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의 새 앨범 은 굉장히 흥미롭다. 한 사람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시간 순으로 배열한 이 앨범은 사랑에 대한 콘셉트 앨범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가사만 읽어본다면 한 편의 시집이나 이적의 일기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또한 이적의 노래에 따라 다채롭게 변화하면서 가사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구성은 마치 이적 혼자 진행하는 가상의 뮤지컬을 듣는 것 같은 기분도 들게 한다. 의 독특한 형식은 이적이 그동안 해온 모든 창작물들의 영향이 스며든 것이기도 하다. 그는 늘 음악을 만들면서 소설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했고, 트위터를 통해 140자까지만 쓸 수 있는 짧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창작이 곧 생활인 그에게 무언가를 창작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음악이 여러 사람들과 같이 만들어가는 무엇이 된 것 같다”
이적│“테크놀러지가 음악의 내용을 바꾸는 시점” -2
이적│“테크놀러지가 음악의 내용을 바꾸는 시점” -2
멜로디가 이미 가사를 담고 있다는 건가.
이적 : 그렇다. 루시드 폴은 아예 곡 쓰면서 가사를 쓴다. 정말 음유시인인데 (웃음) 나는 곡을 쓰고 그걸 가사로 푼다. 가사를 붙이기 전에 만든 곡을 들어보면 이해하기 쉬울 텐데, 곡만 만든 상태에서도 곡이 이런 정서를 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빨래’ 같은 곡도 후반부에 확 폭발하고 그런 곡이 아니니까 가사도 미치겠어요, 죽어버리고 싶어요 (웃음) 이런 거보다는 담담한 가사, 혼자서 되뇌는 느낌이 나오게 된다. 그건 음악에서 오는 거다. 그게 생각해서 나오는 거냐고 생각의 단계는 아닌 것 같다.

발표하는 앨범의 사운드가 갈수록 록밴드에 가까워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선택인 건가. 이번 앨범은 거의 록 앨범 같기도 하다.
이적 : 예전에는 음악을 만들 때 드럼도 일일이 먼저 컴퓨터로 찍어보고 드럼 치는 분에게 이렇게 쳐달라고 했었다. 그러면 내 안에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런 작업을 하지 않고 믿을 수 있는 친구들에게 연주를 어떻게 해달라고 주문하고 그들이 자유롭게 연주하면 새로운 음악이 나온다. 그 친구가 내가 주문한 걸 못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형, 이런 거 어때요?”하면서 제안하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는 거다. 이러면 내가 게을러진 거라고도 할 수 있지만 (웃음) 음악이 여러 사람들과 같이 만들어가는 무엇이 된 것 같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그런 마음가짐은 생활의 변화에서 올 텐데. 어떤 뮤지션은 결혼 후에 더 철두철미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음악을 표현하려고도 한다. 그런데 당신은 그 반대다.
이적 : 그럴 수 있을 거다. 그건 음악이 어떤 거냐는 철학 같은 건데, 유희열 씨나 김동률 씨는 공연을 할 때도 세션들이 음반처럼 정확하게 연주하길 바란다. 그래야 사람들이 음악을 정확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거다. 그것도 맞다. 그런데 나는 열어두는 쪽이 됐다. 8마디, 16마디 던지고 연주자에게 알아서 놀아보라고 한다. 그게 마음에 안 들면 잘못된 게 아니라 네가 충분히 놀지 못한 거라고 한다. 한 사람의 생각이 완전히 표현되는 음악이 아닌 거다. 허술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런 음악이 나에게는 좋은 것 같다.

함께 음악을 한다는 것이 즐거워지는 건가.
이적 : 내 음악은 내가 작곡하고 노래를 쓰지만, 연주자들은 서로 다들 조금씩 동상이몽을 하게 된다. 각자 다른 생각들이 하나의 구심점을 조화를 이루면서 나오는 결과물들이 재밌다. 내가 일일이 다 해서 이대로 해달라고 하면 집에서 만든 데모의 어쿠스틱 버전이 되지만, 이렇게 음악을 만들면 거기에 다양성이 생긴다. 지난 번 앨범하고 이번 앨범은 그런 가능성을 열어두고 만들었다. 그래서 녹음할 때도 곡을 써놓고 드럼과 베이스 연주자와 만나서 연습 하면서 좀 더 곡을 만들어나간 뒤에 녹음을 했다. 그렇게 하면 소통이 미리 충분히 됐으니까 훨씬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내 음악은 올드하지만 나름대로 시대의 감성이 담겨있다”
이적│“테크놀러지가 음악의 내용을 바꾸는 시점” -2
이적│“테크놀러지가 음악의 내용을 바꾸는 시점” -2
앨범의 다채로운 변화는 그런 팀웍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까. 한 곡 안에서 기승전결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보여준다.
이적 : 사실 의식을 하지는 않는다. 심심하게 가는 음악을 더 좋아할 때도 있다. 지난 번 앨범이 그랬는데, 이번에는 그보다 곡에서 장면 전환을 하는 것 같은 전개가 흡입력을 가지니까 ‘그대랑’처럼 달리다가 풀다가 이런 식으로 해봤다. 공연에서도 그렇게 밀고 당기는 게 좋으니까.

요새 앨범이나 곡 모두에서 이렇게 기승전결이 뚜렷한 건 오랜만이다.
이적 : 그럴 수도 있다. 올드하다면 올드하다고도 할 수 있고. 하지만 나름대로 이 시대의 감성이 담겨 있는 부분도 있다고 본다. 알게 모르게 나도 시대의 영향을 받고, 음악도 블랙아이드 피스나 레이디 가가도 듣게 되니까. 그런 트렌디한 음악들에서 영향을 받든 반작용이 일어나든 거기서 따로 떨어져 나온 음악을 만들기는 어렵다.

앨범 전체에 이야기가 있고, 노래와 멜로디가 함께 기승전결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거기에 밴드 편성을 하고. 요즘 같은 때에 이런 음악을 하는 게 힘들지는 않았나.
이적 : 처음에는 앨범을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부터 고민했다. 싱글을 하나씩 만들어서 몇 달에 한 번씩 하고 앨범을 만들어야할지도 생각했고. 그런데 잘 돼봤자 한두 곡이고, 우리 세대가 음원시장에서 굉장히 약하다. 싱글 위주로 간다고 해도 그쪽으로 따라가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게다가 나는 공연을 많이 하는데 한두 곡 발표하고 공연을 하면 레퍼토리가 한두 곡밖에 안 생긴다. 그런데 열 곡 정도 내면 공연의 내용을 바꿀 수 있고. 지금까지는 이렇게 앨범을 내는 게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몇 년 뒤에도 이렇게 내느냐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앨범으로 만들지 않으면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는데.
이적 : 앨범이 아니면 집어넣지 못할 곡들이 있다. 싱글은 히트가 덕목인데, 앨범에서 분위기를 이어주기 위해 넣은 곡들은 그런 관점에서는 대체 뭐 하자고 낸거냐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앨범을 못 내게 되면 안 만들거나 곡을 써도 발표를 안 하거나 그렇게 되겠지.

“음악을 담는 게 파일로 바뀌는 순간 음악의 형식이 바뀐다”
이적│“테크놀러지가 음악의 내용을 바꾸는 시점” -2
이적│“테크놀러지가 음악의 내용을 바꾸는 시점” -2
앨범의 마지막 곡 ‘이상해’의 후반에 코러스로만 잔잔하게 마무리되는 전개 같은 건 앨범 마지막이니까 의미 있는 것 같다. 앨범이 낼 수 있는 정서는 사라지는 대신 감각에 집중하는 게 요즘 가요계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이적 : 테크놀러지가 음악의 내용을 바꾸는 시점인 것 같다. 앨범이 나오면서 단편집처럼 독립된 이야기지만 전체를 보고 나면 뭔가 알 수 없는 흐름이 있고, 그래서 앨범을 하나의 작품으로 바라보는 시절이 있었는데 그게 끝나가는 것 같다. 음악을 담는 게 파일로 바뀌는 순간 음악의 형식이 바뀌고, 곡들의 내용이 바뀐다. 몇 년 후는 CD가 없어질 것 같고.

CD가 없어지면 음악이 어떻게 변할까.
이적 : 그 때도 앨범을 내는 사람은 있을 거다. 10곡을 한 번에 디지털 음원으로 내면 그게 앨범이니까. 하지만 몇 년은 관성적으로 가도 투자하는 것에 비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을 거고, 그렇게 발표해도 사람들이 셔플기능으로 들어버리면 곡의 배치가 소용없어진다. 결국 다 싱글로 변할 거 같다. 그러면 대중음악이 예술인척 했던 게 1960년대부터라고 하면 2010년 정도까지 한 50년 정도로 정리 될 거 같다. 그게 전체 인류 역사에 비하면 아주 잠깐 아니냐고 할 사람들도 많을 텐데, 문제는 나 같은 경우는 그 50년 사이에 태어나서 그 음악을 그렇게 듣고 그렇게 해온 게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한다는 거니까, 그런 형식이 완전히 해체되고 나면 아쉽고 막막할 것 같다.

사진제공. 뮤직팜

글. 강명석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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