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공연 중인 성두섭과 김지현.
1983년 어느 날, 자신의 우산 속에 뛰어 들어온 태희에게 한 눈에 반한 인우. 그날부터 가슴앓이가 시작되고 곧이어 동화같은 그녀와의 사랑이 전개된다. 전공수업을 빼먹어도 친구들한테 놀림을 당해도 그녀를 만난다는 것만으로 희희낙락하는 인우. 하지만 군입대 통지서가 날아들면서 가슴 아픈 이별을 맞이한다. 그로부터 십여년의 세월이 흘러 고등학교 교사가 된 인우. 이젠 처자식이 있는 가장이지만, 아직도 태희를 잊을 수 없다. 그런 그에게 아련해진 첫사랑을 일깨우는 사건이 터졌으니…(중략)흥행몰이와 함께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은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2001). 가을 정취가 물씬 풍겨지는 이 작품이 기나긴 창작과정을 거쳐 다시금 뮤지컬로 탄생했다. 혹시나 하는 일말의 우려 속에 무대를 지켜본 첫 느낌은 그야말로 명불허전!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극이 전개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는 원작의 분위기가 뮤지컬에서도 잘 살아났기 때문이다.아름답지만 충격적인 사랑이야기
영화건 뮤지컬이건 이 작품을 보고나면 좀처럼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왜 그럴까?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극 전체 분위기를 주도하는 의미심장한 대사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극 초반 “여기서 뛰어 내려도 끝이 아닐 것 같아”와 후반부 “사랑은 풍덩 빠지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알아보는 거죠”, 이 두 대사야말로 극적 반전과 미스터리한 서사 구조 그리고 충격적인 결말 모두를 상징한다.
혹여 현빈을 향한 인우의 사랑을 동성애적 관점으로 해석한다면, 작품이 의미하는 바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동성애는 말 그대로 동성 간의 사랑을 의미하며, 작품 속 인우는 첫사랑을 운명으로 간주하고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던져버렸다. 사회적 통념도 소용없고, 안정적인 가정마저 일탈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건 목숨을 넘어선 아름답지만 헤어 나오기 어려운 사랑의 굴레 때문이다.영화와는 색다른 매력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공연 중인 성두섭과 윤소호.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요인 중 하나로 인우와 태희 역을 맡은 이병헌과 고(故) 이은주의 열연을 꼽을 수 있다. 부연하면 전작 ‘내 마음의 풍금’에서 멜로물 주인공으로서의 물오른 연기력을 과시한 이병헌은 어느 정도 예상했으나, 이은주는 기대 이상이었다. 인우는 물론이고 관객마저 그녀의 묘한(?) 매력에 스크린 속으로 빠져들 정도니 말이다.뮤지컬로 탄생된 ‘번지점프를 하다’는 영화와는 색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남녀 주인공역을 맡은 성두섭과 김지현의 안정적인 연기도 좋았고, 특히 인우의 절친 대근 역의 임기홍의 팔색조 연기를 칭찬하고 싶다. 이번 작품뿐만 아니라 전작 ‘금발이 너무해’, ‘젊음의 행진’, ‘살짜기 옵서예’ 등 일단 그가 등장하면 무대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다. 뮤직넘버도 원작 영화의 감성을 잘 살린 것 같다. ‘그게 나의 전부란 걸’, ‘혹시 들은 적 있니’, ‘그대 인가요’를 비롯한 곡들 대부분이 뮤지컬 특유의 중독성은 약하지만 몇 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는 특성이 있다.한 가지 아쉬운 건 러닝타임이 다소(?) 길다는 것. 이러한 배경에는 원작인 영화를 너무 자세히 묘사해서인데, 커튼콜을 포함해 거의 3시간에 달한다. 오히려 원작의 일부 내용을 생략하거나 뮤지컬의 특성을 살려 수정했다면 더욱 긴장감있게 극이 전개됐을 것 같다. 이 작품을 본 관객 상당수가 이미 영화를 봤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씨네컬은 시네마(Cinema)와 뮤지컬(Musical)을 합성한 말로, 각기 다른 두 장르를 비교 분석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글. 문화평론가 연동원 yeon042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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