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화 감독 '콘크리트 유토피아' 리뷰
≪최지예의 별몇개≫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가 개봉 전 먼저 본 영화의 별점을 매깁니다. 영화표 예매 전 꼭 확인하세요. 당신의 시간은 소중하니까!
'콘크리트 유토피아' 별몇개? = ★★★★☆
뻑적지근한 재난 영화인 줄 알았더니 번뜩이는 캐릭터 영화였다. 대지진과 혹한이란 설정 위에 인간의 속성과 심리를 들여다보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다.
대지진이 온 세상을 집어삼키고, 서울은 하루아침에 폐허가 된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지만, 황궁 아파트만은 살아남았다. 살인범과 목사님이 똑같아진 세상, 그 중심의 황궁 아파트로 바깥세상의 사람들이 몰려든다. 주민들은 황궁 아파트를 지키기 위해 그들만의 주민 수칙을 만든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물의 외피를 입었으나, 고도의 캐릭터 묘사가 팽팽하고 촘촘해 한시도 지루할 틈 없었다. 영화는 내내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극한의 상황과 한정된 자원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따라간다.
황궁 아파트 대다수 주민은 놀라우리만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인간성 말살의 길로 치닫는다. '나만 살면 된다'는 극도의 집단 이기주의,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보이는' 권력과 계급을 비롯해 '스스로 덫에 걸리는' 시스템의 아이러니 등이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한 감정을 건넨다. 그 불편함은 끝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물음표를 직면하게 만든다.
웃음이 나지만 마냥 유쾌하지 않고, 흐르는 눈물은 과연 순수한가 하는 생각이 영화를 보는 2시간 남짓 머릿속을 맴돈다.
엄태화 감독은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연출력을 선보였다.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가 떠오르는 연출은 순식간에 스크린을 연극 무대로 탈바꿈시켰다. 이 연출을 통해 인물들은 '제4의 벽'을 무너뜨리고 관객에게 말을 걸며 몰입을 돕는다.
영화 속 빛의 배치가 무척 인상적이다. 엄태화 감독은 빛과 어둠을 적절하게 사용해 캐릭터의 상태를 절묘하게 그려낸다. 에스파냐 내란을 주제로 전쟁의 비극성을 표현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레퍼런스로 참고했다는 엄 감독은 캐릭터들의 심리 전쟁에서 이 연출 방식을 효과적으로 펼친다.
또, 지나치다 싶은 정도의 가까운 클로즈업은 오히려 담고 있는 감정이 풍부해 눈 뗄 수 없었다. 장편 상업영화 연출 경력이 많지 않은 엄 감독이 보여준 탁월한 연출력이 실로 놀랍다.
이병헌은 심리 변화의 고저가 가장 큰 캐릭터인 영탁을 날카롭고 기민하게 연기했다. 박보영이 언급한 '눈을 갈아 끼운 연기'라는 말이 그대로 체감될 정도로 몇 차례 시퀀스에서 이병헌의 연기에 압도되는 경험을 했다. 박서준은 매력적이다. 가정을 지켜야 하는 가장과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을 오가는 민성 캐릭터에 오롯이 녹아들었다. 명화를 연기한 박보영은 기존 연기 톤에서 크게 변주를 준 것 같지는 않지만, 상대 배우들과 시너지를 내며 위화감 없이 캐릭터를 그려냈다. 금애 역의 박선영은 주특기가 잘 발휘됐다. 후반 오열하는 신은 너무나 리얼해 같이 울 뻔했다. 박지후는 냉소적인 혜원 캐릭터를 자신의 것으로 채웠고, 도균 역의 김도윤은 새롭고 신선한 느낌을 주며 인상을 남겼다.
8월 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30분.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 wisdomart@tenasia.co.kr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가 개봉 전 먼저 본 영화의 별점을 매깁니다. 영화표 예매 전 꼭 확인하세요. 당신의 시간은 소중하니까!
'콘크리트 유토피아' 별몇개? = ★★★★☆
뻑적지근한 재난 영화인 줄 알았더니 번뜩이는 캐릭터 영화였다. 대지진과 혹한이란 설정 위에 인간의 속성과 심리를 들여다보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다.
대지진이 온 세상을 집어삼키고, 서울은 하루아침에 폐허가 된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지만, 황궁 아파트만은 살아남았다. 살인범과 목사님이 똑같아진 세상, 그 중심의 황궁 아파트로 바깥세상의 사람들이 몰려든다. 주민들은 황궁 아파트를 지키기 위해 그들만의 주민 수칙을 만든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물의 외피를 입었으나, 고도의 캐릭터 묘사가 팽팽하고 촘촘해 한시도 지루할 틈 없었다. 영화는 내내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극한의 상황과 한정된 자원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따라간다.
황궁 아파트 대다수 주민은 놀라우리만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인간성 말살의 길로 치닫는다. '나만 살면 된다'는 극도의 집단 이기주의,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보이는' 권력과 계급을 비롯해 '스스로 덫에 걸리는' 시스템의 아이러니 등이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한 감정을 건넨다. 그 불편함은 끝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물음표를 직면하게 만든다.
웃음이 나지만 마냥 유쾌하지 않고, 흐르는 눈물은 과연 순수한가 하는 생각이 영화를 보는 2시간 남짓 머릿속을 맴돈다.
엄태화 감독은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연출력을 선보였다.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가 떠오르는 연출은 순식간에 스크린을 연극 무대로 탈바꿈시켰다. 이 연출을 통해 인물들은 '제4의 벽'을 무너뜨리고 관객에게 말을 걸며 몰입을 돕는다.
영화 속 빛의 배치가 무척 인상적이다. 엄태화 감독은 빛과 어둠을 적절하게 사용해 캐릭터의 상태를 절묘하게 그려낸다. 에스파냐 내란을 주제로 전쟁의 비극성을 표현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레퍼런스로 참고했다는 엄 감독은 캐릭터들의 심리 전쟁에서 이 연출 방식을 효과적으로 펼친다.
또, 지나치다 싶은 정도의 가까운 클로즈업은 오히려 담고 있는 감정이 풍부해 눈 뗄 수 없었다. 장편 상업영화 연출 경력이 많지 않은 엄 감독이 보여준 탁월한 연출력이 실로 놀랍다.
이병헌은 심리 변화의 고저가 가장 큰 캐릭터인 영탁을 날카롭고 기민하게 연기했다. 박보영이 언급한 '눈을 갈아 끼운 연기'라는 말이 그대로 체감될 정도로 몇 차례 시퀀스에서 이병헌의 연기에 압도되는 경험을 했다. 박서준은 매력적이다. 가정을 지켜야 하는 가장과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을 오가는 민성 캐릭터에 오롯이 녹아들었다. 명화를 연기한 박보영은 기존 연기 톤에서 크게 변주를 준 것 같지는 않지만, 상대 배우들과 시너지를 내며 위화감 없이 캐릭터를 그려냈다. 금애 역의 박선영은 주특기가 잘 발휘됐다. 후반 오열하는 신은 너무나 리얼해 같이 울 뻔했다. 박지후는 냉소적인 혜원 캐릭터를 자신의 것으로 채웠고, 도균 역의 김도윤은 새롭고 신선한 느낌을 주며 인상을 남겼다.
8월 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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