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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밤을 걷는 선비’ 4회 2015년 7월 16일 목요일 오후 10시

다섯 줄 요약
김성열(이준기)은 120년 전에 숨진 이명희(김소은)와 꼭 닮은 여인을 우연히 만나자 무턱대고 얼싸안는다. 여인은 싸늘하게 외면하고 가버리는데, 성열은 120년 전 자신이 흡혈귀가 되던 날의 기억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괴로워한다. 음란서생을 자처하는 자가 자신을 점차 위협하고 있다는 생각에 귀(이수혁)는 국정에 개입하고 백성을 해치는 흉포함이 더욱 심해진다. 음란서생을 잡아들이라는 추포령이 내려지는 가운데, 세손 이윤(심창민)이 정현세자의 비망록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해 온 십년 세월의 비밀이 현재와 연결고리를 찾는다.

리뷰
성열은 길에서 명희를 닮은 아니 명희 자체로 보이는 그녀를 보자마자 “명희야!”를 외치며 끌어안는다. 쓰개치마를 내려 얼굴을 확인하고 곧바로 끌어안는 등 누가 봐도 실성한 사람처럼 군다. 그러나 당사자인 여인은 ‘당신을 모른다’며 싸늘하게 쳐다본다. 실은 명희의 환생처럼 보이는 그녀가 자신을 외면한 뒤부터 성열은 그야말로 정신을 놓아버린 듯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지체 높은 사람으로 보이는 이 ‘아씨’에게 함부로 손을 댔다며 몰매를 맞으면서 성열의 아픈 기억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난다. 여인이 총총히 가버리는 모습과, 성열이 혼절하며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장면이 겹쳐지며 120년 전의 비극은 고스란히 현재가 되었다.

성열의 가장 쓰라린 과거사가 비로소 상세히 재현된다. 120년 전, 세자가 역모로 죽고 명희의 목을 물며 자신이 흡혈귀가 됐음을 확인할 수밖에 없던 그날, 귀는 성열을 마음껏 비웃고 조롱했다. “김성열, 금수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 어떠냐, 정인의 피맛이?”라는 소름끼치는 저주의 말이 온 세상에 쩌렁쩌렁 울린다. 성열은 세자와 명희의 시체 앞에서 한없이 무력하고 그 무력함에 혼절할 지경이나, 그의 실존은 방금 맛 본 피 맛의 생생함이다. 인간의 피를 먹어가며 살아햐 하는 존재, 흡혈귀. 피냄새에만 전율하는 ‘금수만도 못한’ 그의 지옥 같은 고통은 120년째다.

환생한 ‘명희’와의 마주침은 김성열의 고통스런 내면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120년간의 한 순간도 잊을 수 없던 괴로움은, 역설적으로 120년 간 명희의 마지막 모습을 한 시도 잊지 못한 그의 처절한 사랑을 느끼게 했다. 어쩌면 120년을 한결같이 기다렸던 사람이었다. 그 모습 한 번만이라도 다시 볼 수 있기를, 생전의 곱디곱던 모습을 한 번만이라도 안아 보기를 말이다. 그래야만 목에 핏자국이 선명하던 마지막 모습에서 놓여날 수 있으니까. “정인의 시신이라도 거둬야 하지 않겠느냐?”며 조롱하던 귀의 목소리에 소스라쳐 깨어난 성열의 곁에는 양선이 울고 있다. 양선의 눈물 한 방울이 어쩌면 이 악몽에서 그를 잠시나마 벗어나게 한 듯 보인다. 그러나 양선을 순간 명희로 착각해 쓰러뜨리는 순간, 성열은 다시 정인의 목덜미를 물던 환영을 악몽으로 본다. 벗어날 수 없는 악몽이자 현실이다. 양선과의 사이에는 이 악몽이 가로놓여 있다.

명희의 환생처럼 보이는 최혜령은, 후반부에서 귀의 시중을 드는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소름끼치는 장면이었다. 그녀의 정체가 무엇일지 정말 환생일지 혹은 귀의 술수로 흡혈귀라도 되어 보존된 것인지 궁금증을 갖게 했으나 공포스러웠다. 귀의 손아귀에 있는 그녀가, 성열에게 어떤 위협이 될지 걱정도 되었다. 귀는 “다음에 너를 명희라고 부르는 자를 보거든 꼭 내 앞에 데려오거라. 그것이 너를 살려둔 이유”라며 이 공포를 부채질했다. 혜령의 아름답지만 밀랍인형 같은 표정마저 앞으로 성열에게 닥칠 고난을 예고하는 듯했다.

음란서생이 누구냐에 대한 소문들이 백성들 사이에도 퍼지는 속에서, 세손 이윤이 음란서생일 것이라는 여러 가지 근거와 지난 십년의 비밀들이 흥미롭게 펼쳐졌다. 현조는 이윤에게 “음란서생을 잡고 사동세자 기일에 연회를 열라”고 명령했는데, 이 진혼제는 김성열의 기지로 실제 음란서생을 보호하는 조처가 된다. 귀와 왕실의 대결구도, 음란서생을 잡으려는 귀의 발광, 귀와 성열의 피할 수 없는 결전을 예고해 하는 긴장감을 높였다.

수다 포인트
-명희를 잃은 후의 성열의 고통스런 내면 풍경을 들여다보고 나니, 오히려 그의 깊은 사랑이 절실히 느껴지네요. 얼마나 사랑했는지 비로소 알겠어요.
-귀가 비망록을 찾아내겠다며 혈안이 되어 백성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데 “들짐승의 짓으로 무마했다. 며칠 시끄럽겠지만 곧 조용해질 것”이라며 왕에게 보고하던 대신들의 모습에 아연실색했네요. 정치는 원래 그런 건가요.
-방탕함을 가장했던 세손 이윤의 오랜 준비의 힘을 비로소 확인했네요. 세손의 벽서가 정말 세상을 바로잡는 시작이 되기를!

김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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