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텔레토비’로 한 사람이라도 더 투표소로 인도할 수 있으면”
대선 정국이 요동칠수록 텔레토비 동산으로 시선이 쏠렸다. 현직 대통령과 여야 유력 대선 주자들의 캐릭터를 등장시킨 tvN < SNL 코리아 3 >의 ‘여의도 텔레토비’는 과감한 풍자와 기발한 패러디로 2012년 하반기 예능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이자 상징이 되었고, 시청자들은 한 주간 정세의 변화를 통해 ‘여의도 텔레토비’의 향방을 예측하며 토요일 밤을 기다렸다. 지난 12월 15일, 이번 시즌 방송을 마친 ‘여의도 텔레토비’의 마지막 녹화 현장에서 ‘또’ 김슬기, ‘문제니’ 김민교, ‘앰비’ 김원해, ‘안쳤어’ 이상훈 등 네 명의 배우들과 잠시 만났다. 아쉽게도 심한 목감기로 인해 ‘침묵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던 ‘구라돌이’ 정명옥과는 긴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여의도 텔레토비’로 한 사람이라도 더 투표소로 인도할 수 있으면”


‘또’ 역 김슬기 인터뷰

Q. ‘여의도 텔레토비’는 회차가 거듭될수록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대중들이 열광한 이유는 뭘까.

김슬기: 여태까지 이런 풍자는 없었다는 게 신선한 것 같다. 그리고 아무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재미있게 보여 주니까 관심을 많이 가져주신 것 같다.

Q. ‘또’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표현하는 캐릭터인데 연기하면서 실제 인물로부터 참고한 면이 있나.
김슬기: 실제 그 분과 비슷하게 모사하는 건 정성호 선배님이 하고 계시니까 ‘또’는 그것과 다르게 새누리당 전체를 풍자하는 캐릭터로 콘셉트를 잡았다. 박근혜 후보를 흉내 내기보다는 속마음을 살짝 드러내는, 그러면서도 사랑스럽고 귀엽게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Q. 그런데 최근 ‘베이비시터 오디션’ 코너에서는 ‘여의도 텔레토비’에서 늘 앙숙인 구라돌이의 모델인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를 연기했다.
김슬기: 힘들었다. (정)명옥 언니가 구라돌이 역할을 잘 하고 계신데 내가 이정희 후보를 맡게 돼서 부담도 됐다. 하지만 감독님께서 할 수 있다고 해 주셔서 토론 동영상을 보며 열심히 연습하다가 막상 가발을 쓰니까 내가 봐도 너무 비슷한 거다. (웃음) 이정희 후보의 특징은 발음이 굉장히 정확하고 눈빛에 흔들림이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분이 실제 하신 말과 비슷한 대사는 그 때의 억양과 음을 똑같이 따라하려고 노력했다.



Q. 유력 대선 주자인 박근혜 후보를 패러디하다 보면 항의를 받는 일은 없나. 10월 국정감사에서는 홍지만 새누리당 의원이 “박근혜 후보로 등장하는 출연자가 욕을 많이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는데.
김슬기: 그렇게 한 번 공식적으로 디스가 온 적은 있지만 그 밖에는 한 번도 항의를 받은 적이 없다. 오히려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몇 배는 많았던 것 같다. “몸조심해라” “살아야 한다” 등. (웃음) 지금은 새누리당에서도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 ‘또’를 ‘꼭’으로 바꿔서 선거운동에 데리고 다니기도 하고…하하.



Q. 하지만 ‘또’는 삐-처리되는 욕설을 할 때도 사랑스럽다.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어떤가.
김슬기: 평소에는 욕을 하지 않지만 욕 연기가 어렵지는 않다. 으하하하! 욕이라는 게, 내가 안 한다고 해서 안 듣는 건 아니니까. (정명옥: 사실 슬기가 처음엔 욕하는 걸 굉장히 어려워해서 연기자 오빠들과 함께 알려주기도 했는데 금방금방 흡수하는 것 같다.)



Q. 대사나 지문, 소품에는 다양한 코드의 패러디가 등장하는데, 최근 ‘또’의 TV 광고에 만화 <베르세르크> ‘패왕의 알’ 목걸이를 걸고 나왔다.
김슬기: 대본을 받으면 PD님께 늘 “이건 뭐예요?” “저게 뭐예요?” 물어본다. 그러면 PD님이 다 설명을 해 주시는데, 그 날은 목걸이를 걸어 주시면서 “묻지 마” 라고 하셨다. (웃음)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된 건 방송이 나간 뒤였다.



Q. ‘또’의 의상을 입고 있으면 기분이 어떤가.
김슬기: 예뻐진다. 다들 탈 썼을 때가 더 예쁘다고, 평소에도 쓰고 다니라고 한다. (웃음)



“‘여의도 텔레토비’로 한 사람이라도 더 투표소로 인도할 수 있으면”


‘문제니’역김민교 인터뷰

Q. ‘여의도 텔레토비’에서 문제니를 연기했고, ‘베이비시터 오디션’에서도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캐릭터를 연기했다. 발음과 억양이 독특한 문 후보에 대해 어떻게 연구했나.
김민교: 나는 원래 사람 모사의 강자도 아니고, < SNL 코리아 >에는 이상훈 선배님이나 정성호 씨처럼 그 방면의 달인들이 많다. 그런데 ‘여의도 텔레토비’ 시작할 때부터 내가 하고 싶었던 건, 귀여운 꼬마 캐릭터들이 등장하면서도 가만히 들어보면 날카로운 정치 이야기를 하는 코너였다. 그래서 문제니를 연기할 때도 문재인 후보를 개인을 흉내내는 것보다 민주통합당 자체를 더 보여주려고 했는데,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며 한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게 됐다. 그 때부터는 연구를 많이 했다. 연설하시는 걸 다 보고 듣고, 소리를 어디로 내시는지, 리액션을 어떻게 하시는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같은 것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Q. 배우보다 후보가 더 잘생겼다는 일각의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민교: 한 번은 새누리당 측에서 ‘또’에 대해 박근혜 후보를 비하하는 것 같다고 해서 기사가 난 적이 있는데, 우리 편 들어주시는 댓글이 엄청나게 많았다. 마침 시청자 생각이 궁금하기도 해서 쭉 읽어 봤는데 요즘 말로 ‘웃픈’, 그러니까 웃기면서 슬픈 댓글을 하나 발견했다. “또가 비하냐? 문제니 맡은 배우 얼굴 봐라. 저게 비하다!” (웃음) 그거 보고 나도 한참 웃었다.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어쩌면 우리나라를 대표하시게 될지 모르는 얼굴이기도 하고.



Q. 방송에서 느껴지는 것과 달리 문제니가 ‘또’보다 욕을 더 많이 한다는 얘기도 있던데. (웃음)
김민교: 나는 그저 맞받아칠 뿐이다. 질 수는 없으니까. (웃음)



Q. 문제니 특유의 “꺄하하핫!” 하는 경박한 웃음소리는 어떻게 넣게 된 건가.
김민교: 이것도 초반에 설정한 거다. 사실 문재인 후보님의 인품이나 톤에는 그 웃음이 어울리지 않는데, 문제니를 연기할 때는 원래의 꼬마 캐릭터와 문재인 후보를 반 반 섞어서 보여주는 거다. 예를 들어 거대여당이 힘으로 누른다고 할 때 나는 제 1 야당 입장에서 옆구리 치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서 톤을 그렇게 잡았다.



Q. ‘또’와 몸싸움을 하는 신이 종종 있는데, 텔레토비의 뒤뚱거리는 동작에 비해 고난도의 발차기가 눈에 띈다.
김민교: 어릴 때부터 합기도를 해서 사범 자격증이 있다. 문재인 후보가 특공대 출신이시라 나도 한 번 주먹 지르기를 하면서 “특공!”을 외쳤는데 재밌다고 하셔서 종종 하게 됐다.



Q. 그동안 ‘여의도 텔레토비’에 출연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김민교: 우리 코너 때문에 사람들이 정치를 재미있어 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면 좋겠다. 방송에서 뭔가 나왔을 때 시청자들이 ‘이거 웃긴 얘기 같은데 무슨 뜻이지?’ 하고 검색해서 의미를 찾아보고, 어떤 사건에 대해 알게 되는 데 어느 정도 일조하지 않았나 하는 뿌듯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여의도 텔레토비’로 한 사람이라도 더 투표소로 인도할 수 있으면”


‘앰비’ 역 김원해 인터뷰

Q. 이명박 현 대통령을 모델로 한 ‘앰비’ 캐릭터를 어떻게 맡게 됐나.
김원해: 처음엔 안 한다고 했다. 너무 많은 방송인, 예능인들이 실제 인물을 모사하기도 했고 굳이 연기하고 싶은 역할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마르고 광대뼈가 나온 편이라 결국 역할을 맡게 됐고, 모사보다는 내용에 좀 더 충실하려고 했다.



Q. 하지만 실존 인물에 비해 레임덕 인형과 함께 다니는 앰비는 은근히 귀여운 캐릭터다.
김원해: 수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 사실 연기자를 떠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정이 격하게 드러날 때도 있는데 편향되지 않게 현장에서 조절을 한다. 그래도 누군가에겐 대통령이니까, 혹은 ‘그래도’ 대통령이니까. 그래서 촬영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3분을 해도 아침 여섯 시까지 찍고, 최종 편집은 수위를 조절해 나간다.



Q.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여의도 텔레토비’의 인기 요인을 어떻게 보나.
김원해: 코미디니까 과장된 측면도 있고 일각에서는 선을 넘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할 때는 더 많은 욕설이 오갈 것 같다. 평소 방송에서 정치인들은 자기 당 색깔이 든 넥타이를 매고 2대 8 가르마를 하고 점잖은 용어를 쓰지만 단상 점거할 때 보면 신발도 날아가고 가방도 날아가지 않나. 시청자들도 우리가 그런 것들을 희화화하는 걸 통쾌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 젊은 세대 뿐 아니라 초등학교 3학년, 5학년인 우리 애들도 ‘여의도 텔레토비’ 팬이다. ‘19금’이라고는 하지만 어떻게든 다 볼 수 있으니까. 어릴 때 비디오로 숱하게 ‘텔레토비’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라 친근하게 느끼는 것 같다. “또 언니는 욕을 너무 잘 해”라고 할 때도 있고, 후보들이 각각 어느 당 소속인지 왜 싸우는지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초등학생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발전 아닐까 생각한다.



Q. 그런데 현실에서는 젊은 층의 투표 참여율이 장노년층에 비해 낮은 편이다.
김원해: 지금 이십대들은 어릴 때부터 엄마 휴대폰 갖고 놀던 세대라 아날로그적 투표 방식을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손바닥 안에서 모든 걸 하는 세대니까. 그리고 투표일에 휴무를 지키는 기업체나 매장도 별로 없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 패턴상 투표하는 게 좀 힘들지 않을까. 그래서 젊은 친구들을 위해 투표시간 연장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우리 코너를 통해 단 한 사람이라도 더투표소로 인도할 수 있으면 방송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Q. 이명박 대통령의 퇴임이 2개월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 SNL 코리아 > 다음 시즌에서는 앰비를 보기 힘들 것 같다. 계속 크루로 참여한다면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나.
김원해: 다음 시즌에 대해서는 미정이지만, 앰비 뿐 아니라 갑자기 잊혀진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있다. 꼭 정치 분야가 아니어도 되지만, 정치 쪽에서 좋은 소스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한 때 핵심에 있고 뜨거웠으나 한 방에 훅 간 사람들을 연기해보고 싶다.



“‘여의도 텔레토비’로 한 사람이라도 더 투표소로 인도할 수 있으면”
‘안쳤어’ 역 이상훈 인터뷰

Q. ‘여의도 텔레토비’가 이렇게 뜨거운 반응을 얻을 거라 예상했나.
이상훈: 그동안 이런 방송이 없지 않았나. 풍자의 수위가 세다고 하지만, 사실 더 세게 가도 된다고 생각한다. 선진국이니 문화강국이니 하면 뭐하나. 제재가 너무 심한데. 그래서 대한민국에 이런 풍자 코미디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런 프로그램이 생겨난 것도 새로운 것을 열망하는 사람들의 시대적 요구라고 본다. 특히 사람들이 ‘여의도 텔레토비’를 보는 건 우리가 하는 행위 자체가 재밌어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나 현상을 희한하게 풀어서 표현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 한 쪽만 까는 게 아니라 모든 쪽에 대해 다 풍자해왔다.

Q. 안철수 전 후보와 ‘안쳤어’ 캐릭터 간의 싱크로율이 대단히 높다.
이상훈: 하지만 정작 이 역을 연기하는 게 나라는 걸 사람들이 잘 모른다. 가까운 사람들조차도. (웃음)



Q. ‘안쳤어’ 특유의 표정 때문에 배우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것 아닐까.
이상훈: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묘한 표정인데, 보기엔 쉬워도 연기하기엔 힘들다. 내 얼굴 구조가 그 분과 전혀 다른데 비슷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니까 볼에 계속 힘을 줘야 한다. 대여섯 시간씩 녹화를 하고 나면 얼굴에 경련이 일어난다.



Q. 외적인 이미지 뿐 아니라 안철수라는 인물 자체에 대해서도 연구했나.
이상훈: 어마어마하게 했다. MBC 라디오 다큐멘터리 <격동 50년>에서 박정희, 김영삼, 노무현 대통령을 연기한 적도 있는데 그 캐릭터를 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내 안에 들어와야 한다. 그의 이미지를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이 했던 말을 계속 떠올리면서 싱크로율을 맞춰야 한다. 다행히 철수 형은 내 안에서 리플레이하고 싶은 사람이라 즐겁게 연기하고 있다.



Q. ‘여의도 텔레토비’는 현실 정치의 움직임에 따라 대본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코너인 만큼 ‘안쳤어’의 극 중 거취도 안철수 전 후보의 행보에 따라 움직였다. 특히 후보 사퇴 선언 당시에는 ‘안쳤어’가 방송에서 빠지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상훈: 나는 미혼이라 부양가족은 없지만 토끼, 개, 돼지, 닭 등 동물을 30마리 정도 키우고 있다. 걔들이 워낙 많이 먹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드는데, 방송을 그만둘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잠시 ‘이거 사료값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주위에서도 걱정을 많이 하셨다. 하지만 그 때도 나는 철수 형이 분명히 계속해서 어떤 역할을 해 주실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Q. 후보자들의 공약 중 눈여겨보고 있는 정책은.
이상훈: 동물보호 정책과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동물을 산 채로 파묻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래 12월 19일에 외국에 나갈 일이 있었는데 투표에 참여하기 위해 일정을 급히 바꿨다. 그 날은 멋진 새벽을 알리는 닭이 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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