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롤러코스터’의 관심은 하정우다. 믿고 보는, 신뢰 가득한 배우 하정우의 첫 연출작이란 점에서 일찌감치 관심이 쏠렸다. 대중은 물론 언론도 마찬가지다. 배우가 아닌 감독 하정우는 어떨지 궁금한 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감독한테 관심이 쏠리면 상대적으로 배우에게 향할 관심이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롤러코스터’ 주연을 맡은 정경호는 어떤 생각일까.

극 중 ‘욕쟁이’ 한류스타 마준규 역을 맡은 정경호에게 있어서도 ‘롤러코스터’는 중요한 작품이다. 그는 올해 드라마 ‘무정도시’로 대중을 만났지만 사실 군 제대 후 처음 선택하고, 다시 카메라 앞에 선 것은 ‘롤러코스터’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하정우에 관심이 쏠렸다면 영화를 보고 나선 정경호에게로 슬며시 관심이 옮겨간다. 미치도록 카메라 앞에 서고 싶었던 열망을 쏟아냈고, 오래전부터 함께 작업하고 싶었던 동네 형이자 대학 선배인 하정우와의 작업은 굉장히 즐거웠다. 거침없이 욕을 쏟아내고, 홀로 원맨쇼를 펼치는 극 중 정경호의 모습이 꽤 신선하다. 제대 후 처음 현장에 나섰지만, 하정우를 비롯한 친한 선후배 덕분에 어색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이처럼 정경호는 누구보다 재밌게 ‘롤러코스터’에 빠져 들었다. 스크린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Q. 사실상 군 제대 후 첫 작품이다. 드라마 ‘무정도시’가 올해 먼저 방영되긴 했지만 선택하고, 촬영을 마친 건 ‘롤러코스터’가 처음이다. 제대 무렵 여러 제안이 있었을 텐데 ‘친한’ 하정우라서 덜컥 선택한 건 아닌가 싶다.
정경호 :
제대하기 전 휴가를 나와서 술자리를 가졌다. 그때 작품 이야기하다가 정우 형이 ‘영화 준비하고 있으니까 그거 보고 결정해라’라고 했다. 전역하고 나서 시나리오를 봤는데 재밌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우 형과의 작업이 그리웠다. 그동안 몇 차례 작업할 기회가 있었지만, 서로의 일정으로 인해 할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봤던 형이고, 친하다는 것을 떠나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일하고 싶은 게 컸다. 또 해보지 못했던 역할이었고. 이런 것들이 다 절충된 것 같다.Q.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577 프로젝트’처럼, 배우들끼리 호기심으로 모여서 영화 한 편 찍은 것 같은 느낌이다.
정경호 :
어떤 기자분 말이 ‘배우 하정우는 많은 사람의 인정을 받았지만, 감독은 모를 일’이라고 하는데 그것보다 같이 하고 싶었던 게 더 컸다. 그리고 영화를 찍으면서는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게 됐다. 3개월 연습하고, 1개월 촬영했던 시간이 특별했고, 이런 시너지들이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첫 연출에 나선 하정우 감독의 열정, 2년 동안 카메라 앞에 서고 싶은 내 갈망과 욕심 등이 잘 맞아떨어졌다.


Q. 그래도 제대 즈음에 들어왔던 작품 중 굉장히 매력적인 건 없었나 보다.
정경호 :
좋고 나쁨은 없었다. 정말 하고 싶었던 건 없었지만, 상대 비교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냥 막연하게 (‘롤러코스터’를 하면) 즐거울 것 같았고, 한풀이하고 싶었다. 그걸 받아줄 사람이 하정우라고 생각했고, 실제 그렇게 했다.

Q. 한풀이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
정경호 :
한풀이라는 것보다 2년 동안 카메라 앞에 서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건강하게, 빨리 나가서 좋은 작품을 하고 싶다는 의미다. 그래서 첫 ‘OK’를 받았을 때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Q. 하긴 처음 촬영 들어갔을 때 기분이 남달랐겠다.
정경호 :
촬영에서는 오히려 아무 느낌을 받지 못했다. 촬영 전 석 달이란 만남이 있었다. 촬영 때 밀도 있게 찍기 위해 연습도 하고, 회의도 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한정된 공간이기 때문에 지루함을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대사들도 빠르다. 그런 것들에 대한 연습이 있었고, 이런 연습이 보탬이 됐다. 그래서 이 과정이 더 즐거웠던 것 같다.

Q. 동네 형이라고 표현하던데, 친한 하정우와 작업한다는 느낌은 어땠는가. 앞서 말했듯 그렇게 같이 작업하고 싶었던 형 아닌가.
정경호 :
사실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자칫 연기 못하는 동생으로 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래서 더 열심히 한 것도 있다. 10년간 막내였지만 더 막내로 임했다.

Q. 친해서 좋은 것도 있지만, 오히려 친해서 얼굴 붉히는 경우도 있다. 친해서 불편했던 것은 없었나.
정경호 :
얼굴 붉힐 일이 없는 게 당연하다. 아무리 친하더라도 학교 다닐 때 기수가 무서운 거다. 초롱이라는 승무원 역의 김재영 형이 제일 무서웠다. 그리고 단발머리 의사 역의 이지훈이 실세였고, 정우 형과는 기수 차이가 많이 난다. 동네 형으로 지니더라도 지켜야 할 것은 지키는 게 있다. (참고로, 정경호, 하정우, 이지훈, 김재영 등 모두 중앙대 연극영화과 선후배 사이다.)Q. 그래도 하나만 꼽아보자. ‘어~ 내가 알던 하정우와 다르네’ 했던 게 정말 하나도 없는 건가.
정경호 :
내가 멍한 상태로 있을 때, 정우 형이 와서 조근조근 말해준다. 그런 걸 보면서 카메라 앞에 섰을 때 그 정신 상태를 (정우 형이) 가장 잘 알겠구나 싶었다. 왜 넋 놓고 있고, 정신 안 차리고 있는지 말이다. 그런 거에 대한 믿음이 더 컸다. 너무 오래돼 다르게 보였던 건 정말 없다. 신인 감독 하정우와 일을 같이해 본 기분이 어떠냐고들 물어보는데 공식적인 자리는 감독과 배우 아니겠나. 정말 석 달 전부터 매일같이 모여서 같이 만들어가는 존재였다. 물론 스트레스는 그 누구보다 많았겠지만.


Q. 오랫동안 옆에서 본 배우 하정우, 감독 하정우, 인간 하정우를 말해 달라.
정경호 :
정우 형을 데리고 올까요. (웃음). 선배 하정우는 몰입도가 굉장하고, 열정이 보이는 대단한 배우다. 인간 하정우는 어렸을 때 작품에 대해 고민도 하고, 집안 사정 이야기도 많이 했던 동네 형이다. 그리고 다양한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자기만의 색깔이 독특하고, 창의적이다. 감독 하정우는 내가 느낀 바로 누구보다 배우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감독이다. 배우가 감정과 감성을 표현해야 되는 입장이라면, 그걸 잘 볼 수 있는 첫 번째 관객은 감독이다. 그 첫 번째 관객이 배우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것 같다.

Q. 하정우 감독 이야기는 그만하고, 영화 이야기에 들어가 보자. ‘롤러코스터’는 다분히 연극적인 느낌이 강했다. 대사도 많고, 홀로 연기하는 장면이 많다. 그러면서도 캐릭터들끼리 치고받는 앙상블이 계속된다.
정경호 : 연습은 연극 올리다시피 했다. 극 중 인물 중 잘 생각해보면 마준규가 제일 정상적인 인물이다. 주변 캐릭터는 모두 만화적인 캐릭터다. 그래서 이 하모니를 어떻게 하면 좀 더 유쾌하게 할 수 있을까, 한정된 비행기 안의 공간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수많은 대사를 유쾌하게 전달할까 등에 집중했다. 시추에이션 코미디일 수 있지만 누구보다 감독님이 상업적인, 대중들의 마음을 잘 잡아냈던 것 같다.Q. 그러고 보면 비행기 안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황당하긴 하다.
정경호 :
잘 보면 마준규는 개인기로 웃기지 않는다. 그래서 연습과정이 정말 재밌었다.

Q. 욕하는 장면은 꽤 웃겼다. 그리고 굉장히 찰지게 욕을 잘하더라. 기사를 보니 하정우한테 욕을 배웠다고 하던데.
정경호 :
특별히 배우진 않았다. 처음 아이한테 욕하는 장면은 마준규 캐릭터를 보여주는 첫 번째 시작인데 상스럽기보다는 위트 있고, 재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아이한테 상처는 조금 줬으면 좋겠고. 되도록 잘 쓰지 않는 욕이었으면 했고, 무엇보다 내 입에 맞는 욕을 찾았다.

Q. 영화 속에서 톱스타로 나오는데 그 행동과 말투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실제 톱스타들의 모습과 상상이 더해진 것 같다.
정경호 :
비행기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건 내 경험과 정우 형의 경험을 섞었다. 그리고 꼭 비행기 안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일어난 일들을 가져온 것 같다. 실제 포장마차에서 내가 출연한 영화의 투자자 회장님을 만나기도 했다. 물론 영화처럼 행동하진 않았다. (웃음). 그리고 실제 스타들의 모습도 당연히 어느 정도는 있지 않을까.
Q. 극 중 톱스타 마준규는 팬들한테 잘해주다가도 순간순간 욕설이 나온다. 영화를 본 대중들은 실제 스타들도 ‘마준규처럼 행동할 거야’라고 생각할 것 같다.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욕하고.
정경호 :
그걸 노린 거다. 저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말이다. 팬들에게 가식적인 행동을 하고 연예인 병에 걸린 사람들도 있는데 그걸 표현하니까 웃기고 재밌었다. 어쭙잖게 나 자신이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게끔 오해를 하면 잘 표현된 거다.

Q. 더 나아가 ‘실제 정경호가 그래’라고 생각하면 어쩌려고 하느냐.
정경호 :
그런 행동만 보여주고 끝냈으면 몰라도, 저건 캐릭터라도 생각할 거다.

Q. 연예인과 매니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극 중 마준규는 매니저를 함부로 대하는데 실제 정경호는 어떤가.
정경호 :
나 같은 경우는 다 오래됐다. 10년 정도 됐고, 다 형 동생이다. 그리고 매니저는 배우의 얼굴이라 생각한다. 입장 차이가 있더라도 안 좋게 풀 필요는 없다.

Q. 조금은 뜬금없지만 최근 ‘증권가 찌라시’에 열애설로 이름이 오른 적이 있다. 이번 영화에서 마준규의 여자 친구 이름과 ‘찌라시’에서 거론된 열애설 상대와 동일하다. 묘한 기분이었겠다.
정경호 :
정말 묘했고, 웃겼다. 그것도 촬영 끝난 지 8개월 지나서 그런 거니까.

Q. 최근 라디오에서 열애설을 공개한 것도 흥분해서 그랬다고. 여자 친구는 뭐라고 하던가.
정경호 :
별말 없었다. 매사에 흥분하지 않고, 조심해야죠. (웃음).

Q. 군대 가기 전에 연기할 때와 제대 후 연기할 때, 어떤 점이 달라졌나.
정경호 :
무엇보다 감독님의 ‘OK’ 소리가 무서워졌다. 이게 정말 OK일까 싶은 거다. 한 장면 한 장면이 계속 아쉽고, 뭔가를 더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런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과거보다는 책임감 있는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20살 정경호보다는 좀 더 책임감 있고, 진중하게 표현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Q. 뭔가 욕심이 더 생겼다고 이해하면 되는 건가.
정경호 :
제대하고 나서 마준규 역과 드라마 ‘무정도시’의 정시현 역을 했다. 너무나 다른 역할이다. 이처럼 나하고 완전히 다른 역할을 해보는 게 재밌었다. 그래서 다음 작품도 그런 역할을 해볼까 생각하고 있다. 물론 나 자신을 놔버리지는 못할 것 같다. 아직 부족하므로 마준규를 해도 정경호가 묻어날 거다. 어찌 됐던 해보지 못한 역할들이 욕심난다.


Q. 역할이나 작품을 바라보는 폭이 예전보다 넓어진 건가.
정경호 :
그건 모르겠고,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은 욕심이다.

Q. 제대 후 첫 영화인데 흥행 부담은 없나. 요즘 개봉되는 영화도 정말 많다.
정경호 :
이번에 개봉되는 영화 중 코미디는 없다. 그래서 우울한 거 보시고, ‘롤러코스터’ 보면 될 것 같다. 독특한 웃음이지 않나. 사실 불안하고, 긴장돼 일반 시사 때 몰래 가서 보기도 했다. 호불호가 갈릴 영화인 건 사실인데 분명 많은 분이 웃을 것 같다. 흥행이 되면 더 좋겠지만.

Q. 영화 개봉을 앞두고 많은 홍보 활동에 나서면서 다시금 아버지인 정을영 PD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데뷔 초 아버지와 관련된 일화들도 그렇고. 대화는 많이 하는 편인가.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주로 하는지도 궁금하다.
정경호 :
술도 자주 마시고, 대화도 많이 나눈다. 그렇다고 일이나 연기적인 부분에 대해선 아직 여쭤보진 않는다. ‘영화 보셨어요’, ‘드라마 어땠어요’ 정도다. 내가 부족하다 보니 다른 이야기는 못 한다. 그리고 아버지 드라마 나오면 ‘재밌어요’라고 말도 하고. 무엇보다 배우가 갖춰야 할 예의범절에 대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신다. 몇십 년 동안 얼마나 많은 배우를 경험해 봤겠나. 그걸 보고 느끼셨으니까.

Q. 아버지께서는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다고 하던가.
정경호 :
인성인 것 같다. 좋은 사람이어야 좋은 연기가 나온다는, 옛날 말일 수도 있지만 맞는 것 같다. 착하고, 성격 좋은 사람이 대중한테 연기 못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반대로 주변에 잘 못하고, 별로인데 대중은 ‘최고’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첫 번째는 인성인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삶을 조금이나마 표현하는 입장인데 나쁜 사람이면 잘 표현이 안 될 수도 있다고 본다.

Q. 데뷔 초 아버지의 반대를 이겨내기 위해 더 독하게 마음을 먹은 것도 분명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최근엔 아버지 마지막 작품을 같이 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말에는 ‘나, 이만큼 해 왔어요.’라는 의미도 있는 건가.
정경호 :
어려서는 그랬다. 그래서 보여드리기 위해 데뷔 초엔 쉼 없이 일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말들이 없어졌다. 아직 모르는 분들도 많고. 그런 부분에 대해 정우 형과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 정우 형도 비슷하니까. 그리고 아버지의 마지막 작품이 어떤 게 될지도 모르고, 시켜줄지도 모르겠다. 그런 얘기를 전혀 안 한다. 서로 방송 나오기 전까지는 모른다. (웃음). 다만 아버지와 내가 이쪽 일로 시작했으니까 한번 하고 싶은 마음이다. 마지막 작품은 정말 해보고 싶다.

Q. 먼 미래가 아닌 당장 앞으로의 계획이 듣고 싶다.
정경호 :
11월부터 작품 선택을 하고, 올겨울부터는 작품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마준규, 정시현 역할이 힘들었기 때문에 편한 것을 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고, 이런저런 다양한 역할도 해보고 싶고, 다른 모습도 보여주고 싶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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