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자립준비청년은 약 2500명이다. 자립준비청년은 아동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가정위탁 등의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 이후 보호가 종료되어 홀로서기에 나서는 청년을 말한다. 보호 종료 후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생활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의도치 않게 범죄에 노출되기도 한다.
이러한 자립준비청년의 현실을 담담히 담은 영화가 있다. '문을 여는 법'이다. 영화는 판타지 드라마 장르로, 유쾌하면서도 은유적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감정 과잉의 상태로 이들을 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문을 여는 법'을 공동 연출, 각본을 맡은 박지완 감독과 허지예 감독을 텐아시아가 만났다. 20일 개봉하는 '문을 여는 법'은 보육원에 나와 자립지원금 1000만 원을 들고 사회에 나오게 된 자립준비청년 하늘이(채서은 분)의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이다. 문화예술NGO 길스토리 대표인 배우 김남길이 KB국민은행과 손잡고 자립준비청년들과의 문화적 연대를 이루기 위해 만든 단편영화다. 채서은, 심소영, 노이진 등이 출연하며, 김남길, 고규필은 특별 출연으로 힘을 보탰다.
박지완 감독은 "단편이라 개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못 했다. 큰 행운이다. 캠페인 영화는 더 많은 사람들이 보길 원하며 만드는 영화인데, 개봉이라는 형태를 통해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되어 좋다. 관객들 중엔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들도 계실 거다. 많은 사람들이 볼지, 또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라고 말했다. 허지예 감독은 "그 동안 단편을 꽤 만들어왔지만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다니 좋다. 좋은 취지의 영화를 관객들과 소통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 뜻깊고 기분 좋다"며 기뻐했다. 이번 작품은 배우 김남길이 제작자이자 기획자로 나섰다. 김남길은 문화예술NGO 단체 길스토리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박 감독은 "김남길 배우와 하기로 한 드라마가 하나 있는데, 그때 만나서 알게 됐다. 김남길 배우가 NGO를 한다는 건 알고 있었고, 거기서 국민은행과 제안해주셨다. 단편 영화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겠다 싶었다"고 참여 계기를 밝혔다. 또한 "김남길 제작자는 제한을 두지 않았다. (예산 면에서) 어렵지 않을까 싶었던 것도 제작팀에서 할 수 있게 해줬다. 훌륭한 제작자"라면서 "김남길 배우가 드라마 2개를 겹쳐서 촬영 중일 만큼 바빴는데도 흔쾌히 특별 출연도 해줬다"고 전했다.
공동 연출이 처음인 두 사람은 로스트앤파운드라는 팀명도 만들었다. 영화 속 주인공이 이세계(異世界)에서 처음 당도하는 공간이 분실물센터 이름도 로스트앤파운드이다. 여성감독네트워크 운영진인 허 감독이 뉴스레터 작성을 위해 박 감독을 인터뷰하게 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고. 박 감독은 "인터뷰 때문에 만났는데, 제가 반한 거다"라며 "후배 감독님들이 어떻게 작업하는지 궁금했는데, 이 프로젝트를 제안받고 허 감독과 공동 연출을 해보면 어떨까 싶더라. 허 감독님은 이유도 모르고 저를 만났고, 2~3일 고민해보고 답해했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하겠다더라"며 웃었다. 허 감독은 "인터뷰하는 게 저한테는 일종의 팬미팅, 사심을 채우는 자리였다"라며 "박 감독님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가 없었다. 거절하는 사람이 바보"라고 말했다.
40대인 박 감독과 20대인 허 감독. 선후배 사이 공동 연출·각본에 어려움은 없었냐는 질문에 허 감독은 "없었다"며 웃었다. 박 감독은 "시나리오를 혼자 쓸 때 자기 점검을 많이 하는 편이다. 하지만 공동 연출하는 친구가 있으니 오히려 자유로웠다. 내가 헛소리해도 '아닌 것 같다' 얘기해주기도 했고, 서로 의논하며 뜻밖의 요소가 더 들어가기도 하고 얘기가 이야기가 멀리가면 잡아주기도 했다. 혼자라면 제어하기 어려웠을 텐데 재밌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박 감독은 평소 자립준비청년이라는 소재에 관심이 있었다고. 박 감독은 "제가 청년 문제에 관심이 있다. 제가 40대인데 좋은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스무 살 청년들은 성인들이지만 이들은 이제 갓 사회에 나왔지 않나. 더 좋은 생활을 하려면 더 좋은 어른들이 많아야할 것 같았다. '난 뭘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자립준비청년의 존재도 알게 된 거다"고 말했다.
자립준비청년들을 소재로 한 기존 콘텐츠들이 그들의 연민의 시선으로 조명한 것과 달리, '문을 여는 법'은 유쾌하고 엉뚱한 동화, 판타지로 이야기를 연출했다. 박 감독은 "2~3년 전 다큐멘터리, 후원 등 이들을 향한 관심이 한참 있었다. 하지만 연민에 호소하는 내용이 많았다. 이면에 다른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추상적이고 은유적인 방식에 관객들이 익숙지 않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기법이 오히려 그들의 현실을 좀 더 객관적이고 덤덤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박 감독은 "이 영화를 제안 받고 판타지 장르로 하겠다고 정했다"며 "영화를 준비하며 자립준비청년들을 인터뷰했다. 똘똘하고 자기 객관화가 잘 돼 있는 건강한 20대 청년들이었다. '이 친구들은 오히려 준비돼 있는데, 우리가 준비가 안 된 게 아닐까' 싶더라. 이런 부분을 시나리오에 어떻게 녹여낼까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또한 "그들이 자립준비청년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을 뿐이지 만난 분들 각각 달랐다. 이들은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서 표현하는 건 조심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서 피해보려고 했다. 이들이 겪는 현실을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생각해볼 수 있는 방식으로 해야겠다 싶었다. 그러면서 하늘이의 모험은 어떻게 펼쳐질지 고민해봤다"고 말했다.
허 감독은 이전의 다른 작업보다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작업했다고 한다. 허 감독은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전 작업들보다 더 섬세함이 요구된다고 느꼈다. 나도 모르게 왜곡하게 되면 더더욱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극 중 하늘이가 느끼는 감정들이 중요한데, 직접 들어보지 않으면 모를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당사자들, 보육원 엄마들을 인터뷰하며 감정적 영역에서 그들을 느껴보기도 했다"고 전했다. 극 중 하늘이 보육원을 나오며 자립정착금으로 받는 돈은 1000만 원. 적은 돈은 아니지만 1000만 원으로 살 집에 살림살이를 마련하고 생활비까지 사용하기에 많은 돈이라고 하긴 어렵다. 어렵게 조건에 맞는 집을 구하고 세간을 마련한 하늘. 사치를 부리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월세 내기도 빡빡해졌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빠듯한 현실을 월세방이 줄어들어 집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는 하늘의 모습으로 표현됐다. 박 감독은 "1000만 원은 큰 돈이지만 누군가 정착하기에 큰 돈이 아닐 수도 있다. 막연한 불안감이 있을 거다. 청년 누구나 마찬가지다. 하늘의 무의식에 '이 집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 집에 계속 있고 싶은데 해결하려면 현실적인 선택지가 얼마나 있을까'는 불안감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분실물센터, 세차장, 미아보호소, 놀이동산 등 주인공이 여러 공간으로 이동한다. 각 공간에서 주인공은 어찌 보면 황당한 일을 겪기도 한다. 자립준비청년이 사회에서 받는 편견, 오해, 고충 등을 담은 것. 극 중 절도범으로 오해 받은 하늘을 경찰들이 이송하는데, 경찰들은 '색안경'을 착용하고 있는 장면도 그러한 맥락이다. 또한 분실물센터에서 하늘은 집을 잃을 위기에서 정신없이 서류를 작성하게 된다. 부모의 성명란에는 자신의 이름을 적을 수밖에 없다. 이 서류가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는 건지 자세히 알려주는 이도 없다. 허 감독은 "자립준비청년이 사회에 나갔을 때 실제로 작성해야 하는 서류가 많더라.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나간다는 걸 반영했다. 살면서 학교 등에서 서류에 부모 이름을 적거나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이 '흠칫'하게 되는 순간, 그걸 마주하는 순간 등 현실을 반영했다"고 전했다.
하늘 역을 맡은 배우 채서은은 특유의 밝고 화사한 이미지로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환기시키고 판타지 동화 같은 이야기 흐름과 어울리는 밝은 연기를 보여줬다. 허 감독은 채서은에 대해 "10회차 촬영 내내 에너지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온 마음을 다해 하늘이를 느끼려고 준비된 분 같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판타지물도 좋아한다고 했고 질문도 많이 하더라. 작업 과정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박 감독 역시 "우리가 설계해놓은 캐릭터의 감정대로 잘 따라와줬다. 스스로도 많이 점검하더라. 연기하다보면 약속했던 것보다 더 화날 수도 주눅들 수도 있는데, 본인이 적정선을 알아서 잘 찾아줬다"고 칭찬했다. 또한 "다른 배우들은 1회차 촬영인 경우가 많았는데, 하늘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나온다. 하늘이가 헤매면 얘기가 틀어진다는 얘기다. 하지만 촬영장에 들어오며 매번 인사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런 걱정을 무마시켰다"며 미소 지었다. 영화는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사회적 제도가 개선되고 그들을 향한 시선도 달라져야 한다고 시사한다. 뿐만 아니라 자립준비청년 스스로도 마음속 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영화 속 집을 잃을 위기의 하늘은 '노랑새를 찾아라'는 미션을 부여받는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노랑새'를 찾으려 동분서주하는 하늘. 하지만 점차 외부의 '노랑새'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더 집중하게 된다. 박 감독은 "어른들이 청년들에게 '꿈을 가져라'고 한다든지 '네가 좇아갈 게 필요하다'든지 그런 얘기를 쉽게 하지 않나. 하늘이도 집 말고 뭔가 좇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하늘이가 노랑새를 쟁취하려고 하지만 중간에 노랑새의 의미는 살짝 휘발된다. 그리고 하늘이 스스로 내면의 문을 열고 나오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하늘이 겪는 결핍을 확연히 드러내지 않으면서 은근히 녹여내려 했다"고 전했다.
그간 따뜻한 손길이 느껴지는 작품을 선보여온 두 감독. 박 감독은 "특별히 마이너리티를 다루고 싶었던 건 아니다. 제가 생각한 얘기가 재밌는데 마이너리티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이라며 "이번 프로젝트가 저한테는 인생에서 하지 않을 선택을 많이 하게 한 작업이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계획적인 저와 즉흥적인 허 감독, 나이 차이 꽤 나는 후배와의 작업. 제 동료와 허 감독 동료가 합쳐지니 세대가 섞여서 좋았다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그러면서 '나 역시 편협한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던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앞으로 다른 방식의 작업도 찾아보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분위기가 밝은 영화를 찍으니 즐거움이 많더라. 이런 식으로 작업해도 재밌겠다 생각했다"고 전했다.
허 감독은 "소외된 사람을 소재로 다루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소외된 사람들의 얘기에 더 공감되는 것 같다. 영화를 만들면서 제가 품고 있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다정함'이다. '다정함'이 담기는 과정도 중요하고, 결과물에도 미미하지만 다정한 순간들을 넣고 싶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런 키워드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이러한 자립준비청년의 현실을 담담히 담은 영화가 있다. '문을 여는 법'이다. 영화는 판타지 드라마 장르로, 유쾌하면서도 은유적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감정 과잉의 상태로 이들을 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문을 여는 법'을 공동 연출, 각본을 맡은 박지완 감독과 허지예 감독을 텐아시아가 만났다. 20일 개봉하는 '문을 여는 법'은 보육원에 나와 자립지원금 1000만 원을 들고 사회에 나오게 된 자립준비청년 하늘이(채서은 분)의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이다. 문화예술NGO 길스토리 대표인 배우 김남길이 KB국민은행과 손잡고 자립준비청년들과의 문화적 연대를 이루기 위해 만든 단편영화다. 채서은, 심소영, 노이진 등이 출연하며, 김남길, 고규필은 특별 출연으로 힘을 보탰다.
박지완 감독은 "단편이라 개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못 했다. 큰 행운이다. 캠페인 영화는 더 많은 사람들이 보길 원하며 만드는 영화인데, 개봉이라는 형태를 통해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되어 좋다. 관객들 중엔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들도 계실 거다. 많은 사람들이 볼지, 또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라고 말했다. 허지예 감독은 "그 동안 단편을 꽤 만들어왔지만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다니 좋다. 좋은 취지의 영화를 관객들과 소통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 뜻깊고 기분 좋다"며 기뻐했다. 이번 작품은 배우 김남길이 제작자이자 기획자로 나섰다. 김남길은 문화예술NGO 단체 길스토리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박 감독은 "김남길 배우와 하기로 한 드라마가 하나 있는데, 그때 만나서 알게 됐다. 김남길 배우가 NGO를 한다는 건 알고 있었고, 거기서 국민은행과 제안해주셨다. 단편 영화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겠다 싶었다"고 참여 계기를 밝혔다. 또한 "김남길 제작자는 제한을 두지 않았다. (예산 면에서) 어렵지 않을까 싶었던 것도 제작팀에서 할 수 있게 해줬다. 훌륭한 제작자"라면서 "김남길 배우가 드라마 2개를 겹쳐서 촬영 중일 만큼 바빴는데도 흔쾌히 특별 출연도 해줬다"고 전했다.
공동 연출이 처음인 두 사람은 로스트앤파운드라는 팀명도 만들었다. 영화 속 주인공이 이세계(異世界)에서 처음 당도하는 공간이 분실물센터 이름도 로스트앤파운드이다. 여성감독네트워크 운영진인 허 감독이 뉴스레터 작성을 위해 박 감독을 인터뷰하게 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고. 박 감독은 "인터뷰 때문에 만났는데, 제가 반한 거다"라며 "후배 감독님들이 어떻게 작업하는지 궁금했는데, 이 프로젝트를 제안받고 허 감독과 공동 연출을 해보면 어떨까 싶더라. 허 감독님은 이유도 모르고 저를 만났고, 2~3일 고민해보고 답해했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하겠다더라"며 웃었다. 허 감독은 "인터뷰하는 게 저한테는 일종의 팬미팅, 사심을 채우는 자리였다"라며 "박 감독님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가 없었다. 거절하는 사람이 바보"라고 말했다.
40대인 박 감독과 20대인 허 감독. 선후배 사이 공동 연출·각본에 어려움은 없었냐는 질문에 허 감독은 "없었다"며 웃었다. 박 감독은 "시나리오를 혼자 쓸 때 자기 점검을 많이 하는 편이다. 하지만 공동 연출하는 친구가 있으니 오히려 자유로웠다. 내가 헛소리해도 '아닌 것 같다' 얘기해주기도 했고, 서로 의논하며 뜻밖의 요소가 더 들어가기도 하고 얘기가 이야기가 멀리가면 잡아주기도 했다. 혼자라면 제어하기 어려웠을 텐데 재밌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박 감독은 평소 자립준비청년이라는 소재에 관심이 있었다고. 박 감독은 "제가 청년 문제에 관심이 있다. 제가 40대인데 좋은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스무 살 청년들은 성인들이지만 이들은 이제 갓 사회에 나왔지 않나. 더 좋은 생활을 하려면 더 좋은 어른들이 많아야할 것 같았다. '난 뭘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자립준비청년의 존재도 알게 된 거다"고 말했다.
자립준비청년들을 소재로 한 기존 콘텐츠들이 그들의 연민의 시선으로 조명한 것과 달리, '문을 여는 법'은 유쾌하고 엉뚱한 동화, 판타지로 이야기를 연출했다. 박 감독은 "2~3년 전 다큐멘터리, 후원 등 이들을 향한 관심이 한참 있었다. 하지만 연민에 호소하는 내용이 많았다. 이면에 다른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추상적이고 은유적인 방식에 관객들이 익숙지 않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기법이 오히려 그들의 현실을 좀 더 객관적이고 덤덤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박 감독은 "이 영화를 제안 받고 판타지 장르로 하겠다고 정했다"며 "영화를 준비하며 자립준비청년들을 인터뷰했다. 똘똘하고 자기 객관화가 잘 돼 있는 건강한 20대 청년들이었다. '이 친구들은 오히려 준비돼 있는데, 우리가 준비가 안 된 게 아닐까' 싶더라. 이런 부분을 시나리오에 어떻게 녹여낼까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또한 "그들이 자립준비청년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을 뿐이지 만난 분들 각각 달랐다. 이들은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서 표현하는 건 조심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서 피해보려고 했다. 이들이 겪는 현실을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생각해볼 수 있는 방식으로 해야겠다 싶었다. 그러면서 하늘이의 모험은 어떻게 펼쳐질지 고민해봤다"고 말했다.
허 감독은 이전의 다른 작업보다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작업했다고 한다. 허 감독은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전 작업들보다 더 섬세함이 요구된다고 느꼈다. 나도 모르게 왜곡하게 되면 더더욱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극 중 하늘이가 느끼는 감정들이 중요한데, 직접 들어보지 않으면 모를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당사자들, 보육원 엄마들을 인터뷰하며 감정적 영역에서 그들을 느껴보기도 했다"고 전했다. 극 중 하늘이 보육원을 나오며 자립정착금으로 받는 돈은 1000만 원. 적은 돈은 아니지만 1000만 원으로 살 집에 살림살이를 마련하고 생활비까지 사용하기에 많은 돈이라고 하긴 어렵다. 어렵게 조건에 맞는 집을 구하고 세간을 마련한 하늘. 사치를 부리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월세 내기도 빡빡해졌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빠듯한 현실을 월세방이 줄어들어 집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는 하늘의 모습으로 표현됐다. 박 감독은 "1000만 원은 큰 돈이지만 누군가 정착하기에 큰 돈이 아닐 수도 있다. 막연한 불안감이 있을 거다. 청년 누구나 마찬가지다. 하늘의 무의식에 '이 집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 집에 계속 있고 싶은데 해결하려면 현실적인 선택지가 얼마나 있을까'는 불안감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분실물센터, 세차장, 미아보호소, 놀이동산 등 주인공이 여러 공간으로 이동한다. 각 공간에서 주인공은 어찌 보면 황당한 일을 겪기도 한다. 자립준비청년이 사회에서 받는 편견, 오해, 고충 등을 담은 것. 극 중 절도범으로 오해 받은 하늘을 경찰들이 이송하는데, 경찰들은 '색안경'을 착용하고 있는 장면도 그러한 맥락이다. 또한 분실물센터에서 하늘은 집을 잃을 위기에서 정신없이 서류를 작성하게 된다. 부모의 성명란에는 자신의 이름을 적을 수밖에 없다. 이 서류가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는 건지 자세히 알려주는 이도 없다. 허 감독은 "자립준비청년이 사회에 나갔을 때 실제로 작성해야 하는 서류가 많더라.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나간다는 걸 반영했다. 살면서 학교 등에서 서류에 부모 이름을 적거나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이 '흠칫'하게 되는 순간, 그걸 마주하는 순간 등 현실을 반영했다"고 전했다.
하늘 역을 맡은 배우 채서은은 특유의 밝고 화사한 이미지로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환기시키고 판타지 동화 같은 이야기 흐름과 어울리는 밝은 연기를 보여줬다. 허 감독은 채서은에 대해 "10회차 촬영 내내 에너지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온 마음을 다해 하늘이를 느끼려고 준비된 분 같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판타지물도 좋아한다고 했고 질문도 많이 하더라. 작업 과정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박 감독 역시 "우리가 설계해놓은 캐릭터의 감정대로 잘 따라와줬다. 스스로도 많이 점검하더라. 연기하다보면 약속했던 것보다 더 화날 수도 주눅들 수도 있는데, 본인이 적정선을 알아서 잘 찾아줬다"고 칭찬했다. 또한 "다른 배우들은 1회차 촬영인 경우가 많았는데, 하늘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나온다. 하늘이가 헤매면 얘기가 틀어진다는 얘기다. 하지만 촬영장에 들어오며 매번 인사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런 걱정을 무마시켰다"며 미소 지었다. 영화는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사회적 제도가 개선되고 그들을 향한 시선도 달라져야 한다고 시사한다. 뿐만 아니라 자립준비청년 스스로도 마음속 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영화 속 집을 잃을 위기의 하늘은 '노랑새를 찾아라'는 미션을 부여받는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노랑새'를 찾으려 동분서주하는 하늘. 하지만 점차 외부의 '노랑새'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더 집중하게 된다. 박 감독은 "어른들이 청년들에게 '꿈을 가져라'고 한다든지 '네가 좇아갈 게 필요하다'든지 그런 얘기를 쉽게 하지 않나. 하늘이도 집 말고 뭔가 좇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하늘이가 노랑새를 쟁취하려고 하지만 중간에 노랑새의 의미는 살짝 휘발된다. 그리고 하늘이 스스로 내면의 문을 열고 나오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하늘이 겪는 결핍을 확연히 드러내지 않으면서 은근히 녹여내려 했다"고 전했다.
그간 따뜻한 손길이 느껴지는 작품을 선보여온 두 감독. 박 감독은 "특별히 마이너리티를 다루고 싶었던 건 아니다. 제가 생각한 얘기가 재밌는데 마이너리티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이라며 "이번 프로젝트가 저한테는 인생에서 하지 않을 선택을 많이 하게 한 작업이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계획적인 저와 즉흥적인 허 감독, 나이 차이 꽤 나는 후배와의 작업. 제 동료와 허 감독 동료가 합쳐지니 세대가 섞여서 좋았다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그러면서 '나 역시 편협한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던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앞으로 다른 방식의 작업도 찾아보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분위기가 밝은 영화를 찍으니 즐거움이 많더라. 이런 식으로 작업해도 재밌겠다 생각했다"고 전했다.
허 감독은 "소외된 사람을 소재로 다루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소외된 사람들의 얘기에 더 공감되는 것 같다. 영화를 만들면서 제가 품고 있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다정함'이다. '다정함'이 담기는 과정도 중요하고, 결과물에도 미미하지만 다정한 순간들을 넣고 싶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런 키워드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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