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에서 계속) 가정형편으로 인해 욕망을 억누르고 살았던 사춘기 소녀 프롬은 모든 것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그 결과, 타인은 물론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 누구에게 자신의 마음을 뺐기는 것조차 자존심이 상했던 독특한 아이로 변해갔다. 실제로 그녀는 24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연예를 해보았다고 한다.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 주변에서는 잘 모르지만, 엄마를 닮아 보수적인 구석이 있단다.

“저는 청소년기에 남들이 기본적으로 다 누리는 걸 누리면서 자라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참 잘 변하고 남자친구도 잘 갈아타던데 저는 그런 게 안 됩니다. 한 마음에 어떻게 두 명, 세 명을 담고 넣다 뺐다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제 마음으로 들어왔다 나가면 정리를 하면 되는데 마음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아직도 엄마랑 살고 있기에 영향을 많이 받아 가족주의가 강합니다. 이제야 제가 뭘 좋아하는 걸 알게 되었는데 이제는 생각하는 것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프롬) 정규 1집의 첫 곡 ‘도착’은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서울살이를 시작한 자신의 감정을 전했던 엄마와의 첫 전화 내용을 가사로 쓴 곡이다.
초등학교 때 그린 자작만화 ‘키다리 이야기’

어릴 때부터 만화 그리기를 좋아했던 프롬은 자신이 직접 이야기를 꾸며 그린 자작 만화책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걸 좋아했다. 친구들에게 자신을 인정받고 스스로에게도 자신감이 생겨나는 거의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 “어릴 때는 여자아이가 싸움을 잘하는 짱인 내용이거나, 사람이 살지 않는 섬에 갇혔는데 여자들은 다 못생겼고 남자들은 다 잘생겨서 벌어지는 공상 학원물을 주로 그렸습니다.(웃음)”(프롬)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하는 것 없이 불평불만만 늘어갔다. 힘든 가정형편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현실은 그녀를 자포자기 상태로 만들었다. 만화그리기와 더불어 이런 저런 노래를 불러 공 테이프에 녹음하는 작업은 큰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보여준 자작 만화와는 달리 녹음해 둔 자신의 노래는 무슨 일인지 들려주지 않았다. 아마도 타인에게 공개하기엔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였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프롬은 공부는 하지 않으면서 교육제도에 불만이 많은 대책 없는 몽상가로 변해갔다. 어느 날, 이상은의 음악을 듣고 그녀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상은처럼 자기 목소리를 분명하게 내는 싱어송라이터의 노래는 감동이었어요. 그때부터 내 이야기가 담긴 음악을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습니다. 노래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가득했지만 따로 배울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되질 않아 10시간 동안 학교에서 원하지 않는 수업을 듣는 자체는 고역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입으로 흥얼흥얼 거리면서 멜로디가 떠오르면 수업시간 내내 가사를 붙이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프롬)

만화 소재도 자연스럽게 변했다. 중학교 때까지 현실과는 동 떨어진 공상 학원물을 주로 그렸던 그녀는 친한 친구들이 가수로 데뷔하거나 아나운서, 보석디자이너가 되는 구체적인 현실적 내용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제가 그린 만화를 선물했는데 미술을 전공한 친구 아빠가 제 만화를 보고 미술을 하는 친구냐고 물더군요. 집이 어려워 배우질 못하다고 했더니 제 미술학원비를 대주시겠다고 했어요. 미술 쪽은 학원비가 너무 비싸 매달 받는 게 부담스럽고 또 마음이 변하실까봐 강습료가 가장 싼 연기학원을 택했습니다. 연기를 배우면서 연극영화과 입시를 준비해지만 제가 진짜 원한 것은 가수였죠.”(프롬)

부산 동서대 공연예술학부에 합격했지만 대학생활이 정서적으로 맞지 않아 그만두었다. “대학은 모든 것이 돈과 연결되는지라 스트레스를 받아 그만두고 디자인 사무실에서 간단하게 청소하고 돌솥 밥하는 퓨젼 식당에서 주차 안내, 사람을 구한다기에 울산백화점까지 가서 진짜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이제 20살이 되었는데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뭔가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프롬)

음악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던 그때, 작곡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실용음악학원에서는 뭘 가르치는지 궁금해 주변 사람들한테 조언을 구했다. “이왕 음악을 하려면 부산에서 겉도는 것보다 서울로 올라가라고 하더군요. 서울엔 묵을 고시원도 많고 일자리도 많아서 어떻게든 밥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당시 제 생각엔 가수들은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하는 줄로 생각했기에 서울에 있는 기획사에 들어가면 내 의지대로 가사를 쓰고 멜로디를 만들어 앨범을 발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프롬)


기대감이 부풀어지자 현실에서 벗어나 뮤지션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해졌다. 결국 아르바이트로 한두 달 정도 생활할 비용을 마련해 22살 때 혼자서 서울로 올라왔다. 구체적인 목표 없이 막연하게 ‘음악 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살아보겠다.’고 상경했기에 정착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당연 첫 서울사리는 고단했다. “친구처럼 지내왔던 가족과 한 번도 떨어져 살아 본 적이 없어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 처음 살았던 곳은 이태원입니다. 늦은 밤 귀가하면 외국남자들이 따라오기도 해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때 보호해 줄 사람 없이 이제는 혼자서 모든 걸 해야 되는 고립된 현실을 절감했습니다. 당황하고 구르는 일의 연속이었던 고생스런 그 시절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네요.”(프롬)(part4로 계속)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사진제공=프롬. 디오션 뮤직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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