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하숙

케이블채널 tvN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는 작년에 방송된 ‘응답하라 1997’(이하 ‘응칠’)의 확장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주요 등장인물의 나이는 열여덟에서 스물로, 한 집에 머무는 사람의 수는 하숙집이라는 설정에 맞게 성나정(고아라)의 가족을 비롯해 쓰레기(정우), 칠봉이(유연석), 삼천포(김성균), 해태(손호준), 빙그레(바로), 조윤진(도희), 여섯이나 더 늘었다. 엄마 이일화(이일화)의 넉넉한 인심 역시 팔도 각지에서 모여든 학생들로 인해 몇 배는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서로 다른 성장 배경과 다양한 성격을 지닌 지방출신 학생들이 이일화의 신촌하숙에 모였다. “신촌행 열차는 언제 와요?”라며 초조하게 지하철을 기다리던 삼천포처럼, 서울의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이들이 함께 살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이곳을 통해 펼쳐진다. 식탁에 빙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웃고 울고 떠들며, 청춘의 한 시절을 공유하며, 그렇게 한 식구가 되어 간다. 생전 처음 만난 이들을 가족처럼 만들어준 신촌하숙은 세트장이 아닌 실재하는 집으로, ‘응칠’에서 성시원(정은지)의 집 후보 중 하나였던 곳이다. 장독대가 놓인 마당과 테라스가 있는 건 물론, 넓은 거실과 여러 개의 방이 있어 1990년대 하숙집 분위기를 고스란히 재현해낼 수 있었다. 집안 곳곳에는 당시의 화장품부터 카세트테이프, 달력, 잡지 등도 배치해 극의 디테일을 살렸다.

바쁜 일상 탓에 집에서 얼굴 한 번 제대로 마주할 수 없는 2013년의 가족들. 함께 모여 앉아 숟가락을 들고, 좋아하는 드라마의 오프닝 곡을 들으며 온몸으로 리듬을 타는 것 같은, 지극히 소박하고 일상적인 일은 이젠 결코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1994년의 신촌하숙은 어쩌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평범한 일상에 대한 그리움일지도 모르겠다.

o 신촌하숙 실제 위치는 드라마의 몰입도를 위해 종영 후에 밝히는 것으로 한다.
연세대학교 연희관

공강 때면 잔디밭에 드러누워 아무 걱정 없이 얼굴 위로 쏟아지던 햇볕을 만끽하던 시절이 있었다. 가끔은 ‘청춘’이라는 이름을 핑계 삼아 벤치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단잠에 빠져들었고, 동아리 선배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좋아해요”라고 짓궂게 외치기도 했다. 스무 살. 스펙이니, 취업이니,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열아홉이라는 불완전한 숫자와 입시 스트레스에서 벗어났다는 것에 그저 행복했던 때였다.

‘응사’에서 풋풋한 스무 살의 감정이 그려지는 곳은 서울 신촌의 연세대학교다. 1994년, 농구스타가 여느 연예인보다 인기가 더 많았던 그때, 소녀 팬들에게 그야말로 동경의 공간이 되었던 곳이다. ‘응사’의 주인공들은 이곳에서 신촌하숙 못지않게 많은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우정을 다져간다. 극에 주로 등장하는 곳은 연세대학교의 연희관이다. 해태와 삼천포를 비롯해 컴퓨터공학과 학생들이 수업을 받는 곳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사회과학대학 건물이다. 여름이면 초록빛 담쟁이 덩굴이, 가을이면 붉은 단풍이 건물을 휘감아 아이비리그의 대학을 연상시킨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외관 덕분에 영화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 등의 촬영장소로 등장하기도 했다.

오래전 스무 살 시절을 지나온 이들이 ‘요즘은 캠퍼스에 낭만이 없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언제부턴가 고3보다 더한 고난의 시간을 겪고 있는 스무 살은 토익 점수를 올리기 위해, 이력서에 한 줄을 더 채워 넣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낭만이란 말을 꺼내는 것조차 사치인 것으로 치부될 지 모르는 지금, ‘응사’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1994년의 캠퍼스를 통해 낭만 그 자체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o 연세대학교 지하철 2호선 신촌역 2번 또는 3번 출구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연세로 50 / 문의: 1599-1885)

글,사진. 이정화 lee@tenasia.co.kr
사진제공.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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