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명왕성〉, 사실같아 슬픈 고3 이야기
포스터" /><명왕성> 포스터

명왕성은 태양계의 9번째 행성으로 불렸으나 2006년 행성 지위를 박탈당하여 지금은 ‘소행성 134340’이라는 숫자로 불린다. 행성에서 제외된 이유는 인간들이 만든 행성의 기준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 우리 주위에도 수많은 명왕성들이 존재한다. 성적이 표시하는 숫자로 명명되고, 명문대라는 태양계에 탈락하여 좌절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명왕성이다. 영화 <명왕성>은 입시 경쟁에 치여 인격마저 잃어버린 학생들을 다룬다.

명문사립고 전교 1등 유진(성준)이 학교 뒷산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준(이다윗)은 취조를 마치고 경찰서를 나온 뒤 학교 안 비밀 아지트에 있는 비밀 스터디 그룹의 멤버들을 찾아간다. 준은 서울대 수식입학 축하파티를 벌이고 있는 그들을 인질로 잡는다. 그리고 유진의 죽음에 둘러싼 그들의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15세 관람가, 7월 11일 개봉

10. 빨려드는 몰입감 속에 들어있는 묵직한 메시지. 관람지수 8/교훈지수 10/리얼지수 7

[프리뷰]〈명왕성〉, 사실같아 슬픈 고3 이야기
스틸" /><명왕성> 스틸

영화의 출발은 ‘공포’다. 동급생을 살해한 혐의로 취조를 받은 준(이다윗)은 ‘무죄추정의 법칙’을 이야기하며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다. 그것을 본 경찰이 말한다. “사람이 살면서 제일 똑똑할 때가 언젠지 알아? 고3 때야”라고. <명왕성>은 가장 인생에서 가장 똑똑한 고3 시절, 그중에서도 정말 똑똑한 대한민국 상위 1%가 벌인 끔찍한 일을 이야기한다. 성적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이 낳은 끔찍한 일은 현재진행형이어서 더욱 공포를 일으킨다.

고등학교 시절, 인생 최대의 목표는 ‘명문대 진학’뿐이었다. 시험에서 1개만 틀려도 좌절했다. 숫자 하나에 일희일비하다보면 어느새 열등감에 사로잡힌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친한 친구라도 성적 앞에서 어색해지곤 한다. 어머니의 치마폭에서 고액의 사교육을 받는 친구들을 욕하다가도 한편으론 부러워한다. <명왕성>의 준을 비롯한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성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이 정해지고 극한의 경쟁 속에서 인간성을 잃어버린다. 오로지 돈과 성적만을 최고로 여기게 된다. 그때는 명문대를 진학하면 인생은 탄탄대로인줄 알았다. 그러나 정작 사회에 나온 사람들은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자신의 재능을 진작 발견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교육을 원망한다. <명왕성>의 학생들을 보며 자신이 학창시절을 상기하고 문제점을 알게 된 사람들은 공포를 느낀다. 그 공포를 통해 관객들은 우리나라 교육현실에 대해 영화가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

교사 출신 감독이 보여주는 섬세한 디테일로 몰입감을 높였다. 과학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도우미를 자원받자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선생님이 “가산점을 주겠다”고 말하는 순간 우수수 손을 드는 학생들…실제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입시 경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또한 성적순으로 명문대를 준비반인 ‘진학재’를 만들어 더욱 경쟁을 부추기는 설정 또한 입시반, 심화반 등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례다. 신수원 감독은 “교사 생활을 하면서 재능 있는 아이들이 입시 교육이라는 틀을 견디지 못하고 낙오되는 모습을 봤다”며 “상위 1%에 속한 학생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 어떤 비극을 낳게 될까 생각했다”고 <명왕성>의 이야기 배경을 말했다. 섬세한 디테일은 관객이 학창 시절에 가졌던 스트레스를 떠올리게 하며 공감을 산다.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는 미스터리 구조는 영화의 충격을 더한다. <명왕성>은 고3 소년이 성장하는 드라마가 아니라 꿈을 가졌던 고3이 결국 꿈을 포기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으면서 충격을 준다. 처음부터 전교 1등의 죽음을 보여줬고, 그 죽음에 얽힌 비밀들이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며 하나씩 벗겨진다. 비밀이 벗겨질 때마다 범인인 학생들은 조금씩 무너지며 본모습을 드러낸다. 평범한 학생이 ‘진학재’에 들어가기 위해 비밀 스터디에 참여하려 하고 그로 인해 비윤리적인 일을 저지르면서 사건은 발전한다. “우리는 다 할 수 있어”, “원한다면 돈은 얼마든지 줄게” 등의 대사를 통해 돈과 성적이라면 인간의 목숨까지 가볍게 여기는 학생들의 일그러진 모습이 나타난다. 모든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고 용서를 비는 와중에도 남을 짓밟으려 하는 추악한 모습의 학생들을 보면서 관객들은 더욱 충격에 빠져든다.

해외 영화제 호평은 영화에 대한 신뢰를 높인다. <명왕성>은 국내 공식 개봉 이전, 세계 주요 영화제에 초청돼 화제를 모았다. 제63회 베를린영화제 특별언급상을 수상하였다. 경쟁으로 인해 무너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다룬 이야기가 우리나라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감을 살 수 있는 이야기임을 증명했다.

글. 박수정 soverus@tenasia.co.kr

사진제공. SH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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