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이미지는 의외로 쉽게 결정된다. 하지만 이미지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얘기해주는 것이 아니듯, 뮤지컬 배우 박정표도 마찬가지이다. 뮤지컬 <김종욱 찾기>와 <온에어 시즌3>의 멀티맨을 연달아 맡으며 코믹한 이미지로 부각되기도 했지만, 그의 본 모습은 현재 그가 출연하는 뮤지컬 <빨래>에 가장 맞닿아있다. 낮게, 그리고 조근조근하게 이어지는 목소리, 정작 본인은 쉽게 웃지 않지만 듣는 이는 미소 짓게 만드는 화법, 그리고 느릿한 속도 사이에 어쩔 수 없이 삐져나오는 경상도 사투리의 흔적. 그 모든 것들이 조그마한 동네 점방 평상에 앉아 하루의 일상을 툭툭 털어내는 작품과 잘 어울린다. 배우가 작품을 닮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이런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관객에게도, 배우에게도 행운인지도 모른다. 임창정, 정문성과 함께 솔롱고가 된 뮤지컬 배우 박정표를 맑고 청명한 가을하늘을 벗 삼은 대학로에서 만났다.

<빨래>는 참 희한한 작품이다. 관객들이 분명 눈은 울고 있는데, 입은 웃고 있다.
박정표
: 처음 봤을 때는 ‘아 이거 정확한 신파구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울어야 할 때 울려주고, 풀어져야 할 때 풀어주니까. (웃음) 그런데 그 신파의 힘이 정말 엄청나더라. 그리고 실제 작업을 해보니 우려했던 부분을 덮을 정도로 더 많은 가치가 있었다. 물론 공연할 때는 힘들지만, 끝나고 나면 공연하는 우리도 치유가 될 때가 있다. 집에 가면 행복하고.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다 감동하는 작품인 것 같다.

“무지개라는 뜻의 솔롱고스, 절대 어두워지면 안 된다”

2008년에 이어 두 번째 참여하게 되었다. <빨래>의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어땠나.
박정표
: 보통의 대본들은 읽다보면 말이라기보다는 글이라는 느낌이 많이 든다. 그런데 <빨래>의 대사들은 입에 착착 감겼다. (웃음) 실제로 우리 엄마가 오늘 아침에 나한테 했던 말들이 글로 적혀 있으니 재밌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도 편찮으신데, 주인 할머니가 “산 것들은 원래 이렇게 다 자기 냄시 풍기고 사는 거여”라는 대사가 많이 와 닿았다. 그런 부분들이 현재의 나와 많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와 닿는 부분들은 그런 현실적인 부분이었지만, 당신이 맡은 역은 몽골에서 온 이주노동자 솔롱고다. 연기를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
박정표
: 한국에 들어온 지 10년쯤 된 몽골인 부부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들이 제일먼저 한 얘기가 나 같이 피부가 하얗고 체구가 작은 사람은 몽골에 없다는 거였다. (웃음) 우선은 한국어와 몽골어의 언어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10년간 한국에서 살았어도 그들이 안 되는 지점들이 몇 군데 있었다. 발음 부분은 안 되는 지점을 중점적으로 연습했고, 몽골 인사말들도 녹음해서 들었던 것 같다.

상대적으로 이주노동자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가 없었던 일반 관객들은 이 작품으로 그들의 시각과 생각을 엿보는 시간을 갖는다. 특히 솔롱고가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대학생이라는 설정은 좀 놀라웠다.
박정표
: 몽골인들은 워낙 남성적이고 진취적이라 젊은 사람들이 넓은 곳으로 많이 나가고 싶어 한다고 한다. 그래서 배움에 대한 욕구도 많은데, 학교에 가려면 가축을 팔아서 학비를 대야하고 그마저도 물가가 비싸서 어렵다. 그런 이유로 돈을 벌기 위해서, 그리고 솔롱고는 그 나라에서는 국어국문과 같은 곳을 나왔으니 언어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분들을 만나보면 거창한 것이 아닌 굉장히 사소한 것들에서 많이 힘들어했다. 예를 들면 한여름에 같은 테이블에서 밥을 먹어도 자신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면서 선풍기를 아예 돌려버릴 때도 있다고 하더라.

남성적인 느낌이 많은 몽골인과 달리, 박정표의 솔롱고는 의외로 조근조근하면서도 할 말 다 하는 스타일이지 않나. 현재도 임창정, 정문성과 같이 작업하고 있지만 다른 배우들과도 차별되는 부분이 그 지점이라 생각한다.
박정표
: 관객들이 나를 솔롱고라고 믿고 보게 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진짜처럼 보여줘야 하고, 그러려면 나와 닮은 부분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실제 몽골인과는 다르지만 내가 느끼는 대로 표현하는 거다. 하지만 한 가지 결심한 부분은 너무 어둡게 가면 안 된다는 거였다. 무지개라는 뜻의 솔롱고스는 원래 영희 같은 여자이름이라는데, 남자에게 이 이름을 붙인 이유가 있지 않겠나. 그리고 솔롱고가 스물다섯인데, 나도 그때는 군 제대하고 세상 무서운 게 없었다. 그 나이 때는 뇌가 없을 때다. (웃음) 자기 고민도 많고 몸이 아프면서도 옆집에 여자 이사 왔다고 또 좋아하는 모습 봐라. 어리고 청춘인거다. (웃음)

“봉천동에서 김광석, 소주와 함께 보낸 첫 서울살이”

스물다섯 본인도 뇌가 없을 때였다고 하니, 옛날 얘기를 해보자.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의 추천으로 연기를 시작하게 됐다고 하던데.
박정표
: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H.O.T, 젝키 붐이 일어났고, 나도 귀 뚫고 춤추러 다녔다. 특히 젝키 김재덕의 ‘백다운’ 춤을 췄는데, 사실 그건 특별한 기술 없이 아픔을 참는 게 포인트인 춤이다. 하하. 그런데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면 거기가 자갈밭이고 운동장이고 가리지 않고 그냥 쓰러졌다. 부산에서 열리는 댄스경연대회에서 장우혁이 상 받을 때 나도 받았었다. 그렇게 친구들이랑 2~3년을 춤추고 돌아다니니까 부모님이 옷도 다 불태우고 난리도 아니었다. 학교에서도 우리반에 웃음소리가 나면 “박정표, 나와” 할 정도로 유명했고, 교감, 교장 선생님한테도 맞기도 많이 맞고, 칭찬도 많이 받았었다.

국어 선생님 얘기는 언제 나오나. (웃음)
박정표
: 그렇게 놀면서도 사람들이 꿈이 뭐냐고 물으면 방송국 PD, 아나운서, 기자 이런 말을 했다. 알 수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찬 때였는데 나는 사실 중학교 때 실력으로 수능을 본거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공부를 안했으니 춤으로 대학을 가려고 해도 체계적인 실기 준비가 안됐던 상황이었는데 그때 선생님이 연극영화과 얘기를 해주셨다. 국어선생님은 부산에서 <자갈치>라는 연극을 만든 희곡작가였는데, 연극영화과에 가서도 네가 원하는 걸 할 수 있으니 가보라며 연기학원을 소개시켜주셨고, 그 곳에서 이재용 선생님을 만났다. 그런데 나는 연기라는 걸 전혀 알지 못했는데 주변에 다른 친구들은 너무 잘하고, 학교에선 그래도 예쁨 받았는데 여기서는 맨날 혼나다 보니까 오기가 생기더라.

서울에서 생활한 지 6년째라고 했는데, 그럼 부산에서는 언제 올라오게 됐나.
박정표
: 남들은 군에 가서 연기를 계속할지 그만둘지 고민한다고 하던데 나는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의경으로 갔다. 지금 조승우 씨가 있는 호루라기 연극단이 부산에는 포돌이 홍보단이라는 이름으로 있었는데, 자대배치도 받기 전 오디션 소식을 듣고 외박을 나가서 시험을 봤다. 우여곡절 끝에 합격해 라이브 카페 사업을 하다 경찰이 되신 반장님이랑 다른 고참들에게서 참 많이 맞으면서 배웠다. (웃음) 그리고 군제대 후 고향을 지키려 했으나, 사람들은 직업이 배우라고 하면 먹고 살만 하냐고 물었다. 사실 그런 형편이 아니었는데 그러다보니까 이게 직업이 아니고 과도한 취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보수가 적어도 내가 일한만큼 돈을 벌면 이건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어 서울행을 결심했다. <빨래>에도 나오는 봉천동에서 “철들면 재미없지 않겠냐”며 록 하던 친구랑 나날이 김광석과 소주와 함께하는 제 2차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웃음)

“불가능할지 몰라도 제대로 하는 착한 배우가 되고 싶다”

그동안 대학로에서 창작뮤지컬과 소극장 작품을 주로 해왔는데, 올 연말 <웨딩싱어>에 참여하게 됐다.
박정표
: 로비(박건형-황정민)의 밴드에서 피아노 치면서 노래하는 게이 조지 역을 맡았다. 오디션 볼 때 보이스가 주인공에 어울리는데 왜 이 역을 지원했냐고 하길래, 난 표 못 판다고 했다. (웃음) 작품은 어떻게든 하고 싶었고, 오디션에 떨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지원할 때도 그냥 밴드 중 한 명이었거니 했을 정도로 정확하게는 잘 몰랐다. 그래서 잘 모르지만 시켜주시면 이 자리는 꽉 채울 자신 있다고 했더니 시켜주셨다.

<웨딩싱어>는 대극장에서 하는 라이선스 무비컬이다. 새로운 도전이 될 것 같은데.
박정표
: 내가 겁낼 필요는 없고 하던대로 하면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캐스팅이 발표됐는데 황정민-박건형-방진의-윤공주 밑에 내 이름이 있더라. 그거 보니까 얘는 누구야 싶었다. 재밌겠다 싶으면서도 유명한 분들이 많이 나오니 내가 누가 되면 안 되겠다는 부분에서는 좀 부담이 된다.

올해로 서른이 됐다. 서른을 맞으면서 어떤 기분이 들었나.
박정표
: 서른이 돼서 반가운 것은 이제 좀 제대로 시작해볼 수 있겠다는 거다.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또 달라지기도 하겠지만 나는 ‘서른 즈음에’ 들으면서 우울해하기 보다는, 서른 되던 날 “엄마, 나 이제 서른이다”라고 전화 했을 정도였다. (웃음) 이제 좀 더 착해지고 작업할 때도 제대로 해보고 싶다.

더욱 각오를 다지는 단계에 이르렀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박정표
: 제대로 하는 착한 배우가 되고 싶다. 하는 일도 제대로 해내면서 모든 사람이 다 착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서 하는 일이고 그걸 관객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모난 사람이 그걸 잘 할까 싶다. 그날 들어왔던 관객이 낸 비용만큼 돌아가는 길이라도 잘 봤다는 생각할 정도로, 작업 전후로 전화 한 통 편하게 할 수 있는 착한 배우로 되고 싶다. 그리고 연기도 아직은 기복이 커서 페이스를 유지하는 걸 연습해야 될 것 같다. 꿈은 배우였는데 이제 검색창에 치면 배우라고 나오니까 (웃음) 그건 이룬 것 같고, 대신에 욕심이 있다면 제대로 하는 착한 배우가 되고 싶다.

글. 장경진 (thre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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