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스페인어쯤 되나 했다. 올레, 라니 플라멩고 무희가 손뼉을 치며 나타나거나, 붉은 기를 흔드는 투우사를 향해 성난 소가 돌진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제주올레, 에서 ‘올레’는 그곳 방언으로 도로에서 집 앞 대문까지 이르는 작은 길, 을 뜻한다. 지친 몸을 이끌고 마침내 집으로 당도하는 길 혹은 부푼 마음을 안고 비로소 세상으로 나가는 길. 제주의 속살로 향하는 도보여행코스, 올레길을 처음 만든 서명숙씨는 자신의 책 <제주 걷기 여행, 놀멍 쉬멍 걸으멍>(북하우스)에서 “당신의 까미노(길)를 만들어라”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길동무의 말에 처음으로 고향 제주의 길을 떠올렸다고 썼다. 이 구절을 읽고 나면, 스페인에서 제주방언으로 이어지는 나의 이 기괴한 연상의 미로가 아주 뜬금없지만은 않은 것 같다.

휴가 때 큰 마음 먹고 떠나겠다고 생각한다면 어쩌면 평생 그 섬의 풍경은 당신의 것이 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보통 10km-20km, 5시간에서 6시간 정도 걸리는 한 코스의 도보여행은 주말 하루 이틀이면 충분하다. 13코스를 다 완주 할 필요도 혹은 단 1코스라도 ‘정복’하겠다는 의지로 걸을 필요도 없다. 그저 ‘놀면서 쉬면서 걷는’것이 올레 길이기 때문이다. 코스에 따라 바다길, 마을길 혹은 그 길들이 적당이 섞인 길들을 걸을 수 있는데 평생 자동차의 바퀴가 허락된 곳만 가보았던 사람들에게 온전히 사람의 발만이 찾아 낼 수 있는 제주의 풍광은 그야말로 신천지다.

<시사저널> <오마이뉴스>의 편집장을 지냈던 서명숙씨가 자신이 나고 자란 곳에 대한 뒤늦은 짝사랑으로 시작한 개인적인 발걸음은 올해 ‘우도 올레’를 포함해 제주도 올레 13코스를 완성시켰고, 여기 저기 걷기코스를 만들어내며 전국 방방곡곡 홀씨처럼 퍼져나갔다. 저가항공의 등장으로 제주로 가는 길에 부담이 덜해졌고, 유명관광지에만 한정되어 있던 고가의 숙박시절이 아니라도 올레길 시작과 끝에 혹은 중간에 위치한 작은 민박들을 자유롭게 선택 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저가항공으로 오가고 일정의 대부분을 정보도 얻고 길동무도 만나는 올레길의 민박집에서 묵다가, 떠나기 전 마지막 밤만 중문관광단지의 호텔에서 묵는 코스를 권한다. 갑작스러운 도보여행에 뭉친 근육과 피로를 달래고 제주의 오랜 관광지로서의 ‘스멜’도 잠시 느낄 수 있다. 미니바 이용을 삼가하고 편의점에서 한라산 소주와 한라봉을 사다가 발코니 의자에 눕자. 그리고 전설이 아니라 레전드가 된 여행스케치나 카니발의 음악을 들으며 별이 쏟아지는 제주의 하늘을 바라보는 여름 밤, 캬아- 세상에나 그만한 즐거운 사치도 없을 것이다.

다음 주부터 <10 초이스>는 다양한 소식을 전해드리는 뉴스로 통합됩니다.

글ㆍ사진. 백은하 (on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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