운 반응에 한껏 자아도취에 빠졌다. 처음엔 멤버가 아니었던 박한은 “최악의 공연이었어요. 광선아 너 그때는 쪽팔렸어.(웃음)”라고 첫 공연에 대해 논평한다. 고2때 기타 치던 멤버가 학업을 이유로 밴드를 탈퇴해 오디션을 통해 이상민이 들어왔다. 이들은 밴드 활동으로 획일화된 교육의 틀에서 벗어나 더 없이 즐거운 학창시절을 만끽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실연을 당한 레이저는 자살을 계획했다. “타이레놀100알을 준비해 80알을 삼켰는데 나머지 20알은 배가 불러 복용을 중지했죠.(웃음) 지옥 같은 밤을 보내고 아버지의 조언대로 사리곰탕을 먹고 약기운을 해장했습니다. 그때 이런 병신 짓을 하지 말고 음악을 열심히 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레이저) 그때부터 영국밴드 오아시스의 음악에 빠져든 그는 밴드 내려가 멤버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며 ‘이렇게 근사한 음악을 하는 밴드를 제대로 해보자’고 설득했다. 하지만 김태우와 이상민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학업을 이유로 레이저의 제안을 거절했다. 설상가상 김태우는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우기 위해 미국 보스턴의 버클리음대로 유학을 떠나버렸다.

배신감을 느꼈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레이저는 밴드 결성에 호의적이었던 미국에 있던 김태우를 돌아오게 하고 이상민을 휴학시키는 음모를 꾸미며 본격적으로 밴드 결성 작업에 돌입했다. 2005년 서서울 생활과학고에 다녔던 드럼 최민석을 가세시켜 결국 5인조 밴드 폰부스를 결성했다. 밴드 결성을 주도했던 레이저는 광기를 가슴에 품으며 열정과 서정을 넘나드는 가창력을 구사하는 보컬리스트다. 팍팍했던 가정사로 인해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낸 그의 인생에 음악은 한 줄이 빛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part2로 계속)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나도 한마디!][텐아시아 뉴스스탠드 바로가기]
[EVENT] 뮤지컬, 연극, 영화등 텐아시아 독자를 위해 준비한 다양한 이벤트!! 클릭!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