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 다시 살펴보면 좋을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영화 '리멤버: 기억의 살인자' 포스터 / 사진제공=제이앤씨미디어그룹](https://img.hankyung.com/photo/202004/BF.22387175.1.jpg)
평생 나치 전범을 추적해 전범 재판에 넘기는 일을 했던 맥스 로젠바움(마틴 랜도)은 루디 쿨란더가 위장한 아우슈비츠 구역장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결국 정확히 누구인지 밝혀내진 못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흘러 거의 70년이 지났고 이제는 실버타운에서 코에 산소 줄을 낀 채 살아가는 신세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우슈비츠에 같이 있었던 제프 구트만(크리스토퍼 플러머)을 만나 그에게 임무를 맡긴다. 2차 대전 직후에 미국으로 건너온 네 명의 루디 쿨란더를 차례로 만나 그 중의 한 명이 악독한 살인자라는 사실을 확인하면 총으로 쏴 죽이라는 것이었다. 맥스나 제프나 루디나 이미 90을 바라보는 노인들이니 전범 재판에 넘겨 시간을 끄느니 즉결 처형을 하라는 뜻이었다. 다행이 제프 역시 루디를 기억하고 있기에 임무를 맡긴 것이었다.
![영화 '리멤버: 기억의 살인자' 스틸 / 사진제공=제이앤씨미디어그룹](https://img.hankyung.com/photo/202004/BF.22387179.1.jpg)
영화를 매우 재미있게 보았다. 특히 네 명의 루디 쿨란더를 찾아갈 때마다 나치의 잔혹성이 하나하나 밝혀지는 과정이 주목할 만했다. 감독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이야기를 구성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루디 쿨란더 1(브루노 간츠)은 사막의 여우 롬멜 장군 휘하에서 군복무를 했던 사실을 지금도 자랑스럽게 여기고, 루디 쿨란더 2(하인츠 리벤)는 아우슈비츠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동성애자로 수용됐던 독일인이며, 3개월 전에 죽은 루디 쿨란더 3은 나치 소년대원(히틀러 유겐트)으로 유대인 체포에 앞장섰던 자이다. 생전의 그에겐 나치 제 3제국이 여전히 이상적인 나라였고 그의 잘못된 교육은 자식 존(딘 노리스)의 인생마저 망쳐버렸다. 집에 자랑스럽게 걸린 하켄 크로이츠(꺾인 십자가) 국기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세 명의 루디 쿨란더는 용맹했던 독일 병사거나 수모를 받았던 독일인이거나 한 치의 변화도 없이 여전히 나치로 살아가는 소년 독일병이었다. 하지만 아직 아우슈비츠의 살인자는 본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제 남은 한 사람, 루디 쿨란더 4(유르겐 프로크노)만 찾으면 모든 게 밝혀질 터이다. 관객은 제프가 노크를 하고 루디의 딸이 문을 여는 장면부터 더욱 긴장하시길 바란다. 극적인 반전이 시작되려는 참이다.
제프는 피아노를 정식으로 배운 사람이다. 하지만 아우슈비츠 이후 피아노 연주를 멈췄다. 그는 루디 쿨란더 4의 집에서 바그너를 연주한다. 제프는 독일어를 알아듣지만 일부러 사용하지 않는다. 그를 괴롭혔던 독일인들이 쓰는 언어를 입에조차 담기 싫어서다. 그랬던 제프가 루디 쿨란더 4를 만나자 독일어를 사용한다. “비록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신 목소리는 변하지 않았군!”
![영화 '리멤버: 기억의 살인자' 스틸 / 사진제공=제이앤씨미디어그룹](https://img.hankyung.com/photo/202004/BF.22387188.1.jpg)
한나 아렌트는 아마 수많은 독일인들이 살인 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고, 고통당하는 자에게서 이득을 취하지 말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독일인들은 이런 양심의 소리를 개인 차원에서 해결하는 법을 배워버렸다고 단정 짓는다.
‘리멤버’에서도 양심을 버린 자들이 나온다. 그런 자들에게 영화는 충고한다.
현재의 삶이 아무리 모범적이어도, ‘거짓된 삶이란, 사는 게 아니다.’
박태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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