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해라 절해라
1. 일하고 절해라. 아니, 절하고 일해라. 아니 일하면서 절…
2. 논, 자유의 모미 아냐.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인 동시에 사회적 동물이다. 즉 누구도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이 세상이지만 타인에 대한 관심, 혹은 간섭은 종종 친근함을 가장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고 “김 과장, 올해 안에는 시집가야지!”, “너는 만날 인상을 쓰고 다니니까 애인이 안 생기는 거야”, “레깅스랑 어그, 둘 중 하나만 해라” 따위의 지나친 오지랖은 기어이 불쾌감을 유발한다. 그러나 상대가 ‘갑’이고 자신이 ‘을’이라는 이유로, 상대의 나이나 직급이 위라는 이유로, 혹은 연인 등 사적인 관계에서도 상대가 감정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많은 이들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반론과 울분을 애써 삼킬 수밖에 없다.

특히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의 오타에서 비롯된 “나한테 일해라 절해라 하지 마”의 경우 명절 및 제삿날 쉴 새 없이 간섭과 명령을 받으며 일 하랴 절 하랴 혹은 일만 하고 절은 못 하랴 등으로 스트레스 지수가 극에 달하게 되는 며느리들의 분노를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절묘한 표현이다.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속담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를 변형한 “저한테 감 낳아라 배 낳아라 하지 마세요”가 있는데, 시작은 우연한 오타였으되 이후 기존의 사회질서와 부당한 압력에 저항하고자 하는 다분한 의도를 띤 관용구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은 정색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떨떠름한 심경을 표출할 수 있는 동시에, 상대에게는 이것이 무식인지 농담인지 구분하기 힘들게 함으로써 오지랖을 펼칠 기회를 차단하는 효과를 갖는다. 다만 눈치 없는 상대가 정색하고 맞춤법을 지적하고 나올 경우 더 이상의 소통은 불가하니 마음을 비우고 항거를 포기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용례 [用例]
* 첫째 키우느라 허리 휘는데 “얼른 둘째도 낳아야지!” 하면
저한테 감 낳아라 애 낳아라 하지 마세요.

* 애인의 지나친 간섭에 지쳐 문자 메시지로 이별을 통보하려면
[우리관게는 숲으로
돌아갔어.니 맛춘법
지적이젠 지귿지귿
해.더이상 나한테 일
해라절해라 하지마]* 대선이 코앞이니 “얼른 TV 토론을 해야지!” 하면
저한테 토 해라 논 해라 하지 마세요. 밥상은 독상, 토론은 단독, 연애는 솔로입니다?



글. 최지은 f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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