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전과] chapter 19. <벽을 뚫는 남자>
단원의 특징
① 불현듯 벽을 통과하는 능력을 갖게 된 한 공무원을 통해 인생과 사랑의 기적을 이야기하는 송스루 뮤지컬로 원작은 프랑스 작가 마르셀 에메의 단편소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Le Passe Muraille).
② 마르셀 에메는 기발한 상상력과 풍자, 위트의 소설로 사랑받았는데 소설의 배경이자 실제 그가 거주한 몽마르트 노르뱅로 사거리에 벽을 뚫는 남자의 동상이 세워져있다고 한다.
③ 박상원과 엄기준이 벽을 뚫는 남자 듀티율을 맡아 2006년에 국내 초연되었으며 임창정, 이종혁, 고창석, 임형준 등이 참여한 세 번째 공연이 2월 6일까지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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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명을 알아봅시다: 우울증을 동반한 후천적 연애컴플렉스 성적컴플렉스 사회적응장애 신드롬
우체국 민원과 말단 공무원인 듀티율이 진단받은 병명. 합병증으로 벽을 인식하지 못하는 세포물렁증이 발생해 벽을 뚫는 능력을 갖게 됐다. 듀티율은 매사 ‘~했습니다만’이라는 말을 달고 살 정도로 소심하고, “어쨌거나 시간은 가고 월급은 들어오”는 직장에서 유일하게 성실한 직원이지만 융통성이 없다. 여럿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한 그의 취미는 우표수집. 초능력이 생긴 후에도 홍길동이나 로빈훗처럼 대의를 가지고 움직이기보다는 자신을 알아봐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부장에게 소박한 복수를 하고 친구들에게 마음을 선물한다. 보통의 남자가 보여주는 작은 일탈과 사랑을 통해 뮤지컬은 평범한 모두의 삶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일러준다. 그리고 그 주제의 결정적인 부분은 풍자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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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점을 찾아봅시다: 공권력의 붕괴
1943년의 프랑스를 그리지만 <벽을 뚫는 남자>(이하 <벽뚫남>)가 낯설지 않은 것은 2013년의 한국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각 부서를 돌고 돌다 절대 해결되지 않는 시민의 민원부터 출세와 뇌물에만 관심 있는 경찰, 가정폭력-도박-스캔들 3관왕을 달성한 검사까지. <벽뚫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혼돈에 빠진 프랑스 사회와 공권력을 풍자한다. 특히 특수패딩을 장착해 과하게 만든 의상은 캐릭터의 특징을 탁월하게 표현한다. 허세로 가득한 부장의 어깨는 높게, 뇌물 받은 경찰의 배는 두둑하게, 축구와 발레에 집중하느라 죄수들의 생활에는 안중이 없는 교도관들의 발은 크게. 그야말로 옷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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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을 알아봅시다: 신문팔이 소년
2006년 초연과 2007년 재연에서 조정석이 맡은 역할. 그는 몽마르트를 뛰어다니며 소식을 전하는 신문팔이 소년을 통해 귀여움을 발산했다. <벽뚫남>은 12명의 배우로 총 23개의 캐릭터를 만들어내는데, 비슷한 성향을 가진 캐릭터를 한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 특징이다. 고창석과 임형준이 맡은 알콜중독 의사-첫 변론을 맡은 노년의 변호사는 코믹하게 극을 이끌고, 군가스타일의 노래를 부르던 군인출신 부장은 이어 멜로디를 변주해 검사로도 등장한다. 낮에는 채소를 팔고 밤에는 자신을 파는 여자나 몽마르트 관찰자로서의 화가, 듀티율이 벽을 뚫는 남자임을 알고 사랑에 빠진 동료 공무원 M 양 등 독특한 캐릭터도 <벽뚫남>의 관전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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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배워봅시다: ‘탈출한 듀티율’

이사벨을 향한 듀티율의 세레나데. 사실 <벽뚫남>을 지배하는 정서는 고독이다. 삶의 굴곡이 전혀 없는 듀티율과 검사 남편의 횡포로 갇혀 있는 이사벨은 물론이고, 의사와 화가, 매춘부 역시 손님이 없다. 하지만 미셸 르그랑은 53개의 경쾌하고 사랑스러운 음악으로 고독을 위로한다. 4인조 밴드가 피아노, 실로폰, 플루트, 피콜로 등의 리얼 사운드로 울림을 주고, 다양한 퍼커션으로 극의 빈틈을 촘촘히 매우며 청각을 자극한다. 특히 휘파람이나 돌림노래, 아카펠라 등의 창법은 파스텔톤의 무대와 어우러져 작품을 한층 더 따뜻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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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학습: 뮤지컬 데이트
유화풍으로 그린 하늘 아래 낮은 건물이 옹기종기 모인 몽마르트의 광장은 아련하다. 화가의 붓질에 색색의 조명이 펼쳐지거나 들장미가 피어나는 벽으로 사랑에 빠진 듀티율을 표현한 장면은 무대에서도 영상이 대세인 시대에 <벽뚫남>이 가진 아날로그의 힘을 보여준다. 듀티율이 벽을 통과하거나 갇히는 신 역시 매직디렉터의 손을 거쳐 거울과 암전으로 만든 착시의 마술. 낯선 듯 익숙하고 익숙하듯 낯선 이 뮤지컬은 엉뚱한 상상력과 리드미컬한 음악, 프랑스의 낭만으로 가득차 있다. 2시간 내내 짓는 미소로 광대가 승천하고,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니 점 찍어둔 ‘심남심녀’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사진제공. 쇼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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