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포스터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에 지쳤다면, 이번 달에는 영화제로 떠나 보자. 8월에는 3개의 영화제가 줄줄이 이어진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14일부터 19일까지,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가 22일부터 26일까지, 그리고 광주국제영화제가 29일부터 열린다. 특히 이번 주에 마지막 휴가를 불태우고 싶다면 제천영화제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제천영화제의 묘미는, 청풍 호반 무대(야외)에서 시네마 콘서트를 보고 뮤지션들의 ‘기운생동’ 음악을 즐기는데 있다. 이번에는 해롤드 로이드의 무성영화 ‘안전불감증’, ‘키드 브라더’가 상영된다. 무성영화 전문 연주자 필립 칼리의 피아노 연주가 해롤드의 ‘포복절도’ 슬랩스틱 코미디에 감동을 더할 예정이다. 괜히 열대야에 시달리면서 좀비처럼 휑한 눈으로 아침을 맞이하기보다는 제천에서 광란의 밤을 꿈꾸는 것이 좋다. 만약을 안타깝게 제천을 놓쳤다면, 다음 주 순천에서 동물영화제와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같이 패키지로 즐길 것을 추천한다. 특별한 여행을 원한다면 언제나 남다른 센스가 필요하다.

로티 데이비즈의 ‘Lous story’(위), 팀 시몬스의 ‘Swamp’
제천에서 음악 영화에 푹 빠지는 것은 즐겁다. 하지만 좀 더 볼거리가 필요하다면, 12회를 맞이하는 동강국제사진제를 권한다. 동강사진제는 영월 동강사진박물관에서 9월 22일까지 진행된다. 하지만 사진제만 구경하러 떠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제천영화제에 갔다가 한 번에 영월까지 들리는 것이 좋다. 고속버스를 타도 제천에서 영월은 1시간 거리이므로, 이동에 부담은 없다. 올해 사진제는 두 개의 전시만 놓치지 않으면 된다. 먼저 동강사진상 수상자인 이정진의 사진이다. ‘Thing / Wind’시리즈를 선보인다. ‘사물(Thing)’시리즈는 숟가락과 같은 소박한 물건들을 채택한 후 본래 기능을 해체한다. 우리가 사물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고민한다. ‘바람(Wind)’시리즈는 하늘, 구름, 바다와 같은 풍경을 대상으로 삼았다. 한지를 이용해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변화시킨다. 또 하나는 특별기획전 ‘구성적 풍경: 영국 현대사진’이다. 모리지오 안제리, 팀 시몬스, 로티 데이비즈, 톰 헌터를 포함한 13명 영국 현대작가들의 작품 60점이 전시 중이다. 각각 다양한 관점으로 사진의 리얼리티를 창조했다. 다양한 내러티브의 구현, 오브제를 이용한 이미지 구축, 비디오 영상을 통한 이미지 구성 등을 시도한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작업한 사진들이라서 어떤 일관성을 엿볼 수는 없다. 다만 전시 제목처럼 어떤 식으로 이미지를 구성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보는 것이 좋다. 단순히 미를 추구한 사진들이 아니다. 전략적인 배치와 연출을 즐기는 현대 사진의 속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제프 다이어의 책 ‘지속의 순간들’ 표지

이번 여행에 어울리는 책은 아무래도 사진에 관한 것이 좋겠다. 여행을 떠날 때 괜히 욕심을 부리면서 여러 권의 책을 챙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짧은 여행의 경우, 단 한 권으로 족하다. 제프 다이어의 ‘지속의 순간들’을 가방에 꼭 넣어보자.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면 자꾸 카메라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행위는 즐거워도, 정작 관찰의 묘미는 사진을 찍지 않는 순간에 찾아온다. 사진으로 기록될 수 없는 것을 기억으로 남기려고 할 때 더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지속의 순간들’은 사진 입문서가 아니다. 사진을 철학적으로 분석한 책도 아니다. 미국 사진의 역사를 관통하는 작가들과 그들의 사진을 자기만의 이슈를 갖고 줄줄이 나열한다. ‘카메라가 한 대도 없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제프 다이어는 굳이 사진가가 아니라도 나름의 방식으로 사진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물론 이 책은 미사여구를 동원해 사진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답을 찾는 예찬서가 아니다. 차라리 하나의 토픽으로 바라 본 사진의 역사에 가깝다. 역사적인 사진의 소재들(눈, 손, 얼굴 등)을 추적하면서 사진가들이 사진을 어떻게 고민해 왔는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앙드레 케르테스, 워커 에반스, 다이앤 아버스, 리처드 아베돈 등의 사진가들을 잘 모르면 사진에 대한 열정이 피부 깊숙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을 10배로 재미있게 보는 방법 중에 하나는, 사진가들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인터넷으로 사진을 검색하는 거다. 그러면 곧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다!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어딘가로 떠날 수 없다면 뉴올리언스의 열기를 전해줄 연극을 하나 골라보자. 영화 ‘위대한 개츠비’로 피츠제럴드의 1920년대를 즐겼다면, 1940년대 미국 남부로 가는 것도 좋다. 이 재즈의 황금기에, 테네시 윌리엄스의 대표작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출발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지금껏 수차례 연극으로 봤지만, 엘리아 카잔의 1951년 영화만큼 감동적인 순간은 없었다. 블랑쉬 역의 비비안 리와 스탠리 역의 말론 브란도가 서로를 비난하고 질책하는 장면은 결코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몰락한 지주의 딸 블랑쉬가 뉴올리언스의 빈민가로 여동생 스텔라를 만나러 온다. 여기서 스텔라의 남편 스탠리와 갈등에 휩싸인다. 블랑쉬의 숨겨진 과거가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무너지는 이야기다. 그녀는 “살아 숨쉬고 싶다”고 외치지만 외로움에서 도망치기 위해 끝없이 욕망한다. 그 욕망은 현실도피를 추구할 뿐이다. 만약 이 티켓을 구입한다면 ‘김소희’라는 배우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그녀가 보여준 최고의 연기는 역시 ‘하녀들’에서 마담 역이었다. 그녀는 카리스마와 압도적인 흡입력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블랑쉬 캐릭터 또한 그녀의 장점이 모두 살아있다. 부드러움과 허영, 상처받기 쉬운 감성과 광기를 김소희만의 호흡으로 표출한다. 즉 김소희를 위한, 김소희에 의한 연극이다. 하지만 이것이 독이 될 수도 있다. 스탠리와 스텔라의 에너지가 다소 약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명동예술극장에서 9월 1일까지 계속 된다.

글. 전종혁 대중문화 평론가 hubul2@naver.com
편집. 기명균 kikiki@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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