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계상
윤계상
언제부터인가 윤계상을 보면, 온 몸에 가시를 두르고 있는 듯 보였다. 스스로를 찌르지 못해 안달 난, 뭔가를 향해 타협 없이 끈질기게 질주하고 있는, 뜨거운. 그것이 그의 ‘열정’이라는 걸 알았지만, 행여나 그 열정에 스스로가 데이지 않을까 괜한 걱정이 들곤 했다. 그런 윤계상이 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니, 굳이 타인의 말을 듣지 않아도 TV에서, 무대 위에서, 스크린에서 웃고 있는 그를 보면 직감할 수 있었다. 그의 몸에 가시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난초가 자라고 있다는 걸. 그래서 그를 만나면 꼭 묻고 싶었다. “사람이 어쩜 이렇게 달라질 수 있어요?” 윤계상이 답했다. “가능해요. 바닥을 치면.”

Q. 원래 이렇게 실실 웃는 스타일인가.
윤계상:
2년 전부터 그랬다. 원래는 인상 쓰던 사람인데.(웃음)

Q. 인상 쓰는 게 본래의 당신이었다는 말인가.
윤계상:
아, 기본적으로는 쾌활한 사람이다. 그런데 연기를 하면서 많이 어두워졌다. 피폐해진 삶을 딛고 다시 밝아진 게 얼마 안 됐다. 연기를 잘하고 싶은 욕심에 삶을 그 속에 집어넣었다가 정말 큰일 날 뻔 했다. 그렇게 살다보니까 정신이 이상해지더라고. 이젠 나를 찾았다. 이게 내 모습이다.

Q. 왜 그렇게 확신하나. 연기할 때의 모습이 진짜 당신일 수도 있다는 생각, 안 해 봤나.(웃음)
윤계상:
오! 그런가? (익살스럽게)그럼 다시 돌아갈까.(↗) 하하하.

Q. 아니다. 지금이 좋다. 상상이상으로 유쾌한데, 억지로 더 밝아 보이려고 하는 건 없나.
윤계상:
전혀. 나는 절대 그럴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Q. 그럴 수 있는 인간이 아닌데, 그땐 왜 그렇게 어두워지려고 했나.
윤계상:
너무 잘 하고 싶으니까. 그땐 인정이라는 것에 미치게 목말랐다. 그게 나의 전부라 생각했었다. 내가 생각해도 참 이상하긴 하다. 왜 그랬나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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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오디(god)로 한창 활동할 땐 어땠나. 많은 인정을 받지 않았나.
윤계상:
지오디 때 인정은 뭐랄까. 뭘 몰랐던 것 같다. 우리가 잘 해서 잘된 줄 착각했었다. 그러다가 20대 후반에 연기라는 걸 만나게 되면서 내가 가진 재능이 아닐까 또 착각을 했고.(웃음) 그때부터 ‘배우!’, ‘배우는 과연 어떨까’, ‘배우는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했는데, 뒤돌아보면 겉핥기만 한 것 같다.

Q. 진중한 스타일의 배우들을 좋아하나보다.
윤계상:
첫 영화가 변영주 감독님의 영화(‘발레교습소’)여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 성향을 가진 배우가 ‘진짜 배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매사에 진심을 다하고, 장난치지 않고, 섣불리 연기하지 않고, 내면의 어떤 것들을 토해내는 연기 스타일이 정답이라고 믿었었다

Q. 현장에서 풀어져 있다가, 슛이 들어가면 돌변하는 배우도 많다. 그런 배우들을 보면서 변한건가.
윤계상:
그건 아니고. 그냥 바닥을 치고 올라왔다. 죽을 뻔 했거든. 제작년에 굉장히 힘들었다. 그땐 매사가 비관적이었다. 자꾸 의심하게 되고, 비교하게 되고, 욕심을 부리게 되고.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내 자아가 깨지더라. 그때 ‘이렇게 살면 죽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연기하는 것도 좋지만, 사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비로소 한 거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생각을 전환하니까, 많은 것들이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Q. 왜 그렇게 ‘인정’에 목말랐는지 이유는 찾았나.
윤계상:
이제는 안다. 그땐 성공의 정의를 잘못 계산하고 있었던 거다. 남우주연상을 받아야 하고,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배우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과정 때문에 시작한 연기에 욕심이 생기면서 바뀌어 버린 거다. 목표를 쫓아가다 보니, 어떤 일을 해도 만족이 안 됐던 거고.

Q. 원래 목표 지향적인가.
윤계상: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연기를 하면서 그렇게 변했었다. 연기가 너무 좋으니까. 잘못 생각했던 거지.

Q. 흥미롭다.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 있다니.
윤계상:
바닥을 치면 바뀐다. 확실히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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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바닥을 칠 때 어떻던가. 비로소 내가 보이던가, 주위가 보이던가, 아니면 아무것도 안 보이던가.
윤계상:
바닥을 치면, 아무거나 잡게 된다. 살아야 하니까.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우니까 주위를 보게 되더라. 그때 손을 잡아준 사람들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채워졌던 것 같고. 힘들 때 위로해 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정말 많이 받았다. 그런 찰나에 들어온 작품이 또 ‘레드카펫’이다. 나는, 참 단순하다. 작품을 보면 그때 당시 윤계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다 보인다. 결국 마음이 가지 않으면 작품을 못하는 스타일인데, ‘레드카펫’이 딱 그 시기에 들어왔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어? 이거, 완전 내 얘기인데, 내 얘기!” 이러면서 출연하게 된 거다.

Q. 이전 인터뷰에서 “나는 혼자다”라는 얘길 자주 했던데, 이젠 안 그러겠다.
윤계상:
이젠 절대. 절대, 그런 생각 안 한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있고 싶을 땐?
윤계상:
그럼 혼자 있으면 된다. (Q. 간단하네.) 맞다. 정말 간단한 건데,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었다. 인간은 심오하고 복잡하며 내일을 알 수 없는 존재라고 철썩 같이 믿고 살았으니 어땠겠나. 행복을 결과에서 찾으려 하면 끝이 없다. 산이 계속 나오거든. 작품이 안 되도 문제고, 잘 되면 잘된 대로 기대치가 높아져서 문제고. 악순환인 거다. 그러다보면 피폐해 질 수밖에 없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Q 도 닦고 나온 사람 같다.
윤계상:
하하. 8년 동안 치열하게 살았기에 이런 생각에 도달한 것 같다.

Q. ‘레드카펫’에서 호흡을 맞춘 고준희 씨와는 원래 친분이 두터웠다고 들었다.
윤계상:
오래전부터 알아왔고 친하게 지내온 사이다. ‘툭’ 이야기하면 ‘툭’ 알아들을 정도로. 처음 만날 땐 절대적인 나이 차이가 있었다. 내 나이 스물일곱, 준희가 스물일 때 만났다. 어릴 땐 한 두 살 차이도 많아 보이지 않나. 준희에게 난 굉장히 ‘큰 오빠’였던 거다. 그런데 지금 서른일곱과 서른이 되다보니, 상대적으로 느끼는 나이 차가 적다. 그러다보니 더 편해진 면이 있다. 정말 편하게 촬영했다.
윤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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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윤계상이 벌써 서른일곱이라니. 서른일곱에 대해 어떻게 느끼나.
윤계상:
아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늙어가는 게 보이니까. 남자들은 알 거다. 나이가 들수록 속 기운이 딸린다. 춤추는 게 너무 힘들고. 옛날에는 며칠만 굶어도 살이 쪽쪽 빠졌는데, 이젠 그것도 안 된다. 그런 것들이 확 느껴지니까 슬펐다.

Q. 그래도 최근 지오디 콘서트를 보니, 무대에서 굉장히 활기차고 즐겁게 즐기던데.
윤계상:
아~ 너무 즐겁다. 관객들이 함성을 질러주면, 그 에너지가 흡수되는 것 같다. 왜 아이들은 누가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열심히 하잖아? 그것과 비슷하다. 대신 끝나면 에너지가 방전돼 드러눕지만.

Q. 예전 한창 지오디로 활동할 때 받았던 환호와 지금의 환호는 다르게 느껴지나.
윤계상:
같다. 다만 그때는 환호가 당연한 줄 알았다. 어디를 가도 당연히 있는거구나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얼마나 감사한지 멤버 모두가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모두가 감동받고, 울컥하는 거고.

Q. 가수 윤계상의 팬도 있고, 연기를 하면서 새로 생긴 배우 윤계상의 팬도 있을 것 같은데, 그들의 성향에 차이가 있나.
윤계상:
없는 것 같다. 사실 지오디 재결합 당시 그게 가장 두려웠다. 지오디를 떠날 때 나를 지켜줬던 분들, 그리고 배우 활동을 할 때 지지해 줬던 분들…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했다. 그런데 괜한 고민이었다. 가수 팬이든, 연기자 팬이든, 자신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기뻐하는 것 자체를 좋아해 주시더라. 나로서는 너무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Q. 인생에 두려움 하나가 사라지 기분이겠다.
윤계상:
아~ 한풀이 다 했다.
윤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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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얼마 전 신화 에릭의 인터뷰가 “지오디와 라이벌? 그건 신화를 구세대 취급하는 것”이라는 타이틀로 크게 나왔더라.
윤계상:
아, 그 기사 (타이틀) 나도 봤다. 아우~ 미안하지. 신화는 쭉 활동해 온 그룹이고, 한류도 센데. 그들은 요즘 그룹이지.

Q. 신화가 ‘요즘 그룹’이면, 지오디는 무슨 그룹인가.
윤계상:
‘돌아온 그룹?’(일동 폭소) 어떻게 보면, ‘신인 그룹’이기도 하다. 이제 막 출발한.

Q. 영화 속 정우는 에로감독 출신이라는 편견 속에서도 자기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달린다. 아이돌 출신이라는 편견을 겪어야 했던 배우 윤계상에게도 앞날을 추진하게 하는 어떤 확신이 있었을 것 같은데.
윤계상:
진정성이다. 기술로는 절대 안 되는 어떤 거. 그건 배우가 진짜 담지 않으면 금방 들통 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단 한 번도 연기에 충실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단편영화든 저예산 영화든 나 자신에게 부끄러움이 들지 않도록 연기했다. 물론 부족했던 연기들은 많았다. 그걸 모르는 건 아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역량을 끌어내서 했다는 점에서는 부끄러움이 없다.

Q. 이렇게 밝아진 데에는, 연인 (이희늬)의 영향도 컸을까.
윤계상:
그 친구의 영향도 많았다. 워낙 긍정적인 사람이니까. 그런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몸이 아팠을 때다. ‘로드 넘버원’에서 허리를 다치고, ‘풍산개’에서 같은 부위를 또 다쳤다. 아픈 허리를 방치한 채 ‘최고의 사랑’ ‘하이킥’까지 달렸다. 그땐 열정에 불타니까 아픈 줄도 몰랐다. 그러다가 ‘하이킥’ 도중에 쓰러졌다. 신경주사를 맞으면서 버텼는데 너무 힘들었다. 마침 ‘하이킥’ 끝나고 들어가기로 한 액션 영화가 엎어졌다. 나는 고집을 부려서 어떻게든 하려고 했는데 하늘이 아셨는지 영화를 못하게 하더라. 그때야 비로소 수술을 받았다. 당시 의사 선생님이 깜짝 놀라면서 “다리에 감각이 있어요? 연골이 너무 삭아서 뼈가 붙을 지경”이라고 했다. 그때 삶에 회의가 밀려왔다. ‘내가 이렇게까지 정신없는 놈이었구나’, ‘이러다가 남자 구실도 못하겠구나~’(웃음), ‘이렇게 해서 대체 얻은 게 뭐가 있냐’ 하면서 바닥을 쳤다. 그때 ‘새해가 되면 세상이 바뀌게 해 달라’는 기도를 정말 많이 했다. 그렇게 새해가 됐고, 아예 생각을 달리 하면서 살고 있는데 나타난 사람이 하늬 씨다.

Q. 행운이 함께 왔구나.
윤계상:
맞다. 그러니까 선물 같은 거다. 위대해 보이더라고. 후광이 막~(웃음) 그러다가 또 ‘레드카펫’ 박범수 감독님을 만나니까 ‘아, 이런 사람들이 진짜 존재하는구나’ 하면서 내 안에서 딱 딱 딱 고리가 끼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결국 공백기에 많은 생각들을 털어낸 게 주효했다. 그 시기를 통과하면서 다시 지오디도 할 수 있게 됐고, 동료들도 다시 만날 수 있게 됐고, 삶의 가장 중요한 것들도 얻게 됐다.
윤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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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힘든 시기에 ‘그래서 얻는 게 뭐냐?’라고 스스로 물었다고 했는데, 그래도 얻은 게 있지 않을까.
윤계상:
그땐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분명히 있다. 일단 도전을 많이 했기에 여러 장르를 오갈 수 있는 경험이 쌓인 거. 그리고 지나간 소중한 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긴 거. 이젠 섣불리 생각하지 않는다. 한창 비관적일 때는 “(맥주 컵엔 든 물을 들며)물을 왜 여기다 주는 거야. (버럭)이거, 맥주 잔 아니야!!!”했다.(일동웃음) 그런데 지금은 ‘(미소를 지으며) 아~ 물을 많이 담기 위해서 여기다가 줬구나’(일동폭소) 그런다. 뭐든 좋게 보려 하니까 끝도 없이 좋게 보이는 것 같다. 또 그러다보니, 주위 사람들이 붙고.

Q. 아무래도 밝은 사람에게 사람이 몰리지.
윤계상:
그러니까.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여러 자아를 만들어 둬야 한다. 배우 윤계상, 지오디 윤계상, 우리 엄마 아빠의 사랑스러운 아들 윤계상, 누나의 동생 윤계상, 친구 윤계상, 이런 자아들이 많아야 행복해진다고 하더라. 그런데 욕심이 앞서면 하나가 전부인 줄 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뒤로 제쳐둔 채 하나만 바라보면 그 세계가 무너졌을 때 나도 함께 망가진다. 그게 아닌데. 돌아보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Q. 자아가 굉장히 안정적으로 균형을 이룬 상태 같다. 행복해 보인다.
윤계상:
행복하다. 안 좋은 것들은 빨리 잊어버리는 습관을 들이는 중이다. 내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것들은 빨리 내려놓는 게 좋을 것 같다.

Q. 그나저나, 평소 에로영화는 많이 보나.
윤계상:
아니, 질문이 갑자기 ‘훅’ 들어오네. 아… 이, 질문 어렵다. 감독님이 그러는데, 에로는 한 장르라고 얘기하더라. 그랬을 때 나는 에로 쪽은 아니고, 아예 한발 더 나간~? 하하하. 더 나간 것들은 많이 봤었다. 그런데 남자들이 다 그렇지, 뭐. 하하하.

Q. 윤계상 주연의 에로영화를 찍는다고 하면, 제목을 뭘로 하면 좋을까.
윤계상:
너무 심오하게 들어오는 거 아닌가. 흠…흠… 안 되겠다. 이건 생각해 보고 따로 알려주면 안 될까. 하하하.

글. 정시우 siwoorain@tenais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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