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서 SBS <아내의 유혹>은 80%의 시청률을 기록 중이라고 한다. KBS <소문난 칠공주>의 출연진은 중국에서의 인기에 중국 프로모션을 가졌다. 한국의 방송가 주변에는 한류 스타들의 얼굴을 보려는 일본인 관광객들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한류는 2000년대 한국 최고의 문화 상품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국 드라마는 아시아 전체에서 인기를 얻고, 한류 스타는 중동 지역에도 팬이 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주장했다. “한국 드라마가 아시아를 지배했다.” 하지만, 이제는 환상에서 깨야할 시간이다. 한류가, 한국 드라마가 아시아 시장을 지배했는데 왜 한국 드라마 산업은 갈수록 불황일까. 한류 스타들은 지금 한국에서 보도되는 것 만큼 해외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을까. KBS <겨울연가>가 일본에 신드롬을 일으켰을 때도, MBC <대장금>이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얻었을 때도 아닌, 바로 2009년 지금 한류의 현실을 <10 아시아>가 되짚었다. 한류의 중심에 있는 인물에게 듣는 한류에 관한 이야기와 ‘한류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전문가들의 충고, 그리고 한류스타의 소비 과정을 추적한 기사도 준비했다. 거품을 뺀 한류의 현실은 어떤 모습일까.

요즘 권상우는 위기다. 영화 <야수>, <숙명>,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 등은 전국 관객수 100만 명 안팎을 기록하는데 그쳤고, MBC <슬픈연가>, KBS <못된 사랑> 등도 연이어 실패했다. 하지만 권상우는 최근 MBC <신데렐라맨>에 출연했고, 여전히 매스컴의 관심을 받는다. 이 미스터리의 해답은 주지훈이 알려준다. 주지훈이 출연 예정이었던 드라마 <도쿄타워>는 그의 마약 복용 사건과 함께 일본 측에서 투자를 취소, 제작이 무산될 상황이다. 주지훈은 최근 일본 포털 사이트 라이브 도어가 실시한 ‘가장 좋아하는 한국 배우’ 설문조사 1위였다.

“수출이 없으면 드라마의 손익 분기점을 맞출 수 없다”

요즘 한국 드라마 업계에서 한류 시장은 제작사의 운명을 좌우한다. 경기 불황과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 등으로 광고 시장이 축소되고, DVD등의 2차 판권 시장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한류 시장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BOF의 표종록 대표는 <10 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수출이 없다면 드라마 제작의 손익 분기점을 맞출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권상우 같은 한류스타가 국내 흥행실패와 상관없이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는 이유다. 박용하 주연의 KBS <남자 이야기>는 일본에 160만 달러를 받고 선 판매 됐고, 최지우 주연의 SBS <스타의 연인>은 일본 미디어 기업 덴쯔사의 투자를 받았다. 한류스타만 잡는다면, 한류는 국내 성공 여부에 상관없이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다.

그러나 이 주문은 오히려 한국 드라마에 독이 될 수도 있다. KBS <꽃보다 남자>, MBC <에덴의 동쪽>, KBS <바람의 나라>는 아시아 전체에서 각각 50억 정도의 수출을 기록했다. 이 중 대부분은 한류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일본에서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구매자들에게 한류 드라마는 ‘비싼’ 작품들이 아니다. KBI(한국영상산업진흥원)의 한 관계자는 “일본이 한국 드라마를 사는 비용은 그들의 GDP에 대비해 높지 않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국 케이블 TV 채널들이 자체 제작 드라마보다 싼 가격에 미국 드라마를 수입하듯, 일본도 ‘싸게 먹히는’ 한국 드라마를 구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제작사들에게 그 돈은 드라마 제작을 결정지을 만큼은 된다. 이 때문에 한류스타의 위치는 국내외의 실제 흥행 성적과 상관없이 격상된다. 물론 그 중에는 <겨울연가>같은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겨울연가>는 NHK 위성 방송과 공중파, 본방과 재방송 등을 통해 경쟁력을 인정받으며 성공했다. 이런 검증 시스템 안에서 한류 스타 캐스팅만으로 성공하기는 어렵다. MBC <태왕사신기>는 배용준의 높은 인지도로 처음부터 일본 공중파를 통해 방송됐지만, 시청률은 한 자릿수에 그쳤다. KBI의 관계자는 “한국 드라마 수출액은 2007년보다 2008년에 증가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사이 만들어진 드라마들이 전 해의 작품들보다 재밌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겨울연가>처럼 일본 내에서 주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지 않으면, 한류 스타가 출연하는 드라마는 단지 일본 수출로 제작비를 보전할 뿐이다.

‘일본 납품용 드라마’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

이 지점에서 드라마 시장의 왜곡이 발생한다. 김광수 코어컨텐츠미디어 제작이사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를 제작하며 “충무로의 불합리한 거품을 다 빼버리겠다”고 말했다.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국내 성적만 본다면 명백한 실패작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작비는 불과 15억 원이고, 일본에 수출 될 예정이다. 여기에 권상우의 팬들을 겨냥한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의 기념우표 등 부가 상품을 수출하면 15억 원 정도는 회수 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SBS <천국의 계단>의 성공 뒤 제작된 SBS <천국의 나무>는 방영 당시 부실한 완성도는 물론, 대사의 상당수가 일본어로 채워져 ‘일본 납품용 드라마’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작품들이 하나의 수익구조처럼 자리 잡은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과거의 홍콩처럼 작품의 완성도를 관리하지 못해 한 순간 몰락할 수도 있다”는 한 제작사 관계자의 말은 과장처럼 들리지 않는다.

특히 한국 드라마 업계와 매니지먼트사들이 한류 시장에 어울리는 제작 시스템을 만들지 못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KBI의 관계자는 “콘텐츠는 단순 판매 보다는 그 뒤의 파급 효과가 더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 제작자들은 누구도 이에 대한 데이터를 갖지 못했다. 그만큼 기초부터 부실하다”고 말했다. 또한 한류 드라마 관계자들 중 일본의 제작 및 유통 시스템에 직접 파고든 경우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부분은 가요계가 우위에 있다. SM엔터테인먼트의 동방신기는 최근 일본에서 활동하는 해외 가수로는 처음으로 오리콘 위클리 싱글 차트 1위를 6번 차지했다. 물론 동방신기 앞에는 보아가 있었다. 철저하게 ‘밑에서 위로 오르는’ 일본의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 적응하면서 고정팬을 모은 결과다. SM엔터테인먼트의 관계자는 “동방신기는 일본 데뷔 당시 한국에서 연말 시상식 대상을 탄 다음날 일본의 한 대학 강당에서 200명의 관객들을 앞에 두고 공연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물론 일본에서는 여전히 몇 십억 대의 가격으로 한국 드라마가 팔린다. 언론에서는 <아내의 유혹>이 몽골에서, <소문난 칠공주>가 중국에서 인기라는 보도가 나온다. 하지만 현지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제작 및 수익 구조 없이 지금 이상의 수익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현재 한국 드라마 제작사가 실질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나라는 일본뿐이다. 표종록 대표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 등의 문제로 인해 일본을 제외한 나라에서는 콘텐츠 판매로 벌 수 있는 돈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도 판권 판매를 제외하면 DVD나 OST 판매가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의 전부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완성도를 비난 받았던 작품이 일본에서 어느 정도의 수익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꽃보다 남자>는 일본 수출과 DVD 판매를 위해 음악, 편집, CG등을 대폭 수정할 예정이다.

기형적인 한류 시장의 치료법

한류 스타들의 매니지먼트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배용준 같은 톱스타는 ‘사업’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 만큼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팬들만을 대상으로 한 수익 활동을 반복한다. 일본에서 한류 스타들의 프로모션을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배용준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빼면 한류 스타의 주 수입원은 대부분 팬미팅이다. 보통 1인당 15만 원 정도를 받는다. 악수를 하거나 포옹을 하면 돈을 더 받기도 한다. 홈페이지도 대부분 유료로 운영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최근 일부의 일본인들이 반한류나 혐한류 정서를 갖게 된 것은 ‘한류스타들은 돈만 벌어가고 다시 돌아간다’는 인식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음반과 DVD등이 대부분 불법 복제되는 상황에서 연기자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최고 수준의 스타가 돼 대기업 CF에 출연하거나, 공연 활동을 하는 것뿐이다. SM엔터테인먼트의 관계자는 “중국에서 가장 확실한 수입원은 공연 티켓 판매다. 그래서 중국에서 가수의 인기는 얼마나 많은 지역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가로 결정 된다”고 말했다. 비, 슈퍼주니어, 장나라 등이 중화권의 스타인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류는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한류 팬들은 여전히 한국에 관광을 오고, <아내의 유혹>은 몽골에서 80%의 시청률을 기록한다. 하지만 몽골은 <아내의 유혹>을 불법 방영하고,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는 ‘한류 프리미엄 드라마’와 ‘한류 납품 드라마’의 기로에 서 있다. 어떤 감독, 어떤 제작사의 작품이 아니라 주지훈이 출연하느냐 마느냐로 제작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지금 한국 드라마 산업이 보여주는 한류의 현재다. 국내 드라마 산업의 준비 없이 갑자기 커진 한류 시장은 산업의 흐름을 바꿔놨지만, 그 변화의 끝에 남은 것은 내수 시장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제작비 증가와 ‘막장 드라마’가 대세가 된 콘텐츠의 퇴행뿐이다. 물론, 이 상황에 대한 해답은 누구나 알고 있다. 국내에서도 예상 밖의 성공을 거둔 KBS <태양의 여자>는 콘텐츠의 재미만으로 일본, 중국, 대만에 수출됐다. 지금 필요한 건 일본을 위한 납품용 드라마도, 수출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들인 드라마도 아니다. 필요한 건 재정적인 한계 내에서 짜임새 있는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합리적인 제작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제작사와 방송사, 매니지먼트가 함께 노력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눈앞에 떨어질 돈이냐, 장기적인 관점을 갖느냐는 것일 뿐이다. 여전히 신문 지상에 ‘한류 스타’, ‘일본 열광’이라는 헤드라인이 걸리고 있는 지금,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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