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내한한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그녀도 결국 피할 수 없는 입국심사대에 올라야 했다

한국인들은 이제 내한스타들에게 한국과 관련된 질문을 건네는 것을 촌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지난 3일 내한한 할리우드 스타,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기자회견에도 어김없이 “좋아하는 한국 영화는 무엇인가, 혹시 좋아하는 K-POP이 있나”라는 질문이 나왔다.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싸이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면서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그의 노래 ‘강남스타일’을 언급했다. 그러나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그는 한국가수라기보다 국제가수이지 않나”라고 덧붙였다.조금 다른 질문이긴 했지만, 아만다 사이프리드보다 앞서 봉준호 감독의 첫 해외프로젝트 ‘설국열차’의 출연 배우로 한국을 찾았던 틸다 스윈튼은 기자회견 중 배우들을 국적으로 구분짓는 내용의 질문을 여러차례 받았다. 그녀는 “국적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길 바란다. 예술하는 사람으로서 누가 어디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설국열차’ 촬영장에서 모든 사람들은 가족이었고, 봉준호는 덩치가 큰 아이 같은 가장이었다. 우린 서로에게 영감을 줬다. 이젠 국적 얘기는 그만했으면 좋겠다”라고 기자들에게 일침을 가한 적이 있다.

두 스타들의 답을 뜯어보면, 국적과 관련된 질문이 이들에게 그리 달갑지 않은 것은 사실인 듯 하다.

한때 한국 대중은 “불고기 좋아요!”, “김치 맛있어요!”라는 해외스타의 한마디가 신기했다. 여기에 더해 봉준호, 박찬욱, 김기덕 감독을 좋아한다며, 이들의 영화를 흥미롭게 보았다고 이야기하는 해외 스타들이 나오면 ‘친한파’ 스타라며 찬양하기 바빴다.이런 광경에 대중이 열광하자, 내한스타들의 기자회견마다 “좋아하는 한국감독은 누구인가, 어떤 한국영화를 좋아하나”라는 질문이 어김없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 질문을 받은 스타가 한국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 한국의 영화감독과 한국 가수들을 잘 알고 있다면 이런 질문은 충분히 환영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이런 류의 질문에 나온 대답들은 우리의 기대치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김치와 불고기, 그리고 봉준호, 박찬욱, 김기덕. 최근에는 싸이까지 추가됐다.

싸이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기 전에는 누구도 K-POP을 물어보지 않았다는 점은 이 질문이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를 시사한다. 결국 사실상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이른바 ‘답정너’(답은 정해져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돼라는 뜻의 인터넷 용어)류의 질문인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시장에 영화나 여타의 것을 홍보하기 위해 왔다면 한국에 대한 기본지식을 공부하는 것이 매너 아닌가라는 시선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강요할 수 있는 문제는 또 아니다. 한국팬들과 교감하는 과정에서 매너를 지키지 않는다면 이를 지적할 수 있겠지만, 한국영화나 K-POP은 지극히 취향의 문제 아닌가.결국 이런 질문들의 속뜻을 잘 알고 있는 대중이 불편한 감정을 표출하게 됐다. 인터넷에서는 “김치에 불고기, 그리고 이제 ‘강남스타일’을 이야기해야만 진정한 한국 입국심사를 통과한 것이다”라며 이런 류의 질문들을 ‘입국심사’라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할리우드에 진출한 이병헌이나 배두나의 경우를 보자. 외신과 이들이 나눈 인터뷰를 살펴보면 이병헌의 경우 “영어로 연기하는 것과 생활 속에서 영어를 이야기하는 것의 차이점은 무엇이며, 어떤 것이 더 편한가” 혹은 “한국에서 영화를 찍는 것과 미국에서 찍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류의 질문을 받은 사례는 있다. 그러나 “좋아하는 미국 감독은 누구인가”, “좋아하는 미국 영화는 무엇이며, 미국 노래는 또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은 없었다.

내한한 틸다 스윈튼(위 오른쪽)이 봉준호 감독과 이야기를 하고있다. 톰 히들스턴(아래)도 올해 내한했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을 찾은 해외스타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톰 크루즈는 무려 6번이나 내한했고, 아놀드 슈워제네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드웨인 존슨, 브래드 피트 등 세계적 스타들이 모두 한국을 다녀갔다. 그것 자체가 이미 한국시장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커졌음을 증명하는 사례다. 김치와 불고기를 말하는 해외스타가 신기했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런데도 여전히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는 이들 모두에게 우리는 봉준호, 박찬욱, 김기덕의 영화를 즐겨보고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춤을 추곤한다는 답을 기대할 것인가.

습관처럼 던진 질문이지만, 그 질문을 받는 이들은 답을 강요받는 다는 것.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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