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의 원년멤버인 전인권, 최성원, 주찬권이 들국화의 이름을 걸고 다시 뭉쳐 27년 만에 내놓는 새 앨범 ‘들국화’.
들국화를 거쳐 간 뮤지션은 하나의 ‘패밀리’라 할 만큼 적지 않다. 음악전문가들이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1위에 오른 들국화 1집은 1985년 전인권, 최성원, 허성욱, 조덕환 4인 체제로 만들어졌고, 최구희, 주찬권이 연주자로 참여했다. 이듬해에는 나온 2집은 전인권, 최성원, 허성욱, 주찬권, 최구희, 손진태를 정식멤버로 해서 만들어졌다.2집까지 발표한 들국화가 와해된 이후 전인권은 허성욱과 ‘1979~1987 추억 들국화’를 내놨다. 이 앨범에는 최성원과 주찬권이 세션으로 참여했으며, 최성원은 여분의 들국화 곡을 옴니버스 앨범 ‘우리 음악 전시회 Ⅱ’에 실었다. 이후 전인권은 들국화 재건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1995년에 새로운 연주자들과 들국화 3집을 발표하기도 했고, 최성원은 나름의 창작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이쯤 되면 어떤 앨범이 정확히 들국화의 앨범이라고 칼로 딱 잘라 구분 짓기가 쉽지 않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번에 나온 ‘들국화’가 원년멤버들의 손길로 만들어졌다는 것. 들국화란 이름을 걸고 신보가 나온 것은 무려 27년 만이다.
‘들국화’는 21곡이 두 장의 CD에 담겼다. CD1은 들국화의 신곡 다섯 곡과 조동진의 ‘겨울비’, 김민기의 ‘친구’의 리메이크 곡, 그리고 들국화가 평소 공연에서 자주 불렀던 홀리스의 ‘He Ain’t Heavy, He’s My Brother’와 롤링 스톤즈의 ‘As Tears Go by’의 라이브 버전이 실렸다. CD2에는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제발’, ‘매일 그대와’,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등 12곡의 들국화 리메이크 곡이 담겼다.
들국화는 지난 4월 공연에서 신곡 ‘걷고, 걷고’와 ‘노래여 잠에서 깨라’를 미리 공개한 바 있다. 당시 미완성의 곡을 라이브에서 먼저 공개한 것은 역시 언더그라운드에서 명성을 쌓은 들국화다운 선택이었다. 앨범에 실린 완성형의 두 곡은 각각 다른 모습의 들국화다. 전인권이 만든 ‘걷고, 걷고’는 ‘행진’과는 또 다르게 가슴을 마구 두드리는 곡으로 들국화 특유의 서정을 간직한 또 하나의 명곡이라 할만하다. 전인권과 최성원이 최초로 공동 작업해 만든 ‘노래여 잠에서 깨라’(최성원 작곡, 전인권 작사)는 드라마틱한 스케일을 지닌 곡으로 변화무쌍한 진행 속에서도 들국화의 본연의 멜로디가 잘 살아있는 곡이다.
‘행진’이 20대 후반 전인권을 담은 노래라면 ‘걷고, 걷고’는 50대 후반의 전인권이 바라보는 그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라고 한다. 각종 약물 중독에서 벗어난 후 아침에 일어나 가족들과 만나고 노래하고 생활하는 것이 너무나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어 만든 노래. 이와 함께 ‘재채기’, ‘하나둘씩 떨어져’, ‘들국화로 필래’가 신곡으로써 들국화가 가지는 팝의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주찬권이 곡을 쓰고 전인권이 가사를 붙인 노래 ‘하나둘씩 떨어져’는 후렴구의 가사를 쓰지 못하던 전인권이 주찬권의 죽음 이후 오랜 친구인 주찬권에 대한 마음을 담아 완성한 곡이다. 이 노래를 부르는 전인권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젊은 시절을 연상케 할 정도로 힘이 실려 있다.
들국화의 팬들이라면 행여나 새 앨범의 곡들이 한국 대중음악의 가장 찬란한 순간들로 평가받는 기존 명곡들에 누를 끼칠까 걱정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곡들은 들국화의 명성을 이어가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으며, 오히려 품격을 더하고 있다. 특히 최성원과 주찬권이 듀엣으로 노래한 ‘들국화로 필래’는 들국화가 아직도 이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조동진이 80년대 초에 발표했던 노래 ‘겨울비’는 조동익이 30년 전 술자리에서 전인권이 부른 것을 듣고 조동진 버전과 너무 다른 느낌이 난다며 나중에 꼭 다시 불러 달라 했다고 한다. 이번 앨범에서 약속을 지킨 셈이다. 이번 앨범에 싣게 된 ‘친구’는 원작자 김민기에 대한 헌사(獻辭)이자, 들국화 멤버로써 먼저 떠난 허성욱, 주찬권에 대한 헌시(獻詩)라고 한다. 이미 녹음이 완성된 곡이었으나, 주찬권의 죽음 이후 전인권이 동일한 반주 위에 더욱 감정을 보태 다시 불렀다. 살아있는 들국화의 목소리로 다시 숨결을 불어넣은 노래.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포츈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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