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초, 최고의 문화행사는 역시 부산국제영화제다. 영화, 스타, 바다가 함께 하는 축제만큼 즐거운 것도 없다. 만약 부산으로 떠나지 않는다면 자라섬재즈페스티벌(10월 6일까지)을 선택하거나 여의도에서 열리는 세계불꽃축제(10월 5일)에 슬쩍 가는 것도 좋다. 그것도 놓쳤다면 혜화동으로 향해 보자. 며칠 전 습관적으로 혜화동을 돌아다니다가 아르코미술관에서 ‘감각의 구축’전을 보았다. 천대광의 ‘건축적 설치’와 토비아스 푸트리의 ‘루블라냐 혁명광장’이 전시 중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건축적 조각 작업을 체험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토비아스는 얼마 전 ‘무담 룩셈부르크 컬렉션’전에도 소개가 되었던 작가다. 이번 작품은 대중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건축과 도시(공공장소)를 개인적인 추억과 상상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건축의 주관성에 대해 고민하다가 재미있는 책들이 문득 떠올랐다.

요즘 들어 건축에 대해 관심이 부쩍 늘면서 다양한 기본서가 소개되고 있다. 그렇다고 아무 책이나 고른다면 초심자들에겐 자칫 수면제가 될 수 있다. 서점에서 무턱대고 진중한 이론서를 선택하면 그 무게에 짓눌릴 수 있으니, 처음에는 건축에 대해 흥미를 주는 책으로 시작해 보자. 첫 단계에서는 약간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지하철 속에서 읽기 좋은 두 권의 책을 추천한다. 더그 팻의 ‘나는 건축이 좋아지기 시작했다’와 히메네스 라이의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도시의 사람들’이다. 전자는 온라인 강좌 ‘어떻게 건축할 것인가’에서 핵심만을 골라 정리한 책으로, 건축 필수 개념어 사전이다. A에서 Z까지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단어로 건축의 기초 개념을 설명하고 있지만, 단숨에 읽을 수 있으니 차례대로 보면 된다. 후자는 건축 그래픽 노블이지만 건축의 역사를 나열한 입문서는 아니다. 2012년 뉴욕건축연맹이 주관하는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한 작가는 그래픽 노블로 알맹이가 있는 가벼움을 전하고자 한다. 어려운 것을 모호하게 설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결코 진부한 이야기는 아니다. 역사(또는 중력)의 무게에 의해 변화가 가능한 우주에서 어떻게 건축이 기능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저자가 감사의 글에서 밝힌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아키그램, 렘 콜하스, 로버트 벤츄리 등의 이름이다. 그들의 이름에 익숙해지는 것이 바로 건축 입문이다.

연극 ‘광부화가들’

‘빌리 엘리어트’의 작가 리 홀이 탄광촌에서 신동 발레리노만 탄생시킨 것은 아니다. 광부들을 화가로 탈바꿈시키는 무대도 만들었다. 연극 ‘광부화가들’은 1930년대 영국 북부 탄광촌의 광부화가 공동체인 애싱턴 그룹의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뉴캐슬의 탄광촌에서 태어난 리 홀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모르는 무지한 광부들이 그림을 배우면서 화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위트 있게 그려냈다. 라이언의 강의를 듣는 광부들은 작품의 의미는 보는 이가 부여하는 것이지, 그림 속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운다. 이런 화두는 사실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예술은 나 자신이에요. 예술은 나 자신을 아는 거예요!”라고 라이언은 말한다. 연극 무대에는 애싱턴 그룹의 그림을 비롯한 많은 명화들이 소개된다. 다빈치와 고흐, 시스틴 성당의 천장화를 비롯해 많은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 무대에 펼쳐지는 즐거움도 있다. 우연히 시작한 미술 감상수업을 통해 인생이 변한 광부들의 이야기는 관객에게 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사실 이 연극을 보고 나면 뭔가 예술적인 행위나 창조적인 일에 참여하고 싶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연극은 예술과 사랑에 빠지는 촉매제다. 2010년 초연 때와 배우들은 다르다. 강신일, 김승욱, 김중기, 민복기 등이 출연한다. 명동예술극장에서 13일까지만 미술 수업을 하니, 조금 서두르는 것이 좋겠다.
Minderwertigkinder-Rat Child, 2011
Mixed media
122 x 42 x 30cm
(C) Jake and Dinos Chapman.
Courtesy of the artists and White Cube.
Photo Credit : Ben Westoby / White Cube

뭔가 충격적인 체험을 원한다면, 잔혹하고 엽기적인 제이크 앤 디노스 채프만을 만나보자. ‘채프만 형제: The Sleep of Reason’전이 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 진행 중이다. 채프만 형제는 yBa(young British artists) 출신의 작가다. 1990년 영국 왕립예술학교를 졸업한 후, 공동작업을 해온 이 형제는 고야의 작품에서 맥도날드의 로날드(피에로) 같은 대중적인 아이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적 터부를 탐구해왔다. 특히 1997년 런던 로열 아카데미에서 열린 ‘센세이션’전에서 작품이 18세 이하 관람불가 판정을 받으면서 유명해졌다. 이번 개인전은 에칭 삽화와 신작 페인팅까지 선보이지만, 그 중에서 특히 두 가지 작품이 눈길을 끈다. 2층의 ‘Minderwertigkinder’는 귀여운 아이들이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깜짝 놀란다. 야채나 동물의 형상을 한 돌연변이 아이들이다. ‘Minderwertig’는 독일어로 조잡하게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예술에서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4층에는 전쟁의 참혹함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Hell’(2000)의 맥락을 잇는 설치작품 ‘Unhappy Feet’ (2010)와 ‘No Woman No Cry’(2009)가 있다. 전자는 애니메이션 ‘해피 피트’를 비웃듯이 북극 곰과 남극 펭귄이 만나 서로를 잔인하게 죽인다. 후자는 B급 좀비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광기의 살육이 벌어진다. 즉 아비규환의 세계다. 이보다 더 끔찍한 미니어처를 본 적이 없다. 채프만 형제의 작업은 불편함과 불쾌함을 동반하지만, 이것이야말로 현대미술의 중요 테마다. 고개 돌리지 마시라!

글. 전종혁 대중문화 평론가 hubul2@naver.com
편집. 이은아 domino@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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