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후 재활치료를 할 당시의 강원래(오른쪽) 김송 부부
육체적 재활치료를 받기 위해서 재활병원이란 곳에 가지만 그곳에 가서 재활치료 받는 환자들을 보면 나의 힘들었던 병원시절도 생각이 난다. 장애가 힘들어 남몰래 눈물 흘렸던 경사로, “내가 휠체어를 왜 타냐”며 소리쳤던 물리치료실 등을 지나면서 치료를 잘 받고 장애를 수용한 나 스스로에게 “더 잘하자”라고 칭찬하며 그때 가졌던 자신감을 되찾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육체적 치료보다는 정신적치료를 받을수 있는 곳이라 재활병원을 자주 오곤한다. 특히 재활병원에 있는 장애인화장실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항상 들러 화장실 바닥을 쳐다본다.하반신마비 장애인에게 화장실은 어떤 곳일까? 재활병원에 가면 그곳에서 마주치는 척수손상(전신마비,하반신마비)환자들이 묻는다. “대소변 감각은 돌아오나요? 강원래씨는 그런 감각이 있으니 이렇게 돌아다닐수 있는거죠?” 사실 난 사고 이후로 그런 감각은 없어졌고 지금도 여전히 똥오줌의 감각이 없다. 그런 감각이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조차 안난다.감각이 기억안난다 하면 다들 그게 “기억이 안 날 수 있나?” 할 것이다. 양손을 휘저어 하늘을 날아본 사람은 없을것이다. 하늘을 손으로 나는 느낌은 어떤것일까? 모르는 느낌,감각을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아니, 아예 못 한다. 나 역시 걷는 것, 뛰는 것,배부르고 배고픈 것,쉬 마려움, 발가락 간지러움, 허벅지 꼬집는 아픔…전혀 모르고 기억이 안난다.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기에 사고후 처음에는 대소변을 간호사들에게 내 몸을 보여주며 처리했고, 그 후 재활의 과정에서 아내 김송의 도움으로 해결했는데…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그게 안되니 ‘하루 4번 소변줄로 소변을 받고, 이틀에 한번 대변.’ 이렇게 짜여진 스케줄에 따라 배변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감각없는 내몸을 누군가에게 보여 주는것도 싫었고 도움을 받는 것도 싫었다.사고 후 병원에 있을 때 한번은 혼자 대변을 해결해보고 싶어서 화장실에 간 적이 있었다. 저녁식사 후 경사로에서 휠체어를 타고 운동을 한 뒤 침대로 올라와 자는 척을 하다 송이가 간이침대에서 잠든걸 확인했다. 나는 누운 상태에서 침대매트리스를 왼손으로 붙잡고 좌우로 온몸을 움직여 오른손으로 엉덩이사이에 좌약을 끼워넣었다. 밤12시가 넘어 다시 휠체어로 옮겨탄 후 화장실로 몰래 갔다.
막상 화장실로 들어와 휠체어를 반바퀴 돌려서 변기에 올려 앉으려 하니 쉽지 않았다. 휠체어에서 변기에 옮겨앉을때 사용하라고 손잡이 같은게 하나 튀어나와있는데, 이것 잡고 옮겨 앉는게 익숙치 않아서 머뭇거렸다. 생각해보니 휠체어에 앉아 환자복 바지를 벗어본적이 없었다. 휠체어에서 바지를 벗고 옮겨앉아야하나? 아님 변기에 옮겨 앉은 다음 바지를 벗어야하나?
참,나…사고전에는 화장실에 걸어 들어왔고 또 바지를 내리면서 가볍게 앉았던 변기 앞에서 뭔 갈등이 이리많은지…마음이 살짝 울컥했다. 엉덩이 크기보다 작은 변기에 앉아 바질 내리는것 보단 손잡이가 있는 휠체어가 더 편할꺼란 생각에 바지를 오른손 왼손 움직여가며,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가며, 바지를 힘겹게 내렸다. 화장실 벽에 붙은 손잡이를 꽉 잡고 엉덩이를 들어 올려 변기에 옮겨 앉는 순간, 바지에 다리가 걸려 엇갈리면서 그만 화장실 바닥으로 넘어졌다. ‘꽈당’하며 넘어진것도 아니고, 그냥 힘없이 ‘스르륵’ 넘어졌다.‘아, 이거 어떡해’ 하며 송이를 불렀다. ”송이야, 송이야”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화장실 바닥엔 지린내가 가득했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하지?’ 하며 몸을 죄우로 흔들어 봤지만 내 마음대로 움직이진 않았다. 그렇게 한 4,5분 누워 몸을 움직이는데 대변냄새가 나는거였다. ‘설마’하는 생각에 왼손으로 감각없는 내엉덩이를 만져보니 어느정도인진 모르지만 대변이 흘러 나와 있었다. 순간 ‘야, 이거 어떡하나’ 생각에 당황도 했지만, 잠시 후 온몸에 전류가 흐르듯 소름이 쫘악 끼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나왔다.
장애인 화장실 바닥에서 올려다본 변기
변기 올려보며 한참을 소리 못내고 엉엉 울었다. 화장실바닥에 엎어져 실수를 한 내모습이 창피한것도 있었지만, 앞으로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게 서러워서였나…그렇게 10여분을 울었다. 계속 울다보니 지쳐갔다. ‘힘들다’ ‘창피하다’라는 생각보단 ‘이왕 이렇게 된거, 좀 누워있자’라는 생각도 들었다.누워서 변기를 바라보니 휴지걸이 밑에 비상벨이 보였다. 비상벨엔 ‘응급호출 통화장치’라 써 있었다. 비상벨을 누르면 되겠다란 생각이 번듯 들었다. 그런데 비상벨을 눌러 간호사에게 도움을 받게 되면 내일부터는 ‘화장실에서 넘어진 강원래’ ‘화장실에 자빠져 똥싼 강원래’ ‘눈물 쏟은 강원래’라는 별명이 붙을것 같아 “아니지” 하며 다른방법을 생각해보자며 계속 바닥에 누워있었다.그렇게 시간이 또 지나고 계속 이렇게 누워 있으면 안될것 같아 상체를 일으켜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휠체어를 잡아봤다. “한번 해봐?” 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혼자의 힘으로 휠체어에 올라 앉기로 했다. 침대에서 휠체어, 휠체어에서 침대 정도로 비슷한높이에서 옮겨앉는 것(트랜스포)은 재활치료 때 배웠기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땅바닥에서 휠체어까지 팔의 힘으로만 올라 앉는 훈련은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다.
휠체어를 앞부분에 내엉덩이를 놓고 양팔로 내 몸을 들어올렸다.쉽지는 않았지만 죽을힘을 다해 힘을쓰니 몸이 들렸고,환자복 바지는 벗겨지고 분비물이 휠체어 이쪽저족에 묻고 신발도 벗겨지고 얼굴엔 땀방울이 줄줄 흘려 내렸다. 그렇게 30분정도 낑 낑 힘쓰다 결국 휠체어에 올라 앉았다. ‘이제 병실까지만 무사히 가면 된다’는 생각에 벗겨진 바지를 구겨서 내몸 일부를 가리고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와 재활병동 복도에 누가 있는지 살펴본 후 천천히 간호사실 앞을 지나 병실로 들어왔다.
병실에 들어오니 그제서야 한숨이 ‘휴…’하고 나왔다. 더러운 몸이었지만 난 침대로 옮겨 앉은후 송이를 깨웠다. 간이침대서 잠자던 송이는 내목소리를 뜯고 깨더니 “어디갔다왔냐”고, 또 “이게 무슨냄새냐”냐고 소리치고 화를 내며 내 몸을 씻겨줬다. 정작 난 웃음이 나왔다. 웃음이 나왔던 이유는, 아마 이젠 혼자서도 뭔가를 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어서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휠체어에 몸을 맡긴 지 12년
그동안 넘어진적 많고 포기한적 많고 화내고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그때 마다 다시 일어나려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중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난 강원래다.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