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영

(part2에서 이어짐) 새로운 밴드결성을 결심한 이용원은 라인업 구축 작업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마음에 두고 있던 한진영을 만났다. “1996년에 마이앤트매리 공연을 한 번 보았는데 진영 형의 베이스 플레이가 마음에 들더군요. 우연하게도 형도 밴드활동을 쉬고 있어 제 연락을 받자마자 ‘아리가토’하더군요.”(이용원)

옐로우 몬스터즈의 베이스 한진영은 서울 종로구 계동에서 건설업을 했던 평범한 집안의 2남 중 막내로 1976년 2월 7일에 태어났다. 5살 때 이사한 서초구 잠원동에서 성장한 한진영은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1983년 초등학생 때, AFKN TV에서 방영하는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마이클 잭슨이 8관왕에 등극하는 장면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뮤직 비디오가 각광받았던 당시, 팝을 좋아했던 형을 통해 듀란 듀란의 영상을 본 이후 해외 뮤지션들의 음악영상들을 탐닉하며 음악에 빠져들었다. “프린스가 가장 파격적이었죠. 너무 멋있다. 저런 세계도 있구나! 놀라며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한진영)
한진영 어린 시절

경원중학교에 입학한 그는 헤비메탈 밴드 뉴클리어의 베이스 배찬우와 친해졌다. 배찬우는 어린 그를 강남구 신사동 화이트 합주실로 데려가 록 밴드의 존재를 알려준 음악 메신저다. “당시 LA메탈이 유행했어요. 머틀리 크루 (Motley Crue)의 ‘걸스 걸스 걸스’ 영상에 나오는 욕조가 달린 리무진을 보며 록 스타의 삶이 너무 매력적이란 생각에 찬우형 집에서 베이스를 배우기 시작했죠. 뒤에 앉아서 치는 드럼보다 베이스를 좋아했습니다. 솔직히 재미도 없고 울림도 몰랐지만 뭔가에 홀린 듯 매일 놀러갔습니다.”(한진영)


어린 마음에도 기타 치는 사람은 너무 많지만 베이스와 드럼은 희소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영특함을 보였던 것. 하지만 음악의 본질보다는 기타를 어떻게 매고 어떤 바지, 어떤 의상을 입으면 더 멋있을까 비주얼에만 관심을 두었던 철없던 시절이었다. “그때 뮤직 비디오를 보고 록 스타의 삶의 동경했고 멋진 여자와 술을 마시면서 근사한 차를 타면서 살 수 있을 거라는 허황된 꿈을 가졌습니다(웃음).(한진영) 당시 그에게 가장 센세이션 했던 국내 밴드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더블 마이같은 것을 입었던 H2O의 ‘걱정하지마’가 수록된 앨범. 음악에 점점 빠져들면서 멜로디가 있어 좋아했던 스키드 로우에서 시작해 파격적인 테스터먼트, 킹 다이아몬드, 슬레이어 쪽으로 취향이 옮겨갔다.
서울고등학교에 입학해 학교주변 당구장에서 마이앤트매리 정순용을 만났다. “당구장에는 엄청나게 늙어 보이는 애들이 있었는데 같은 학년이라 하더군요. 영동중학교를 나온 순용이는 서로가 기타를 치는 걸 알고 친해졌습니다. 친절하게도 이런 저런 음악 들려주고 CD를 빌려주어 다양하게 음악을 듣게 되었는데 대단한 친구라 생각했습니다.”(한진영) 음악 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지만 한진영은 전업뮤지션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 중3때 해외와는 달리 국내에서 록 스타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

순천향 대학 무역과에 진학한 한진영은 1학년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때 중학교 때 함께 기타를 쳤던 선배를 만나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면서 우울함을 이겨냈다. 대학 음악서클인 록밴드 동아리 크래인(학)의 오디션을 통과해 14기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13기 선배인 밴드 다운헬의 기타 노경환을 만났다. “대충 베이스를 둥둥하니까 통과되더군요. 당시 경환형이 블루스잼을 해야 된다며 선생님처럼 하드트레이닝을 시켰습니다.”(한진영) 대학 1학년 말에 정순용이 비틀즈 카피 밴드를 만들자고 연락이 왔다. 교회에서 드럼 치던 동창 이재윤과 보컬로 추승엽(현 밴드 악퉁 리더)이 합류해 1995년 가을 드럭에서 처음 연주를 시작했다.

마이앤트메리 시절
“처음엔 성문 아저씨가 금요일 날 프라이데이 프로젝트 그런 식으로 서라 했어요. 비틀즈, 지미 헨드릭스, 에릭 크랩튼 카피만 하니까 아저씨가 너희 8학군은 절대 안 되겠다고 해 3개월 만에 쫓겨났습니다. 그 후 보컬 음색과 음악스타일 이견으로 추승엽이 밴드를 나갔고 대신 토마스 쿡이 보컬을 맡아 이태원 블루스 클럽, 강남의 클럽 캐번에 섰습니다.”(한진영) 1996년 주인장 언니 세 명이 운영했던 모던 록 클럽 스팽글에서 매주 주말에 공연을 했다. 오리지널 곡을 쓰기 시작하며 밴드 명을 마이앤트매리로 정했다. “당시 원더버드 형들이 저희를 귀여워해 많이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강아지문화예술과 계약해 1999년에 1집을 냈습니다. 그땐 클럽 공연도 나름 열심히 했었죠.”(한진영)

당시 펑크계열이 강세였지만 점차 모던 록이 상승세를 타는 과도기였다. 1집은 좋은 반응을 얻어내 2001년 델리스파이스 김민규가 운영한 문라이즈에서 2집을 냈다. 2집 발표 후 드럼 이재윤이 유학로 이유로 탈퇴했다. 군 입대 문제에 봉착한 멤버들은 고민을 하다 활동을 중단하고 2004년 밴드를 재정비 한 후 3집을 발표해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앨범’을 받는 성과를 올렸다. 새로 영입딘 드럼 박정준은 한진영의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다. 여러 곳에서 러브콜이 왔다. “플럭서스와 계약해 4집과 5집을 냈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결국 3집을 능가하는 앨범을 만들기 어렵다는 생각에 멤버들끼리 세이 바이 했죠. 용쓰지 말고 다른 생각을 해보자고 쉬고 있을 때 이용원의 제안을 받고 옐몬에 합류했습니다.”(한진영)(part4로 계속)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사진제공. 한진영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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