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줄 알았습니다. KBS 트리플 토너먼트에서 전기뱀장어가 네미시스, 로맨틱 펀치와 같은 경연조로 편성되었을 때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그들의 탈락을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전기뱀장어의 팬 대부분은 방송이 끝난 후 가장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을 노래가 다름 아닌 이들의 ‘송곳니’임을 예감했습니다. 유혹적인 눈빛, 화려한 연주, 도발적인 몸짓, 한 서린 목소리는 없습니다. 심지어 “니가 잘라주는 돈가스가 좋아”라는 사소하고 수줍은 고백을 말하면서도 “그거 아니”라고 빙빙 말을 돌리는 이들에게서 심사위원들이 바라는 패기와 열정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최신유행’에서는 여자친구의 옷차림에 신경 쓰는 속 좁은 남자의 목소리로 “우린 결국 패배하겠지”라고 운명을 자백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심사위원들은 모르고, 우리는 알고 있었던 게 있습니다. 이렇게 쭈뼛쭈뼛, 괜스레 납작한 운동화로 가로수의 밑둥을 쿡쿡 쥐어박는 것 같은 기세야 말로 ‘최신 유행’이라는 점 말입니다.

그래서 전기뱀장어의 가장 큰 매력은 아직 이들이 뱀인지, 생선인지 알쏭달쏭하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발표한 첫 EP에도, 올 봄 만들어낸 좀 더 매끈해진 앨범에도 우리가 들었던 밴드들의 흔적은 곳곳에 묻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음악은 진부하거나 지루하지 않습니다. 무대를 휘어잡고 객석을 뒤흔드는 록밴드를 보고 들었던 것은 마찬가지이나 전기뱀장어는 그 경험의 배경까지도 음악에 포함시켜내거든요. 교실의 맨 뒷자리, 심야의 편의점, 내릴 곳을 지나쳐 버린 지하철에서 음악을 듣던 소년들은 결국 그렇게 되지 못할 운명을 알면서도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부르고야 맙니다. 주먹을 불끈 쥐지는 않았지만 ‘저 거친 참치들처럼’ 바다를 건너겠다고 다짐도 합니다. 꿈과 마음과 현실과 태도가 모두 묘하게 어긋난 것 같지만 그래서 이들의 노래는 때때로 찌릿하게 오늘의 감수성을 건드립니다. 결국 어떤 밴드도 기억 속의 록스타처럼 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운명이 가능한 시절은 지나버렸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류를 훤히 밝히는 불빛을 발전하는 것만이 밴드의 사명은 아니잖아요. 어디쯤 흘러가고 있든, 언제라도 알아볼 수 있게 반짝반짝 빛을 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작은 불빛을 지켜보며 꾸준한 응원을 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최신의 유행 되겠습니다.

글. 윤고모 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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