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작, 매혹된 자들'의 조정석이 연기한 임금 이인 캐릭터
'건축학개론'부터 '슬기로운 의사생활'까지 어땠나
'건축학개론'부터 '슬기로운 의사생활'까지 어땠나

조정석이 대중 머릿속에 각인된 것은 영화 '건축학개론'(2012)의 '납뜩이'라는 캐릭터를 통해서다. 왁스로 한껏 머리카락을 넘겨 어른스러운 척 멋을 부리고는, 사랑에 어리숙한 친구 승민(이재훈) 옆에서 키스 비법을 전수하던 모습은 그의 인생연기가 됐다. "납득이 안 가네. 납득이. 스르륵 자연스럽게 혀가 섞여 아주 자연스럽게 비벼"라며 손목을 배배 꼬면서 마구 움직이는 납뜩이의 천연덕스러움은 관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줬다.

그간 조정석을 수식하는 단어들을 마구 흩뿌려 놓아 보자면, 대부분 츤데레, 로코, 익살스러움과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조정석이 연기한 캐릭터가 같은 장르 안에서 통합되거나 압축되지는 않았는데, 이는 '건축학개론'의 납뜩이를 기억하듯 고유한 캐릭터 자체의 모양이 그대로 각인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성이 유방암에 걸린다는 설정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질투의 화신'(2016)의 이화신(조정석)은 어떤가. 이름에 담긴 의미처럼 무언가 활활 끌어오르는 거친 성격의 소유자인 이화신은 SBC 내의 같은 동료들과 자꾸만 부딪힌다. 무능한 것을 제일 싫어하며, 변명은 더더욱 싫어한다. SBC 기상캐스터 표나리(공효진)은 이화신 앞에서 자꾸만 거슬리며 분노를 유발하는 존재임에 틀림없다. 극 중에서 조정석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으로 인해 느끼는 수치심과 불안감으로 인해 매사에 신경질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같은 아픔을 가지고 공감해주는 표나리 앞에서 풍선이 팡하고 터지기도 한다. 얼핏 장난스럽고 코믹스러운 장면으로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화신이 과거에 막대했던 표나리의 세심함에 고마움을 느끼면서 반성하고 후회하는 장면들은 인간미가 느껴지기도 했다.

99학번 의대 동기 다섯 명이 만든 밴드의 각 포지션이 조화롭게 융화되어 하나의 음악을 만드는 것이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가장 큰 핵심이라면, 핵심이랄까. 서로 화음을 쌓고 하나의 곡을 완수하듯, 세컨드 기타의 흉부외과 김준완(정경호), 키보드의 산부인과 양석형(김대명), 베이스의 신경외과 채송화(전미도), 보컬 겸 퍼스트 기타의 간담췌외과 이익준(조정석), 드럼의 소아외과 안정원(유연석)은 조화를 이룬다.
병원 내 모든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는 친화력과 아들 이우주(김준)에겐 다정한 아버지, 친구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이익준 교수는 조정석을 만나 재치 한 스푼을 더했다. 천재라고 불리지만, 아들이 머리에 헬멧을 본드로 붙여 다스베이더 상태에서 수술을 진행하는 엉뚱함과 손가락이 모두 화상을 입어 칭칭 감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개구리 왕눈이 손가락이라며 미소를 지어 보이는 천진함이 그러하다. 마치 2013년 개봉했던 영화 '관상'(감독 한재림)에서 다 헤진 거적때기를 입고는 관상가 내경(송강호) 옆에서 한마디씩 말을 거드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쩌면 대중들이 배우 조정석의 연기에 매혹(魅惑)되는 이유는 그의 능글맞음 안에 담겨 있는 묵직한 진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겉보기에는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느낌일지라도 미세하게 떨리는 미간의 주름, 입은 그가 연기한 캐릭터가 단편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했다. 그래서 비슷한 로코 장르 안에서도 조정석의 인물들은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 묶이지 않고 자유로이 비상하는 느낌이 든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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