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10] ‘달리는 갱순이’ 강허달림의 징한 목소리(part2)
[인디 10] ‘달리는 갱순이’ 강허달림의 징한 목소리(part2)
창작의 물꼬를 튼 것은 1995년 ‘독백’을 처음으로 만들면서부터다. 그녀의 창작방식은 독특하다. 흥얼흥얼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멜로디를 녹음하기 위해 항상 카세트 녹음기를 가지고 다닌다. 1집 발표 전까지 ‘지하철 자유인’등 4곡의 노래를 완성시켰지만 발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녀가 거친 모든 밴드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 그런 면에서 밴드 <풀 문>의 베이스 박순철은 그녀에게 ‘너만의 멜로디가 있다’며 가능성을 인정해 주고 독려했던 소중한 친구다. 클럽 가수로만 머물 것 같아 2년간의 밴드 활동을 정리하고 장충동의 한 찌개 집에서 하루 13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절치부심했다.

2005년 자신의 창작곡 발표에 목이 타들어가는 갈증을 느꼈던 그녀에게 마침내 기회가 왔다. 카페 ‘스튜디오70’에서 그녀의 음악을 듣고 가능성을 발견한 기획사 ‘풀로 엮은 집’의 제안으로 프로듀싱 개념도 없이 스스로 모든 음악과정을 도맡아 처리해 데뷔 EP ‘독백’을 발표했다. 대중적 반향은 미미했지만 일부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이끌어내자 용기를 얻었다. 이에 여러 곳에서 정규앨범 제작 제의가 들어왔지만 대부분 제작조건이 취약했다. 정규 1집 녹음을 진행하던 중에 뒤엎는 사태까지 발생한 것은 싱글 발표 후 가장 아쉬움을 느꼈던 ‘사운드’의 질은 양보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디 10] ‘달리는 갱순이’ 강허달림의 징한 목소리(part2)
[인디 10] ‘달리는 갱순이’ 강허달림의 징한 목소리(part2)
일과 사랑에 대한 고심으로 가득 찼던 3년간의 공백 후 중대 결심을 했다. 스스로 앨범을 제작하기 위해 인디레이블 ‘런뮤직’을 창립했던 것. 10년 동안 옥탑 방에서 살며 모아놓은 돈과 모자라는 돈 2천만 원을 대출했다. 지인이 운영하는 강남 양재동의 텔레만 스튜디오에서 녹음비용을 1/3가격으로 후원해주었고 KBS 관현악단 멤버 남영국이 프로듀싱을 맡아주었다. 또한 블루스 기타의 달인 채수영과 신촌블루스의 엄인호가 세션으로 참여해 힘을 보탰다. 2007년 3월에 제작에 들어간 1집은 이듬해 2월에야 가까스로 녹음을 끝냈다. 제작비가 부족해 녹음실, 프로듀서 스케줄에 맞춰가며 진행을 했기 때문.

강허달림은 1집에 대해 “속을 너무 많이 썩어 음반이 나왔을 때 보기도 싫었습니다. 프로듀서 이름이 첫 브클릿 인쇄에 누락되어 폐기시키고 다시 인쇄를 했죠. 재킷도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몇 번의 작업을 거쳤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극복의 의지를 드러낸 대견한 가사와 탁월한 리듬감은 그 자체로 그녀만의 블루스가 되었다. 2008년 발표된 강허달림의 1집 <기다림 설레임>은 삶의 진솔한 향내가 감동적인 한국 토종 블루스명반이다. 29세 때 만난 한 남자와의 만남과 이별의 과정은 기다림과 극복의 미학이라는 음악적 감성을 제공했다. 사랑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끝내 자존심만은 잃지 않는 여성특유의 인내를 담고 있는 명곡 ‘기다림, 설레임’과 탁월한 감성적 보컬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미안해요’ 같은 창작곡들은 그 결과물이다.

EP 독백 (2005), 1집 기다림 설레임 (2008), 2집 넌 나의 바다 (2011) (왼쪽부터)
EP 독백 (2005), 1집 기다림 설레임 (2008), 2집 넌 나의 바다 (2011) (왼쪽부터)
EP 독백 (2005), 1집 기다림 설레임 (2008), 2집 넌 나의 바다 (2011) (왼쪽부터)

그녀의 노래에는 슬픈 정서와 비트 강한 경쾌한 리듬이 공존하며 상호작용을 한다. 그래서 청자를 때론 서정적 분위기의 노래에 푹 빠져들게 하고 때론 어깨를 들썩이는 흥겨움으로 인도한다. 절망과 고통의 흔적은 탁월한 리듬을 통해 극복되고 이내 희망의 메시지로 거듭나게 하는 힘은 강허달림 노래만의 차별성이다. 1집은 네이버 오늘의 뮤직 ‘이주의 앨범’에 선정되었고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의 여러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성과를 올리며 그녀에게 ‘블루스 디바’라는 애칭이 자연스럽게 부여되었다.

3년 6개월이 지난 2012년 2집 <넌 나의 바다>를 발표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자비제작을 한 이 앨범은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음악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인디 특유의 시스템적 장점과 수준급 사운드를 구현하기엔 한계가 극명한 열악한 제작환경에서의 작업이라는 단점을 또다시 동반시켰다. 힘겨운 제작환경과 데뷔앨범에서 성과를 올린 뮤지션들이 공통적으로 겪는다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자신만의 보컬로 극복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1집이 막막한 삶과 사랑의 아픔은 크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달리겠다는 의지를 리듬감을 통해 극복하며 여성 블루스 보컬리스트로서의 존재가치를 알린 음반이었다면 2집은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자기 스타일로 해석하는 보컬리스트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한 앨범이다. 이 앨범의 백미인 ‘꼭 안아주세요’ 가사에서 발견되는 ‘같이 웃고 가슴과 가슴 안고’ 부분의 반복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그녀의 유연한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
[인디 10] ‘달리는 갱순이’ 강허달림의 징한 목소리(part2)
[인디 10] ‘달리는 갱순이’ 강허달림의 징한 목소리(part2)
전작에 비해 한결 여유로워진 이야기를 담아낸 노래들은 장르적으로도 블루스를넘어 편안하고 익숙한 팝 영역으로 영토를 넓히며 폭넓은 대중과의 소통가능성을 모색했다. 피아노와 기타 한 대를 중심에 둔 소박한 편곡 트랙들은 특유의 절규 없이 잔잔한 보컬만으로도 바다처럼 넓디넓은 사운드의 여백을 넉넉하게 채워나갈 수 있는 탁월한 보컬리스트서의 능력을 조용하게 웅변한다. 하지만 1집에서 경험한 애절한 감성과 탁월한 연주력이 합체된 가슴 찡한 감동을 기대한 대중에게 여유로워진 정서적 변화와 소박한 편곡 구성 그리고 보컬에 무게감을 둔 2집은 호불호가 나뉠 가능성이 다분하다. 사실 삶의 향기가 진동하는 강허달림의 독특한 보컬 질감은 그 자체로 매력을 발휘하는 곡과 내공 깊은 연주와 앙상블을 이룰 때 감동이 배가되는 곡으로 확연하게 갈린다. 그런 점에서 2집은 두 가지 모두를 만족시키기엔 아쉬움을 남겼지만 향후 음악여정의 새로운 출발점이기도 하다.

강허달림은 “블루스는 운명적인 장르지만 특정 음악장르에 매몰되기보다 좋은 노래를 찾아가는 음악여정을 오래 하고 싶다.”고 말한다. 행복해진 그녀는 많은 대중을 감동시킨 애절한 정서가 사라진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블루스를 넘어 팝, 포크, 록큰롤로 스펙트럼을 넓히며 사운드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그녀의 진검 승부는 장르의 매몰이 아닌 장르의 해체를 통해 난관을 헤쳐 나가는 탁월한 보컬리스트로서의 의미 있는 발걸음이다. 출산 일이 코앞이기에 이달 말 홍대 앞 라이브클럽 ‘벨로주’에서 열리는 단독공연은 그녀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출산 전 마지막 공연이 될 것 같다. 반가운 소식 하나 더. 명반으로 각인된 그녀의 1집이 금년 내로 아날로그 LP로 제작될 예정이라 한다.

강허달림 프로필
1974년 6월 7일 전남 승주 출생
1997년 서울재즈아카데미 1기 보컬전공 수료, 페미니스트 밴드 <마고> 보컬
1998년 5인조 프로젝트 밴드 <풀 문> 결성
2002년 ‘Blues Project Band’ 보컬
2003년 블루스 밴드 <신촌 블루스> 객원보컬
2007년 인디 레이블 Run Music 설립
2008년 1집 네이버 오늘의 뮤직 ‘이주의 앨범’ 선정
2009년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락부분 ‘올해의 음반, 올해의 노래’, ‘네티즌이 뽑은 올해의 여성뮤지션’부문 노미네이트, 2013년 1집 수록곡 ‘기다림, 설레임’ < 한국 100대 인디명곡> 선정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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