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작, 매혹된 자들'의 조정석이 연기한 임금 이인 캐릭터
'건축학개론'부터 '슬기로운 의사생활'까지 어땠나
tvN '세작, 매혹된 자들' 스틸컷.
tvN '세작, 매혹된 자들' 스틸컷.
조정석은 양 볼에 사탕을 한 움큼 문 듯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능청스러운 연기를 펼쳐낸다. 보는 이로 하여금 피식-하고 웃음을 짓게 하는 마력을 갖고 있는 배우다. 속사포처럼 빠르게 뱉어내는 대사와 자유자재로 미묘하게 움직이는 얼굴 근육은 다음 표정은 무엇일지 궁금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조정석이 대중 머릿속에 각인된 것은 영화 '건축학개론'(2012)의 '납뜩이'라는 캐릭터를 통해서다. 왁스로 한껏 머리카락을 넘겨 어른스러운 척 멋을 부리고는, 사랑에 어리숙한 친구 승민(이재훈) 옆에서 키스 비법을 전수하던 모습은 그의 인생연기가 됐다. "납득이 안 가네. 납득이. 스르륵 자연스럽게 혀가 섞여 아주 자연스럽게 비벼"라며 손목을 배배 꼬면서 마구 움직이는 납뜩이의 천연덕스러움은 관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줬다.
영화 '건축학개론' 스틸컷. /사진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건축학개론' 스틸컷. /사진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일상에 짙게 밴 코미디를 맞춤옷처럼 입던 조정석은 '세작, 매혹된 자들'에서 서늘함과 섬뜩함이 담긴 임금의 옷을 입고 나타났다. 궁중의 암투 속에서 아픈 형의 죽음으로 왕위에 오른 이인(조정석)은 단계적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초반부 이인은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가 모진 생활을 견뎌내고 다시 고국인 조선으로 돌아오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차가운 말과 시선들뿐. 역겹다는 비난에 곧 무너질 듯 위태롭던 이인을 일으켜 세운 것은 남장하고 바둑을 두던 강희수(신세경)의 존재였다. 비정함과 따스함을 오가는 임금이 된 이인은 자신을 반대하던 신하를 무자비하게 베어버리며 단번에 임금으로서의 위엄과 권위를 설명해내고야 만다.

그간 조정석을 수식하는 단어들을 마구 흩뿌려 놓아 보자면, 대부분 츤데레, 로코, 익살스러움과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조정석이 연기한 캐릭터가 같은 장르 안에서 통합되거나 압축되지는 않았는데, 이는 '건축학개론'의 납뜩이를 기억하듯 고유한 캐릭터 자체의 모양이 그대로 각인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tvN '오 나의 귀신님' 방송 캡처본.
tvN '오 나의 귀신님' 방송 캡처본.
'오 나의 귀신님'(2015)에서 조정석은 덤벙거리고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못마땅하던 나봉선(박보영)의 변화에 조금씩 동화되는 셰프 강선우로 츤데레가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귀신인 신순애(김슬기)의 영혼이 들어간 나봉선은 우물거리며 입안으로 문장을 삼키던 소심한 성격에서 할 말을 다 하는 화끈한 성격으로 변모한다. "내가 누군 줄 아냐"라며 자아도취에 자신밖에 모르던 강선우가 나봉선에 녹아들며 사랑스러운 얼굴로 변해가는 단계는 인상적이다.

남성이 유방암에 걸린다는 설정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질투의 화신'(2016)의 이화신(조정석)은 어떤가. 이름에 담긴 의미처럼 무언가 활활 끌어오르는 거친 성격의 소유자인 이화신은 SBC 내의 같은 동료들과 자꾸만 부딪힌다. 무능한 것을 제일 싫어하며, 변명은 더더욱 싫어한다. SBC 기상캐스터 표나리(공효진)은 이화신 앞에서 자꾸만 거슬리며 분노를 유발하는 존재임에 틀림없다. 극 중에서 조정석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으로 인해 느끼는 수치심과 불안감으로 인해 매사에 신경질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같은 아픔을 가지고 공감해주는 표나리 앞에서 풍선이 팡하고 터지기도 한다. 얼핏 장난스럽고 코믹스러운 장면으로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화신이 과거에 막대했던 표나리의 세심함에 고마움을 느끼면서 반성하고 후회하는 장면들은 인간미가 느껴지기도 했다.
SBS '질투의 화신' 방송 캡처본.
SBS '질투의 화신' 방송 캡처본.
그래서일까. 조정석의 멜로는 진하디진한 에스프레소라기보다는 달달한 라떼를 닮아있다. 마냥 쓴맛이 아닌 끝에 씁쓸하게 번져와서 남녀노소 누구나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는 대중성을 담고 있다는 느낌이다. 잔잔한 일상을 너무 무겁게도, 가볍게도 다루지 않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조정석은 그렇기에 빛을 발한다.

99학번 의대 동기 다섯 명이 만든 밴드의 각 포지션이 조화롭게 융화되어 하나의 음악을 만드는 것이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가장 큰 핵심이라면, 핵심이랄까. 서로 화음을 쌓고 하나의 곡을 완수하듯, 세컨드 기타의 흉부외과 김준완(정경호), 키보드의 산부인과 양석형(김대명), 베이스의 신경외과 채송화(전미도), 보컬 겸 퍼스트 기타의 간담췌외과 이익준(조정석), 드럼의 소아외과 안정원(유연석)은 조화를 이룬다.

병원 내 모든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는 친화력과 아들 이우주(김준)에겐 다정한 아버지, 친구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이익준 교수는 조정석을 만나 재치 한 스푼을 더했다. 천재라고 불리지만, 아들이 머리에 헬멧을 본드로 붙여 다스베이더 상태에서 수술을 진행하는 엉뚱함과 손가락이 모두 화상을 입어 칭칭 감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개구리 왕눈이 손가락이라며 미소를 지어 보이는 천진함이 그러하다. 마치 2013년 개봉했던 영화 '관상'(감독 한재림)에서 다 헤진 거적때기를 입고는 관상가 내경(송강호) 옆에서 한마디씩 말을 거드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방송 캡처본.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방송 캡처본.
오랜 친구인 채송화와 관계가 무너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주말에 캠핑한다는 말에 곧바로 'YES'를 외치는 단호함은 잔잔한 파도와 같은 은근한 설렘을 안겨주기도 했다. 비오는 날, "너 사고 났을 때 나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뭔 줄 알아? 고백할걸. 너 마음 그대로면 우리 사귈까"이라는 채송화에 말에 "대답하려고"라고 말하며 키스를 하는 이익준의 모습은 아스라이 부서질까 조마조마하던 둘의 관계를 정립하던 순간이기도 했다.

어쩌면 대중들이 배우 조정석의 연기에 매혹(魅惑)되는 이유는 그의 능글맞음 안에 담겨 있는 묵직한 진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겉보기에는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느낌일지라도 미세하게 떨리는 미간의 주름, 입은 그가 연기한 캐릭터가 단편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했다. 그래서 비슷한 로코 장르 안에서도 조정석의 인물들은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 묶이지 않고 자유로이 비상하는 느낌이 든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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