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에 출연한 배우 이희준을 만났다.
'보고타'는 IMF 직후, 새로운 희망을 품고 지구 반대편 콜롬비아 보고타로 향한 국희(송중기 분)가 보고타 한인 사회의 실세 수영(이희준 분), 박병장(권해효 분)과 얽히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이희준은 한인 밀수 시장의 2인자이자 통관 브로커 수영을 연기했다.
이희준은 송중기에 대해 "프로듀서처럼 현장 전체를 챙기고 신경쓴다. 긴장한 외국 단역이 있으면 달래고 감독님한테도 '뭐라고 하지 마시고 편하게 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한다. 그런 걸 일일이 다 신경쓴다"고 칭찬했다. 이어 "오지랖이기도 한데, 어떻게 보면 저는 중기 배우가 톰 크루즈 같더라. 영화 전체를 책임지고 끌고 가려고 한다. 톰 크루즈가 그런 이미지이지 않나. 저는 제 것 신경쓰기도 바빠서 감히 그렇게 할 수 없다"라고 감탄했다.
이희준은 극 중 수영장에서 파티하는 신을 언급하며 송중기를 또 한 번 칭찬했다. 이희준은 "제가 몸살이 나서 열이 엄청 났다. 식은땀도 났다. 재밌게 노는 분위기가 나려면 (배우들끼리 미리) 서로 인사도 하고 해야하지 않나. 제가 했어야 하는 위치인데, 제가 못하니까 중기가 이런 컷은 이렇게 해야 재밌게 보인다고 (배우들끼리) 친해지게 하더라"고 전했다.
이희준이 연기한 수영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국희를 포섭하면서도, 국희가 콜롬비아 보고타의 한인사회에서 영향력을 갖게되자 경계하기도 한다. 이희준은 "수영을 연기할 때는 수영으로서 국희의 어떤 점을 좋아하고 '저런 건 나한테 없는데' 상상해보기도 했다. 실제로 연극하는 후배가 어느 순간 '형~ 어~'라면서 툭툭치거나 그러면 어떨까. 국희가 커졌을 때 어떤 게 기분 나쁠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봤다"고 배역 몰입법을 밝혔다.
이희준은 "부작용이 있다"고도 털어놨다. 그는 "1년 반~3년 정도 그런 생각을 지나치게 계속했더니 영화가 다 끝나고 중기와 술자리를 하는데 엄청 불편하더라. 주위에 다른 동료도 '중기한테 뭐 있어?'라고 묻더라"라며 웃었다. 또한 "극 중에서 '죽여버린다' 할 때도 가짜로 되는 건 아니라서 '죽여버리고 싶다'는 정도의 마음을 많이 상상하는 편이다"라고 털어놨다.
송중기도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냐는 물음에 이희준은 "한 번도 얘기한 적 없다. 전혀 모를 거다. 이제는 중기가 많이 편해졌다"라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또한 "내가 배역에서 못 벗어나는 걸 수도 있다. 내가 하는 배우 작업의 부작용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배역에 몰입하다 보면 괴로울 때도 있을 것. 이희준은 "'살인자ㅇ난감'도 할 때는 재밌었는데 지나고 나니 후유증이 컸다. 세상을 보는 눈이 탁해지고 부정적이고 우울해지더라. 집에 가는 차 안에서 갑자기 눈물이 나고 그랬다. 그래서 배우들이 치료가 필요하고 자기만의 힐링이 필요하다. 애쓴다. 명상도 하고 108배도 한다. 살아남으려고 그런다"라고 털어놓았다. 이어 "같이 사는 사람도 (이런 내가) 쉽지 않을 거다. 배우와 사는 사람들은 쉽지 않을 거다. 와이프가 많이 힘들거다"라며 아내를 향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했다.
'보고타'는 오는 31일 개봉한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