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과천선’ ‘정의파’ 여검사 이선희 역으로 미친 존재감 과시 “계속 보고 싶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시크함과 쿨함이 장악한 요즘 우리 사회는 칭찬에 인색해지고 있다. 앞에 서 있던 리더만 잠시 주목받고 그 밑에서 성공을 이끌어간 조직원들의 영광은 묻히는 경우가 많다. 칭찬을 많이 받지 못하다보니 자신이 얼마나 우리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걸 깨닫지 못하거나 그 능력을 더 발전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연예계에서도 당연히 칭찬을 받아야 하지만 그 가치를 잘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오랫동안 한길을 걸어오며 최선을 다해왔지만 대중들의 눈길을 받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 연예기자로 오랫동안 일해온 나도 항상 대중들이 열광하는 스타덤을 좇는 데 바빠 그들의 열정과 예술혼을 조명하는 일을 게을리해왔다. 진심으로 반성한다.

사실 그들은 대중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묵묵히 걷고 있다. 집안 장식대에 트로피가 몇 개 없다 하더라도 항상 들어오는 대본을 최고의 상이라고 여기며 하루하루 촬영장에서 자신의 열정을 다 바친다. 대중들이 예상하는 것만큼 금전적으로 풍요롭지 않고 주위에서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내일 아침 촬영장에 갈 수 있고 또한 대중들이 매일 지켜본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한다.

요즘 나의 입에서 칭찬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이는 ‘연기파 배우’ 김서형이다. 그는 현재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극본 최희라, 연출 박재범 오현중)에 ‘특별 출연’ 중이다. 그래서 포털 사이트 김서형의 이름을 쳐보면 출연작 목록에 올라 있지도 않고 ‘개과천선’ 홈페이지에 김서형이 맡은 이선희 검사 역할에 대한 소개도 없다. 그런데 현재 양상이 첫회 보도자료에 나온 카메오, 특별출연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됐다. ‘정의파 여검사’ 이선희에 대한 반응이 뜨거워 예정돼있던 1~2회를 넘어서 극 중반부까지 등장하며 말 그대로 ‘미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단 한 장면이라도 등장해 남다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대중은 왜 이렇게 김서형이 연기하는 이선희 검사를 좋아하는 걸까? 오랜만에 보는 검사다운 검사였기 때문이다. 이선희는 뇌물과 로비가 통하지 않는 올곧은 인물로 진실과 정의를 찾는 데 최선을 다 하는 ‘진정한 검사’다. 승소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연수원 동기인 주인공 김석주(김명민)과는 지극히 대비되는 인물이다.

여배우를 성폭행한 재벌3세를 변호하는 김석주와 맞붙는 법정신에서 김서형은 ‘연기의 신’으로 불리는 김명민에 절대 밀리지 않는 카리스마로 팽팽한 연기대결을 펼쳐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대중의 희망을 투영한 신선한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해내며 비중을 키워가는 중이다. 순전히 김서형의 배우로서의 힘과 단단한 내공이 이룩해낸 ‘작은 기적’이다이선희 검사 캐릭터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 법정에서는 대쪽 같지만 사석에서는 인간적인 면모를 물씬 느낄 수 있기 때문. 재판 때는 철저하게 피해자의 입장에서 모든 사건을 바라보며 혼신을 다해 싸워준다. 그러면서도 사고 후 기억상실증으로 인간미를 되찾아가는 석주의 변화에 기뻐하면서도 걱정해준다. 모두가 꿈꾸는 정의로우면서도 인간적인 검사상이다.



김서형이 특유의 카리스마와 탁월한 발성으로 신뢰감이 물씬 가는 완벽한 검사상을 만들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TV 뉴스에 나오는 명예와 사욕만 찾는 검사들과 확연히 다른 언제든지 힘 약한 자의 손을 잡아줄 것만 이선희 검사의 모습은 짧은 순간이지만 대중들에게 대리만족을 제대로 느끼게 했다. 왠지 전국 어느 법원에선가 이선희와 비슷한 여검사가 있을 것만 같고 실존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희망을 갖게 만들었다.김서형은 항상 모든 작품에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호연을 펼쳤지만 그 노력과 열정만큼의 주목은 받지 못했다. 칼럼을 쓰기 위해 프로필을 뒤져보면서 수상기록이 전국적인 화제를 모은 SBS 일일극 ‘아내의 유혹’으로 연속극 부문 우수 연기상 하나뿐이라는 사실에 안타까움이 밀려들었다. 흔한 신인상도 조연 연기상도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그가 대중들을 즐겁게 해준 것보다 칭찬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1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흔들리지 않고 항상 최고의 연기를 펼치는 그의 투혼에 경외감이 들었다. ‘아내의 유혹’에서 매회 악다구니를 퍼부어대고 ‘샐러리맨 초한지’에서 회장을 목 졸라 죽이고 ‘기황후’에서 자결을 할 때 ‘악녀전문배우’였던 김서형의 서슬퍼런 눈빛과 허스키한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정의파 검사’ 이선희로의 변신이 더욱 놀라운 이유다.

김서형의 나이도 이제 불혹을 넘겼다. 톱스타가 되기를 바랄 나이는 아니다. 그러나 연기에 물이 제대로 오를 대로 오른 만큼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그를 배우로서 제대로 재조명해줄 작품이 이제 나와야만 한다. 그의 진가를 제대로 펼치게 해줄 감독이나 작가를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제작진에 따르면 김서형이 ‘개과천선’에 언제까지 나올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드라마 환경이 열악하지만 가장 좋은 점은 시청자의 반응을 실제 극에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매회 한 장면이라도 이선희 검사가 등장했으면 좋겠는 게 나의 바람이다. 법정신이 아니더라도 기억상실증으로 고군분투하는 김석주의 든든한 정신적 지원자가 돼도 좋고 법조인으로서 첫발을 뗀 후배 이지윤(박민영)의 든든한 멘토가 돼도 반가울 듯하다. 미국에서 잘된 드라마의 외전이 나오듯 ‘개과천선’이 잘돼 이선희 검사를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 드라마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글. 최재욱 대중문화평론가 fatdeer69@gmail.com
사진제공. 판타지오,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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