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코미디 센트럴에서는 <드미트리 마틴과 함께하는 중요한 것들> (Important Things with Demetri Martin)이라는 30분짜리 코미디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주인공 드미트리 마틴은 과거 같은 채널의 히트 가짜 뉴스쇼 <데일리 쇼>에 리포터로 고정 출연했다. 이것을 인연으로 <데일리 쇼>의 진행자이자 제작자인 존 스튜어트의 전적인 후원을 받아, 스케치 쇼이자 스탠드업 쇼이고 콘서트를 하다가 도표나 스케치북 등 소품을 이용한 코믹 쇼로도 바뀌는, 말하자면 약간 버라이어티 쇼 같은 희한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매 에피소드마다 어떤 아이디어나 사물을 주제로 진행된다. 예를 들어 타이밍, 파워, 두뇌, 의자, 안전 등이 있다.

너드를 위한 유머

어려 보이지만 벌써 12년 동안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한 73년생인 드미트리 마틴은 무척 독특하다. 그의 코미디는 상당히 재미있다. 그런데, 그의 스타일은 요즘 코미디언들의 추세를 따라 욕을 섞어가며 걸쭉한 농담을 하거나, 사회나 정치적인 비판을 하거나 하지 않는다. 혹시 영화 <저수지의 개들>에서 미스터 블론드가 즐겨 듣는 라디오 DJ 목소리를 기억하시는지. 그것이 바로 스티븐 라이트라는 코미디언의 모노톤에 가까운 특이한 유머 방식인데, 마틴 역시 라이트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신세대 코미디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라이트가 코미디를 할 때도 모노톤에 걸맞게 무표정으로 이야기 하는 반면 마틴은 가끔 수줍은 듯 한 미소를 띄어주며 귀엽기까지 한 소년의 외모로 가볍게 전달을 한다는 것. 여기에 기타와 하모니카, 건반 악기, 드럼 등 여러 악기를 한꺼번에 연주하기도 하고, 양손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코미디를 전달한다. 하지만 라이트의 영향을 받은 탓에 그의 유머는 무심한듯 시크하다. 그래서 때로는 ‘너드를 위한 유머’, ‘똑똑한 유머’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드라이한 유머는 아마 집안 식구한테서 나온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면서 어찌 이런 발언을 하느냐 하면, 그가 토크쇼에서 한 인터뷰 때문이다. 마틴은 원래 예일대를 졸업하고, NYU 법대에 재학했었다. 그것도 전액 장학금을 받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집안 식구들은 “우리 집에서 상원의원 나오는 것 아니냐”며 무척 좋아했다. 그러다가 회의를 느낀 마틴이 코미디언으로 나서겠다고 발표하니 식구들의 빗발치는 반발이 이어졌지만 “내가 그때까지 학교에 남아있었던 이유는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코미디가 내 길이라고 확신을 한 후에는 아무리 1년만 더 다니면 졸업을 한다고 해도 학교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었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는 정도로 마틴은 코미디언으로서의 인생에 확신이 있었다.

이토록 다재다능한 코미디언이라니

스케치 코미디 중 ‘파워’ 에피소드에서 나온 ‘주차 싸움’ (Parking Fight)을 보면 마틴의 무심한듯 시크한 유머가 잘 드러난다. 꽁생원처럼 보이는 두 남자가 주차공간을 보고 서로 주차를 하려다가 싸움이 난다. 이 스케치는 중간 중간 정지하면서, 이 두 사람의 심리상태나 이들이 거짓말을 하는지, 사실을 말하는지 등에 대한 설명하는 자막을 삽입한다. 서로 요가나 필라테스를 하는 이 두 남자는 서로 터프한 척 하면서 말싸움을 시작한다. 자막은 키 큰 남자를 “자신 만큼 키 큰 사람에게는 이렇게 목청 높여 말하지 않을 인간”이라고 설명한다. 둘 중 한 남자가 “3초 안에 차 빼”라며 상대방을 위협하자, 자막은 “이 인간은 셋까지 센 후 어떻게 대처할지 전혀 감이 없음”이라고 말한다. 말싸움이 격해져 서로 트렁크에서 타이어 아이언과 골프채를 꺼내 싸우려 할 때 각각 차에 함께 타고 있던 아내 혹은 애인이 나와 “그만 하고 빨리 차에 타지 못해”라는 핀잔에 기가 죽어 싸움이 끝난다. 기회가 된다면 트래비스의 노래 ‘Selfish Jean’ 뮤직비디오를 보시길. 노래 가사에 맞춰 마틴이 티셔츠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습이 폭소를 자아낸다.

한편 NBC 토크쇼 <레이트 나잇 위드 코난 오브라이언>의 코미디 작가로도 활동했던 마틴은 드림웍스에 <윌>이라는 영화와 컬럼비아 픽처스의 <문 피플> 등의 영화 콘셉트를 판매해 이 작품들의 영화화는 물론 조연으로도 출연하게 됐다. 이 밖에도 리앙 감독의 차기작 <테이킹 우드스톡>에서 엘리엇 티버 역으로도 출연할 예정이며, 만화에도 재능이 있는 그는 그림 그리기에 대한 책도 출판할 계획이다. 앞으로 마틴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해야 한다니 골수팬으로 조금 서운하긴 하지만 한국에서도 그의 무심한듯 시크한 유머가 빛을 발하길 바란다.

글. 양지현 (칼럼니스트)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