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제 16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가 막을 내렸다. 8박 9일간 진행된 영화 축제에 수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그런데 BIFF가 끝난 이 시점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세계 각국의 유명 스타와 감독 혹은 놀랍거나 흥미로웠던 영화가 아니라, 올해 BIFF 전용관으로 첫 선을 보인 영화의 전당이다. 영화의 전당은 2005년 7개 사가 참여한 국제공모를 통해 당선된 오스트리아의 쿱 힘멜브라우사가 설계를 맡았다. 총 1천 678억 원의 예산으로 건설된 이 건축물은 축구장 2.5배 면적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지붕(빅 루프, 스몰 루프)과 그 아래에 조성된 4만 2천 6백조의 화려한 LED 조명으로 먼저 눈길을 끈다. 시네마운틴, 비프힐, 더블콘 3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영화는 물론 다양한 형태의 공연예술을 위한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어졌다. 기둥 하나가 100억 원대라는 영화의 전당은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같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세계적 관광명소를 위한 랜드마크를 지향한다.
철학 부재의 건축이 만들어낸 영화의 전당 이처럼 올해 BIFF의 실질적 주인공이라는 수식 그대로 영화의 전당은 단번에 눈길을 끄는 압도적인 크기와 위용으로 대단한 존재감을 자랑했다. 동시에 규모만큼이나 커다란 문제점을 드러냈다. 늦어진 시공 일정 때문에 미처 준공도 받지 못한 채 임시 사용 허가를 받아 개관한 영화의 전당의 일부 구조물은 여기저기 아귀가 맞지 않는 미흡한 마감을 확연히 드러냈다. 어렴풋한 새 집 냄새가 아니었다면 갓 개관한 건물임을 의심했을 정도로 전체적으로 허술한 느낌이 강했다. 영화관으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영사기 앞까지 좌석을 배치한 하늘연극장이나 좁은 에스컬레이터만으로 이동해야 하는 일부 극장의 구조 등은 폐막일 발생한 빗물 누수에 비하면 귀여운 허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의 전당에서 느낀 미묘한 위화감은 이와 같은 직접적인 불편함과 허술함 그 자체가 아니라 이것이 담고 있는 함의에서 비롯되었다.
영화의 전당은 ‘세계 최대 백화점’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마주보고 선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과 함께 끝이 아득한 고층빌딩 숲에 둘러 싸여 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해운대 신도시의 수많은 건축물 사이에 서 있자니 어디선가 굉음이 들리고 환영이 보이는 듯 했다. 굴삭기와 크레인과 대형 덤프트럭으로 땅이 파헤쳐지고, 거대한 철근이 박히고 딱딱한 콘크리트가 채워지는 광경 말이다. 하지만 이 정신 사납고 시끄러운 환영 속에는 단 하나,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환영 위로 한 문장이 오버 랩 되었다. “사회에게 건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건축물이라는 존재가 아니라, 건축이라는 행위가 필요했다.” 일본의 건축가 쿠마 켄고가 저서 에서 한 말이다.
지난해부터 ‘진심이 짓는다’라는 슬로건으로 눈길을 끈 한 아파트 광고가 있다. “아파트 광고에 출연하지 못하면 톱스타가 아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스타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게 아파트 광고지만, 이 광고에는 김남주도, 고현정도, 신민아도, 심지어 화려한 전경도 없다. 대신 ‘좌우 10cm 더 넓은 주차 공간, 새 집 냄새를 제거하는 베이크 아웃’ 같이 일상생활 속에 드러나는 편의시설의 장점을 담담하게 전달한다. 한국광고학회가 뽑은 올해의 광고상 대상,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 등을 수상한 이 광고의 성공 포인트는 말 그대로 ‘사람’이었다. 사회, 경제적 지위의 노골적 상징 지표로서의 그럴듯한 외양 이전에 이것이 누군가의 삶이 영위되는 공간이라는, 아파트라는 건축물에 대한 핵심을 이해하고 담아내었기 때문이다. 이 광고의 성공이 시사하는 바는 영화의 전당을 비롯하여 지금도 국토 곳곳에서 ‘공공’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진행되고 있는 수많은 건축과 토목 사업에 결여되어 있는 것과 통한다. 바로 개인과 공공체가 의지를 갖고 살아가는 장소를 ‘왜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가’라고 묻는 철학의 부재 말이다.
사람과 건축물이 소외된 건축 BIFF의 숙원 사업이었던 전용관으로서의 기능과 영화산업의 부흥이라는 뚜렷한 목적성을 띠고 지어진 영화의 전당은 단순히 하나의 건축물만이 아니다. 쿠마 켄고는 에서 건축물은 거대하면서 시각적으로 살아 있기 때문에 프로젝트 발표만으로도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는 ‘미디어’이고, 이는 사람들에게 ‘기대’라는 이름의 망상을 낳게 한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맥락에서 20세기의 유명한 경제학자 케인스가 제창했던 “정부가 ‘큰 건축’(공공건축을 의미)에 투자하여 유효 수요를 창출한다“는 ‘승수 효과’(multiplier effect)가 이후 세계 경제 정책, 특히 미국의 뉴딜 정책과 일본의 전후 경제 정책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다분히 근대적 개념인 이와 같은 이야기가 여전히 의미를 가지는 곳이 바로 영화의 전당의 위용에 찬사가 쏟아지고 “토목이 무슨 나쁜 일인가”라고 말하는 지도자가 통치하는 2011년의 대한민국이다.
영화의 전당은 분명, 오페라 하우스나 구겐하임 미술관에 버금가는 미학적 성취는 이루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민의 세금을 사용하여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졌지만 시작부터 지역의 건축가와 전문가가 소외되었고, 시공 일정을 맞추는데 급급해 지역의 특성과 목적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이 기묘한 초현실적 건축물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의 불안함과 허술함을 그대로 반영한다. 건물 사이로 흘러내린 빗물과 맞지 않는 아귀는 비록 늦었지만 설계 변경과 재시공으로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보다, 건축물 자체보다, 건축이라는 행위가 늘 최우선시 되는 이 나라의 고질적인 병폐도 이처럼 보수, 개선될 수 있는 것일까. 쿠마 켄고는 짓고 나서부터가 시작인 것이 바로 건축물이고, 그렇기 때문에 건축이 살아 있는 시간은 결국 지은 뒤에 남는 이야기들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영화라는, 사람의 삶과 가장 닮은 예술을 잉태하고 키우기 위해 만들어진 이 건축물이 앞으로 들려 줄 이야기가 곧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임을 성찰하는 것, 이것이 빗물을 흘려보낼 배수로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지금 영화의 전당에, 그리고 우리 사회에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사진. 이진혁 eleven@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철학 부재의 건축이 만들어낸 영화의 전당 이처럼 올해 BIFF의 실질적 주인공이라는 수식 그대로 영화의 전당은 단번에 눈길을 끄는 압도적인 크기와 위용으로 대단한 존재감을 자랑했다. 동시에 규모만큼이나 커다란 문제점을 드러냈다. 늦어진 시공 일정 때문에 미처 준공도 받지 못한 채 임시 사용 허가를 받아 개관한 영화의 전당의 일부 구조물은 여기저기 아귀가 맞지 않는 미흡한 마감을 확연히 드러냈다. 어렴풋한 새 집 냄새가 아니었다면 갓 개관한 건물임을 의심했을 정도로 전체적으로 허술한 느낌이 강했다. 영화관으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영사기 앞까지 좌석을 배치한 하늘연극장이나 좁은 에스컬레이터만으로 이동해야 하는 일부 극장의 구조 등은 폐막일 발생한 빗물 누수에 비하면 귀여운 허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의 전당에서 느낀 미묘한 위화감은 이와 같은 직접적인 불편함과 허술함 그 자체가 아니라 이것이 담고 있는 함의에서 비롯되었다.
영화의 전당은 ‘세계 최대 백화점’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마주보고 선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과 함께 끝이 아득한 고층빌딩 숲에 둘러 싸여 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해운대 신도시의 수많은 건축물 사이에 서 있자니 어디선가 굉음이 들리고 환영이 보이는 듯 했다. 굴삭기와 크레인과 대형 덤프트럭으로 땅이 파헤쳐지고, 거대한 철근이 박히고 딱딱한 콘크리트가 채워지는 광경 말이다. 하지만 이 정신 사납고 시끄러운 환영 속에는 단 하나,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환영 위로 한 문장이 오버 랩 되었다. “사회에게 건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건축물이라는 존재가 아니라, 건축이라는 행위가 필요했다.” 일본의 건축가 쿠마 켄고가 저서 에서 한 말이다.
지난해부터 ‘진심이 짓는다’라는 슬로건으로 눈길을 끈 한 아파트 광고가 있다. “아파트 광고에 출연하지 못하면 톱스타가 아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스타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게 아파트 광고지만, 이 광고에는 김남주도, 고현정도, 신민아도, 심지어 화려한 전경도 없다. 대신 ‘좌우 10cm 더 넓은 주차 공간, 새 집 냄새를 제거하는 베이크 아웃’ 같이 일상생활 속에 드러나는 편의시설의 장점을 담담하게 전달한다. 한국광고학회가 뽑은 올해의 광고상 대상,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 등을 수상한 이 광고의 성공 포인트는 말 그대로 ‘사람’이었다. 사회, 경제적 지위의 노골적 상징 지표로서의 그럴듯한 외양 이전에 이것이 누군가의 삶이 영위되는 공간이라는, 아파트라는 건축물에 대한 핵심을 이해하고 담아내었기 때문이다. 이 광고의 성공이 시사하는 바는 영화의 전당을 비롯하여 지금도 국토 곳곳에서 ‘공공’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진행되고 있는 수많은 건축과 토목 사업에 결여되어 있는 것과 통한다. 바로 개인과 공공체가 의지를 갖고 살아가는 장소를 ‘왜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가’라고 묻는 철학의 부재 말이다.
사람과 건축물이 소외된 건축 BIFF의 숙원 사업이었던 전용관으로서의 기능과 영화산업의 부흥이라는 뚜렷한 목적성을 띠고 지어진 영화의 전당은 단순히 하나의 건축물만이 아니다. 쿠마 켄고는 에서 건축물은 거대하면서 시각적으로 살아 있기 때문에 프로젝트 발표만으로도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는 ‘미디어’이고, 이는 사람들에게 ‘기대’라는 이름의 망상을 낳게 한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맥락에서 20세기의 유명한 경제학자 케인스가 제창했던 “정부가 ‘큰 건축’(공공건축을 의미)에 투자하여 유효 수요를 창출한다“는 ‘승수 효과’(multiplier effect)가 이후 세계 경제 정책, 특히 미국의 뉴딜 정책과 일본의 전후 경제 정책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다분히 근대적 개념인 이와 같은 이야기가 여전히 의미를 가지는 곳이 바로 영화의 전당의 위용에 찬사가 쏟아지고 “토목이 무슨 나쁜 일인가”라고 말하는 지도자가 통치하는 2011년의 대한민국이다.
영화의 전당은 분명, 오페라 하우스나 구겐하임 미술관에 버금가는 미학적 성취는 이루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민의 세금을 사용하여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졌지만 시작부터 지역의 건축가와 전문가가 소외되었고, 시공 일정을 맞추는데 급급해 지역의 특성과 목적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이 기묘한 초현실적 건축물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의 불안함과 허술함을 그대로 반영한다. 건물 사이로 흘러내린 빗물과 맞지 않는 아귀는 비록 늦었지만 설계 변경과 재시공으로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보다, 건축물 자체보다, 건축이라는 행위가 늘 최우선시 되는 이 나라의 고질적인 병폐도 이처럼 보수, 개선될 수 있는 것일까. 쿠마 켄고는 짓고 나서부터가 시작인 것이 바로 건축물이고, 그렇기 때문에 건축이 살아 있는 시간은 결국 지은 뒤에 남는 이야기들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영화라는, 사람의 삶과 가장 닮은 예술을 잉태하고 키우기 위해 만들어진 이 건축물이 앞으로 들려 줄 이야기가 곧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임을 성찰하는 것, 이것이 빗물을 흘려보낼 배수로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지금 영화의 전당에, 그리고 우리 사회에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사진. 이진혁 eleven@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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