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논하는데 있어, 정우성은 단골손님처럼 호출되는 배우다. 조각 같은, 빈틈없는, 우월한. 지구상에 존재하는 탐미적인 단어들은, 아마 한번 쯤 정우성을 거쳐 갔을 것이다. 인간적인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서고 싶었던 정우성의 마음은, 이런 수식어들 앞에서 번번이 제지당했다. 영화 (감독 조의석 김병서, 제작 영화사 집)의 제임스는 정우성이 지닌 스타로서의 이미지를 더욱 부추기는 캐릭터다. 고난도 액션을 전시하는 정우성의 육체는 기어코 판타지를 자극하고야 만다. “사람 냄새 나는 배우이고 싶다”는 정우성의 꿈은 점점 더 그에게서 멀어지는 느낌이다. 생애 첫 악역을 멋들어지게 체화해 낸 정우성은 예상대로 매너 좋고 침착하고 자신감 넘치는 남자였지만, 예상치 못하게 솔직한 남자이기도 했다.Q. 영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 정도 반응, 기대했나?
정우성: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예상 못했다. 기자 시사회 반응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좋았다. 내가 맡은 역할이 조연에 악역이라 주변 분들이 우려를 많이 했는데, 영화를 보고는 다들 안심하더라. “(영화로) 잘 돌아왔어!” 환영해 주는 분위기였다.
Q. 이전 인터뷰에서 ‘조직폭력배 같은 역할을 연기하는 건, 악을 대변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반감이 좀 있다’고 한 적이 있다. 관객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게 싫어서, 악역을 일부러 기피해 온 걸로 아는데, 제임스라는 캐릭터를 받아들인 이유가 뭔가?
정우성: 제임스는 현실에 기반을 둔 인물이 아니다. 판타지적인 설정이 다분히 들어가 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리얼리티로 바라보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영화적으로도 상당히 매력 있게 다가왔다. 제임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영화 전체의 재미와 긴장감이 달라지겠다 싶었다. 그래서 선택했는데, 내가 출연한다고 하니까 관계자들이 “제임스 캐릭터 를 좀 더 풍성하게 만들자”고 하더라. 그렇게 하면 그 동안 봐왔던 구태의연한 두 축의 대립이 될 것 같아서 “제임스의 백그라운드 스토리를 만들지 말자. 하찮은 범죄자가 하찮게 흘러가도록, 지금 이대로 가자”고 했다.
Q. 롱테이크로 담긴 17대 1 골목 격투신이 회자되는 분위기다. 때는 총을 돌리며 말을 타는 장면이 큰 화제를 모았었고. 감독들이 당신에게서 멋진 장면을 뽑아내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건지, 아니면 당신이 해서 멋진 장면으로 탄생하는 건지, 이젠 분간이 안 간다.
정우성: 전자인 것 같다. 정우성이 해서 멋있어 보이는 액션이 존재한다고 보는데, 감독 입장에서는 그걸 구현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을 거다. 어떻게 보면, 좋은 악기잖아. 하모니를 만들 때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를 굳이 아낄 필요는 없잖아. 제임스의 드라마를 추가하지 말자고 당부한 것과 달리, 액션을 추가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수긍한 것도 그 때문이다. 캐릭터 몰입도랑은 상관없이 볼거리의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Q. 조의석, 김병서 감독이 공동 연출한 작품이다. 두 명의 감독과 작업하는 건, 배우에게도 흥미로웠을 것 같다.
정우성: 둘이 티격태격 할 줄 알았는데, 안 그러더라.(웃음) 감독들에게는 아마 부담이 큰 작업이었을 거다. 조의석 감독의 경우, 남들이 인정하는 전작을 만든 감독은 아니다. 그에 대해 본인 스스로도 떳떳하지 않을 수 있고. 그로인해 위축돼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굉장히 냉철하게 자신의 직분을 수행했다. 김병서 감독도 처음으로 도전하는 연출이라는 타이틀이 버거웠을 텐데, 부담에 짓눌리지 않고 자신의 장점을 계속해서 찾아갔다. 두 감독의 장점이 잘 맞물린 작품이다.
Q. 조의석 감독이 자신의 전작들에 대해 떳떳해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는데, 배우 입장에서는 어떤가. 배우는 결국 감독을 믿고 가야 하는데, 걱정이 되지는 않던가.
정우성: 전작들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감독이나 프로듀서를 따지지 않는다. 내가 꽂혀서 갈 수 있는 캐릭터인가 아닌가가 중요하지, 감독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이재한 감독의 를 한다고 했을 때도 주위에서 다들 말렸다. 당시 충무로 텃새가 굉장히 심했다. 정통 충무로 출신이 아니면 감독으로 잘 받아들여주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검증되지 않은 뉴욕출신 감독의 작품을, 그것도 살짝 ‘빠다’ 냄새 나는 감독의 작품을 하겠다고 하니까 회사 입장에서는 납득이 안 됐던 거다. 하지만 선택했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차기작을 로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Q. 주위에서 반대하는 선택을 많이 해 왔나보다. 이젠, 그런 염려들이 크게 신경 쓰이지 않겠다.
정우성: 그때도 신경은 안 쓰였다. 신경이 쓰였다면, 이런 행보를 걷지 않았겠지. 내 성격이 이렇다. 남들이 규정짓는 틀 안에 갇히는 걸 싫어한다.
Q. 그렇다면 조금 다른 질문일 수 있는데,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말에는 동의하나?
정우성: 선택권이 감독에게 있기에 그런 얘기들을 하는 것 같은데, 글쎄. 중요한 건,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들은 그런 선택들을 영리하게 한다는 거다. 독선적으로 옹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스태프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작품을 펼치는 거지. 결국은 밸런스의 문제다. 배우와 스태프의 의견을 들을 줄 알아야지, 외고집은 별로다.
Q. 단편영화와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입장에서, 정우성은 밸런스를 잘 잡는 감독같은가.
정우성: 잘 하는 편인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내 입으로. 하하하. 나는 타협점을 굉장히 빨리 찾는다. 현장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일들에 대한 위기관리능력이 좀 있는 것 같고.물론 내 머리 속에 있는 그림이 전체적인 스토리를 운반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면 끝까지 밀어붙인다. 그런데 일을 하다보면, 요소요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있거든. 그때 감독이랍시고 고집을 부리면, 골치 아파진다.Q. 장편영화로 데뷔한 정우성은 언제 만날 수 있는 건가. 점점 양치기 소년이 돼가는 느낌이다.(웃음)
정우성: (웃음) 어릴 때, 내 바람을 생각 없이 입 밖으로 꺼내서 이렇게 됐다. “서른엔 해야죠!” 하다가, “조금 있다 할 거예요!” 이러다가, “내년엔 해야죠!” 하다 보니, 정말 양치기 소년이 됐다. 물론 본격적으로 준비하려고 ‘토러스 필름’도 만들고, 글로벌 프로젝트에 손도 댔다. 그러다가 예기치 않게 프로젝트가 중단되면서 여기까지 흘러온 건데, 적당한 타이밍이 언젠가 오겠지. 이젠 하고 안 하고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잘 하는 게 중요하지.
Q. 당신이 가진 이미지. 그러니까 대중이 생각하는 정우성의 이미지를 깨고 싶어 하는 욕구를 작품선택에서 느낄 때가 있다. 때가 그랬고, 이번 이 그렇다.
정우성: 개인적인 욕심인 것 같다. 절대적으로 변신을 목적으로 한다기보다는, ‘나도 이런 역할을 할 수 있고, 이런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걸 대중에게 항변하고 싶었다. 드라마 (이하 )의 경우는 조금 다른데, 한국활동이 너무 뜸하지 않았나 하는 조급함이 내 안에 있었다. 정우성이 아직 여기에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선택한 게, 였던 거다. 또 드라마는 잘 되면 아시아 시장으로 활동범위를 넓힐 수 있으니, 당시 내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잘 맞는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선택 했는데, 대본이 제 때 제 때 안 나오고 등 여러 문제로 스트레스가 많았다. 내 연기를 차분하게 보여주고 싶은 갈증이 났다. 대본이 튼튼한 작품을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선택한 게, 노희경 작가의 이다. 그런 와중에 영화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스크린으로 복귀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돌아갈까. 이제 데뷔 20년이 됐는데, 앞으로 20년은 어떤 배우로 다시 포지셔닝을 해야 할까. 그런 고민 끝에 ‘이제, 나에게 어울리는 것만 하자. 내가 입고 싶은 것만 입으려 하지 말고 남들이 생각했을 때 가장 나답다고 여겨지는 옷을 입자’ 라는 결정을 내렸다.
Q. 대중이 생각하는 ‘정우성다운’ 건 어떤걸까.
정우성: 멋스러움이 배어있는, 풍요로운 멜로를 할 수 있는, 판타지를 자극할 수 있는, 그런 남자가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흙냄새 나는 사람이고 싶어서 인간적인 모습을 계속 어필했었다. 그게 내가 자라온 환경이고 근성이었으니까. “당신들이 나를 다르게 볼 필요 없어. 나도 사람이야!” 라는 걸 계속해서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이젠, 조금 달라졌다. ‘그래, 대중이 원하는 캐릭터를 실컷 해보자’는 쪽으로 기운 것 같다.
Q. 왜, 이전에는 흙냄새 나는 사람이라는 걸 어필하려고 했나? 대중이 포장해서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이었나?
정우성: 부담이라기보다는, 결부 짓는 게 못마땅했다. 사실 그렇게 보이는 게, 좋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룩의 장점이니까. 다만 너무 그렇게만 보려 하는 게, 싫었던 거다. 그게 내 반항심을 자극 했던 거고. 사람이 그렇잖아. 묶어놓으면 끊어서 도망가고 싶어지잖아.
Q. 이제는 그런 시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는 건가?
정우성: 뭐랄까. 충분히 보여줬다고 할까? 되돌아보니까 이거 저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를 지키기보다는 방만하게 풀어놓았었다는 생각도 들고. 감독 안 따지고 작품을 한 것도, 어떻게 보면 나를 막 던져준 거거든. 그런 선택은 충분히 했으니까, 이제 내가 가진 장점들을 차분하게 쌓아가 보자, 하는 마음이 든 거다.
Q.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는데, 그런 조급함이 이전에는 없었나?
정우성: 그때가 처음이었다. 30대 때의 나는 나태했었다. 연기나 일에 대한 고민보다는 개인적인 생활에 대한 고민에 더 천착했던 것 같다.
Q. 30대 때는 연기에 치열하지 않았다고 해석될 수도 있는 말이다.
정우성: 맞다. 20대 때는 뭐랄까. 거칠게 들이댔다고 할까? 뭐든 할 수 있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러다가 30대가 됐는데, ‘나도 이젠 뭔가를 안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주변에서 연기 조언을 해줘도, ‘너나 잘 하세요.’ 이랬던 것 같고. 어떤 나르시즘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를 하고, 영화를 물색하고, 과거를 돌아보면서 작품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Q. 조금 늦은 자각이었다는 생각은 안 드나?
정우성: 아니. 이제라도 이렇게 깨닫고 돌아온 게, 오히려 다행 아닐까? 만약 나이 50에서야 깨달았어봐. 그땐 정말 늦었을 수 있다. 아직은 남자로서도 배우로서도 한참 혈기왕성할 때다. 신에게 감사해야 할 타이밍이라고 본다.
Q. 조바심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작품의 성패와 관계없이 당신은 쭉 정상을 유지해 온 스타다. 20년간 정상의 자리를 지킨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
정우성: 스스로에 대한 갈증은 늘 있었다. 30대에 연기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지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내 열정이 식은 것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주위의 것들에 반응하면서 딴 생각을 했던 것 같다.
Q. 정상을 지키려 안간힘을 쓰지는 않은 인상이다. 특이하게도.
정우성: 그래서 거기에 있는 거다. 그 자리에 연연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주변에서 나를 가리켜 ‘청춘의 아이콘’이다 뭐다 의미를 부여할 때도, 거기에 대해 자각을 못 했다. 그걸 자각한 건, 한참 후 찍을 때. 학교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애들이 그런 나를 보고는 “(탄성)와~!” 하더라. 순간 ‘어? 이게 뭐지?’ 하면서 손이 부끄러워졌다. 그러면서 과거에 어린 스태프 친구들이 “형 따라 담배 피웠어요.” 라고 했던 말이 이해가 됐고. 그때부터 주변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Q. 댓글 같은 것도 살펴보는 건가?
정우성: 댓글은 주변얘기가 아니다. 댓글을 주변얘기라고 착각하는 순간, 흔들린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주변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그 얘길 깨우쳤다는 의미의 다른 표현이다. 우리가 이렇게 대화를 하잖아. 그런데 서로 이해하지 않으면, 인터뷰 후에 남는 게 아무것도 없다. 상대가 무슨 얘길 했는지 알아야 들리지, 듣는다고 다 듣는 건 아니니까.
Q. 그런 시행착오를 겪은 선배로서 2PM 준호 같은 친구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 주나?
정우성: 어떤 얘기를 할 필요가 없다. 느끼게 해 주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준호는 현장에서 자세가 좋다. 진지하거든. 진득하고. 그리고 기다리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고.
Q. 정우성을 향한 호감은 남녀불문이다. 남성과 여성의 환호 중 언제 더 자신이 남자답다고 느끼나? 아니, 왜 웃나.
정우성: 하하하하. 그건, 잘 모르겠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타인에게 사랑받는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우쭐해하기보다는 ‘아이쿠, 고맙다!’ 이런 생각을 늘 한다.
Q. 의 민이를 연기할 때 당신의 나이 스물 넷. 스물 넷으로 돌아간다면 뭘 하겠나?
정우성: 작품을 정말로 많이 할 것 같다. 그 어린 나이에 그런 작품 수는 말도 안 된다. 1년에 1편, 2년에 1편은 말이 안 되는 거다. 적어도 1년에 2편은 했어야 했다.
Q. 그랬다면, 이미지가 너무 소비되지 않았을까?
정우성: 아니다. 그때는 소비돼도 상관없는 나이다. 계속해서 뭔가를 만들어나가야 할 때니까. 그런 중요한 시기에 그렇게 작품을 적게 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차라리 죽어버리든지. 그래서 영웅으로 남든지.(웃음)
Q. 제임스 딘처럼?(웃음)
정우성: (웃음) 내 성향 탓도 있다. 어떤 작품을 하면서, 다른 작품을 보는 건 지금 하는 작업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지식한 성격이었던 거지. 그리고 예전에는 나에게 들어오는 시나리오를 주변에서 먼저 차단하기도 했다. 매니저가 시나리오를 다른 쪽으로 빼돌리곤 했거든. 당시에는 몰랐다.
Q. 아니, 매니저가 왜? 도대체 왜?
정우성: 당시 연예계 헤게모니가 그랬다. 배우들이 뜨면서 매니지먼트 산업도 비대해질 때였다. 그들 입장에서는 다른 신인들도 키워야 하니까, 시나리오를 나눠줘야 할 거 아닌가. 매니저 입장에서 봤을 때, 정우성은 굳이 이 시나리오가 아니라도 할 게 많았던 거다.
Q. 뒤늦게 알았을 때 기분, 어땠나?
정우성: 섭섭하지. 시나리오를 건넨 대표에게 미안한 거고. 그 대표는 그 긴 시간 동안, 내가 거절했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작품이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데,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런 오해가 형성돼 있었다는 게 안타까운 거다.
Q. 지금은 어떤가. 에 출연하는 등 보다 다양한 선택을 하고 있는데, 배우로서 그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
정우성:두려움은 없다. 사람들과 섞이고 싶을 뿐이다. 내가 일상에 대해 갈증을 느끼는 건, 자라 온 환경의 영향이 크다. 내겐 누구나가 다 겪은 일반화 된 학창시절이 없다.(그는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그러다보나 대인관계를 어떻게 형성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주위에서 “왜 아직도 이정재 씨랑 존댓말을 하냐”고 하는데, 나는 그게 그냥 편한 거다. 만약 제대로 된 학창시절을 겪었으면 동료들에게 반말하고, 후배들에게 “이 새끼야, 저 새기야” 하기도 하고, 선배들 눈치 보면서 살살거리기도 했을 텐데, 그런 과정이 없었으니까. 동급생 여자들과 미팅 같은 것도 안 했기 때문에, 여자에 대해서도 서툴다. 사람이고 싶어 하고, 사람들과 섞이고 싶어 하고, 보이고 싶어 하는 욕구가 그런 시간의 부재 속에서 더 간절했던 거다. 팬들은 내 일상을 궁금해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그들의 생활이 더 궁금하다..
Q. 그런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자리가 있나?
정우성: 별로 없다. 예전엔 사람들과 섞이겠다고, 겁 없이 포장마차도 가고 그랬다. 그런데 가면 꼭 싸움이 나더라. 왜? 나는 사람이라고 앉아 있는데, 거기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눈에는 의 정우성이 와서 앉아 있는 걸로 보이니까. 그러니 얼마나 흥분되겠나. 괜히 말을 걸어보고 싶고, 술이라도 한 잔 나누고 싶고 그럴 테지. 실제로 술 잔 가지고 오는 분들이 있다. “술 한 잔 하시죠!”, “미안해요. 제가 지금은 좀…”, “에이, 씨. 왜~?” 이렇게 돼 버리니까,(웃음) 점점 사람들 없는 곳으로 가게 되더라.
Q. 그런 배우의 숙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정우성: 감안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타협해야지. 어떻게 좋은 것만 가질 수 있겠나.
Q. 얘기하다보니, 당신은 스스로의 가치를 굉장히 잘 아는 사람 같다. 그게, 가장 큰 장점 같기도 하고.
정우성: 내가 지닌 진짜 장점은, 선택에 대한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거다.
Q. 후회를 많이 한다는 뜻 같기도.
정우성: 후회… 후회보다는 아쉬움이라는 말이 더 맞겠다. 30대 때 노력을 안 한 건 아니다. 최선은 다 하긴 했다. 다만, “신이 나서 열정적으로 했니?” 라고 물으면 의문이다. 신이 난다는 건 나도 모르게 아드레날린을 뿜으면서 연기를 한다는 건데, 그때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Q. 당신, 생각이 많은 타입인가?
정우성: 아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계속할 뿐, 부산하게 이 생각 저 생각 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나라고 착각을 하는데, 아니다. 내 안의 진짜 나를 깨워야 한다. 나를 향한 질문을 통해서.
Q. 정우성은 긍정적인 사람인가?
정우성: 그렇다. 그게 어린 시절, 세상 밖으로 뛰쳐나온 내가 나를 지킨 방법이다.
글,편집.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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