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할배’의 수장 나영석 PD

결과론적으로, tvN ‘꽃보다 할배’의 혁혁한 성과에 우리는 또 다시 나영석 PD는 물건은 물건이다라고 평가하게 됐지만 기획단계에서는 지금의 성공은커녕 캐스팅 역시도 장담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타인의 시선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성공이었을지언정, 12년 만에 친정 KBS를 떠나 케이블채널 CJ E&M으로 이적해 새로운 판을 짜야하는 작업에 임하기에 앞서 스스로가 강한 확신에 사로잡혀있기란 어려웠을 것이다.어쨌든 결과는 성공. 구태여 그 비법을 분석해보려 파고든다면, 그것은 성공을 향한 전략적 접근으로 인한 결과였다기보다 ‘다만 하고 싶은 것을 해보자’라는 물망초심 때문 아니었을까.

그래도 한 번은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다. “정말 당신은 천재인가요?”라고. 당연히 “NO”라고 대답할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질문을 던진 이유는 번번이 성공하고 마는 그에 대한 지극히 원초적인 호기심 그리고 감탄 때문이었다.

Q. 유럽편이 5회까지 방송됐으니, 우리의 ‘할배’들도 방송을 접했을 텐데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
나영석 :
박근형 선생님은 ‘재미없던데, 사람들이 그걸 좋아해?’라고 하셨다(웃음). 백일섭 선생님은 즐거워하시면서 ‘내가 TV에서 배 나오고 속옷 입고 나오는 게 불쾌할 줄 알았는데 자연스럽게 넘어가서 좋다’고도 하셨다. 이순재 선생님도 ‘재밌더라’라고 하셨고. 그러나 지극히 나의 추측이긴 하지만, 선생님들은 이게 인기 있다고 하니까 그런가보다 하시긴 해도, ‘왜 재밌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아무래도 리얼 버라이어티에 익숙하지 않으실 테니까.Q. 의외로 선생님들이 열린 마음으로 ‘꽃할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던데, 그래도 역시 리얼버라이어티식 서사에는 익숙하지 않으셨나보다.
나영석 :
출연 제안을 드렸을 때, 하면서도 ‘이건 무조건 노(NO!)하실거야’라는 생각으로 갔다. 분명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으실 텐데 큰 소리 듣고 안 쫓겨나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예상 외로 그 취지에 공감을 해주시더라. 놀라웠다. 새로운 도전과 시도에 대해 이렇게 열려계시다니, 이래서 이분들이 대가시구나라는 생각이 딱 들더라.

‘꽃보다 할배’ 스틸

Q. 그래도 설득의 과정은 필요했을 것이다.
나영석 :
‘선생님, 이런 기획인데요’라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더니, 이순재 선생님께서는 ‘너무 좋고, 우리가 주인공이 되는 것은 기다려왔던 프로젝트’라고 말씀 하시더라. 그런데 다만, 저어하신 것은 선생님들이 드라마가 본업이다 보니 시간을 맞춰 갈 수 있을까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비관적으로 보신 것은 있었는데, 세 분이 다 하신다고 결정하면서 부터는 급물살을 타게 됐다.Q. 리얼 버라이어티 식 서사에는 적응이 안 되실지 모르나, 그래도 드라마 속 인자한 친정아버지로 나오는 백일섭 선생님을 보면서 ‘장조림!’을 떠올리게 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좀 더 대중과 가까워진 부분을 체감하시게 된 점은 좋아하셨을 것 같은데.
나영석 :
처음에는 불안해하셨다. 70~80년을 자기 커리어를 차곡차곡 힘들게 구축해 오신 분들이다. 가끔 저와 사담을 나누다 ‘내가 70, 80 다 되어서 괜히 이런 프로그램 나갔다가 우스운 사람 되는 것 아냐’라고 걱정하시긴 했다. 말씀은 그렇게 하셨는데, 그래도 재미있어 하시는 측면도 또 있더라. ‘언제 내가 이런 경험을 해보겠어’ 하면서. 아무래도 드라마의 반응과는 또 다르게 적극적인 반응들이 생기니까.

Q. 방송가에서는 ‘역시 나영석PD’라고 말하는 대목이,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선생님들이 사실 현장에서는 꽤 까다롭거나 힘든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어느 PD는 이중 한 선생님과 작업했던 것을 고된 시간으로 기억하기도 하더라.
나영석 :
드라마를 했던 PD가 아니라, 몰랐기에 겁이 없었던 부분은 있었다. 내가 무언가를 예측해 세팅한 것은 아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만약 이중 한 분만 가셨더라면 나 역시 힘들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네 분이 함께 가시니 그 안에서 해결이 되는 측면이 있었다. 백일섭 선생님이 짜증이 나신 상황이라면 신구 선생님이 달래주고, 이순재 선생님이 힘들어 하시면 박근형 선생님이 힘이 돼 주고, 뭐 이런 식의 그들만의 생활이 형성이 되니까 오히려 선생님들의 불편한 심기가 외부 세계, 즉 우리에게까지 넘어올 일이 없더라.

Q. 그래도 세팅 자체가 잘 돼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짐꾼 이서진의 존재도 있었고 또 의사선생님도 동행했다. 혹시 그 외에도 선생님들을 위한 특별한 스태프가 있었나.
나영석 :
없었다. 그렇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모든 스태프들이 선생님들을 걱정하고 마음을 쓰게 됐다. 날씨가 더우면 불편하실까, 음식을 먹어도 입맛에 맞으실까 이런 것들에 모두의 신경이 집중돼 있었달까.
대만 출국길에 오른 ‘꽃보다 할배’

Q. 유럽에 이어 대만을 다녀왔는데, 아무래도 같은 아시아권이라 더 익숙했을 테고 선생님들을 알아보는 이들도 더 많았을 것 같다.
나영석 :
공항 들어갈 때부터 팬들이 많았다. 그래도 젊은 이서진 씨 팬 정도 있겠지 했는데, 200여명의 팬들이 나와 선생님들에 열광하더라. 식사를 하러 가거나 거리에 구경을 나갔을 때도 많이들 알아보셨다. 중국어로 하니 무슨 말인지 그 때 당시에는 못 알아들었지만 나중에 ‘누구 아빠다’, ‘어떤 드라마에 누구 할아버지다’ 이런 식으로 알아봤다고 한다. 선생님들은 ‘내가 살아생전 이런 대접을 또 받겠나’라며 신기해하시고 즐거워하신 것은 물론이다.

Q. 그러나 또 영어권이 아니라 언어의 장벽은 두터웠을 텐데, 이서진 씨가 많이 힘들어했겠다.
나영석 :
그렇다. 유럽은 언어라도 통하는데 대만은 중국어만 통용되니까, 평소보다 더 힘들어했고 그것 때문에 재미있는 일들도 많았다.Q. 두 번째 여행이라 그런지 훨씬 익숙해져 편안하게 다녀온 것도 있었을 테고.
나영석 :
그렇다. 동양 문화에 익숙했기 때문도 있고, 유럽만 해도 살짝 얼어있기도 했지만 이번엔 몸이 풀리셔서인지 더 즐거워하셨다. 선생님들끼리의 에피소드 혹은 대화가 양적으로 증가했다. 프랑스, 스위스 때만해도 식사시간에 정말 밥만 드신 적도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본인들끼리 많이 이야기도 하시고 즐거워하셨다.

Q. 유럽편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비슷한 연배의 유럽의 ‘할배’가 스포츠카를 타고 젊은 여성과 노년을 즐기는 모습을 아무 말씀 없이 바라보았던 순간이다. 유럽만 해도, 실버문화가 확실히 발달돼있는데 우리는 아직은 소외된 측면이 있으니까, 그때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궁금해지더라.
나영석 :
부러움 반, 시기 반 그런 거였던 것 같다. 늘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 기죽는다고. 일제 강점기까지 겪은 분들이다. 동양의 구석나라라는 열등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중간 중간 그런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현재의 우리나라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으니까 가슴을 펴고 여행을 하시며 뿌듯해하시기도 하고.

Q. ‘꽃할배’ 덕분에 그래도 소외된 실버문화에 대한 인식도 바뀌는 것 같다.
나영석 :
확실히 논외 대상, 시선 밖의 그룹이었지만, 이제는 그분들에게도 욕망이나 희로애락이 있다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된 것 같다. 리플이나 반응을 봐도 ‘나도 우리 할아버지 모시고 더 늦기 전에 여행 갔다 와야지’, ‘아빠 모시고 갔다 와야겠다’ 이런 게 참 많더라.

Q. 사람들은 결과론적으로, 요즘 시청층의 연령대도 높아졌고 그래서 성공할 수밖에 없는 기획이라고도 평가하던데 사실 기획단계에서는 도리어 반대에 부딪혔을 것 같다.
나영석 :
반반이었다. 한 분 한 분 대단한 어르신들이니 관심을 끌 수 있겠다는 의견 반, 그래도 예능인데 나이 드신 분들이 나오면 젊은 사람들이 보겠어라는 우려의 시선 반. 그러나 요즘 예능은 결국 컨텐츠 싸움이다. 운 좋게 내가 먼저 발견한 셈이고, 가능성이 열렸으니 이제 다른 분들도 생각하시게 되겠지(실제 KBS는 ‘꽃보다 할배’의 할머니 버전 ‘마마도’(가제)를 기획 중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시청층의 연령대가 높아진 것과 우리 프로그램의 성공은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무모하게 들릴지 모르나, 기획할 때부터 2030 젊은 여성층이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어르신들이 나오니 그 연배의 시청자들만 본다는 것은 지극히 기계적 분석이다. 저희 부모님만 해도 젊고 예쁜 친구들이 나오는 것 좋아하신다. 예측은 안 됐지만, 그래도 선생님들의 좌충우돌이 귀여워 보일 것이고 그 지점이 터진다면 젊은 시청자들의 반응을 끌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예상보다 훨씬 큰 반응을 얻은 것이고.

Q. 확실히 여성들이 좋아한다. 결혼은 박근형 선생님 같은 분이랑, 시아버지는 신구 선생님 같은 분을 꿈꾸는 여성들이 많더라.
나영석 :
하하. 주 시청층이 여성이다.

Q. 또 벌써부터 이 프로그램이 하나의 기준점을 마련한 것이, 할배들에게 공감을 한다면 나는 나이가 든 세대, 이서진 씨에 공감을 한다면 아직은 젊은 세대라는 말도 나오고.
나영석 :
헉. 나는 그럼 나이가 들었나보다.

Q. 당연히 아니라고 할 테지만, 물어보겠다. 어느 방송에서 ‘나영석은 빌 게이츠, 김태호는 스티브 잡스’라고 비유한 것을 혹시 알고 있나. 그러니까 당신은 정말 천재인 건지 궁금하다.
나영석 :
보았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김태호 PD님이 스티브 잡스 일지는 모르지만 나는 결코 빌게이츠가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김태호 PD님은 옆에서 보아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많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다만 인복이 좋았다. 이우정 작가와도 오랫동안 같이 일했고, 새로 회사로 옮겨 아는 사람도 없었지만 좋은 후배들을 만났고 큰 일을 많이 해줬다. 빌 게이츠가 과연 주변의 도움을 받았을까, 그 사람은 자기가 똑똑해서 성공한 케이스 아닐까. 나와는 다르다. 나는 지극히 운이 좋은 케이스다.

Q. 그렇다면 ‘나영석스럽다’는 무슨 의미를 가진 말이라고 생각하나.
나영석 :
과거의 내가 가장 좋아했던 예능은 김영희(MBC) PD님의 ‘칭찬합시다’ 류의 착한 예능이었다. 웃음 속에서도 생각할 거리들이 있는 그런. 처음 PD가 되어서는 내가 뭘 잘하는지 나도 잘 몰랐지만 만들다 보니 ‘1박2일’도 그러했고, 지금의 프로그램도 그렇고 좋은 앙금이 남는 프로그램을 하게 된다. 보기에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스토리를 따라가는 그런 프로그램. 그리고 TV를 끄고 누워 할아버지에게 전화 한 통할까 생각하게 되는 그런.

Q. 그래도 환경(KBS에서 CJ로)을 바꾸면서는 완전히 색다른 시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혹시 해보진 않았을까.
나영석 :
결국은 내 인생에서 다른 도전을 하고싶은 기회를 찾았고, 그러기에 좋은 곳이라 판단해 이곳으로 왔다. 케이블은 또 많은 시도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처음에는 완전히 다른 것을 해보아야지라는 생각도 했고 다른 기획들도 많이 해보았는데, 결국 꽂힌 것은 ‘꽃보다 할배’였다. 돌고 돌다 결국 비슷하게 돌아온 것이기도 하다. 결국은 내가 그런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현재는 고민 없이 하고 있다. 이제 시작이기도 하고.

Q. 다음 여행은 겨울로 잡혀 있다고 들었다. 결국 그때가 돼야 H4의 스케줄이 맞을 수 있다는 것인데, 그 말은 멤버의 변화 없이 H4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는 의지로 읽힌다.
나영석 :
현재 선생님들의 드라마 스케줄을 보니 12월이나 1월이 돼야 다시 나가실 수 있는 여유가 되더라. 이분들이 시작한 컨텐츠이고, 리얼리티 쇼라는 것이 멤버를 바꿔보는 것도 재미가 있겠지만 쌓아가는 재미들도 크기 때문에 세 번째 여행을 꼭 같이 가고 싶다. 하지만 어떤 사정이 생길 수도 있고 무조건 이렇게 가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사정에 따라 다른 분들이 들어올 수도 있다. 물론 현재의 선생님들을 기준으로 생각할 테지만 말이다.

짐꾼 이서진

Q. 짐꾼에도 변화는 없을까. 이서진 씨는 많이 힘들어했지만, 이제는 짐꾼 자리를 노리는 분들도 상당히 많다.
나영석 :
반응은 그런데 실제로 연락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서진 씨도 대만 여행까지는 같이 갔으니까 당분간은 방송에 나올 테고 희망사항은 겨울여행도 함께 갔으면 하지만 상황은 열려있다. 갑자기 서진 씨가 드라마에 들어갈 수도 있지 않나. 그러면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우리 프로그램 때문에 어르신들과 서진 씨의 본업이 지장 받는 것은 원치 않는다.

Q. 겨울이 오기 전까지의 계획은?
나영석 :
지금이 배낭여행 프로젝트 1탄이다. ‘꽃보다 할배’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배낭여행이라는 테마를 변주해볼 생각이다. 시기는 대만 것이 끝난 가을 정도가 될 것이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CJ E&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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