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 측정기: 스티브 잡스가 10대 시절 처음으로 사업자와 협상하며 만든 기계. 그는 당시 대기업 휴렛 팩커드의 경영자 윌리엄 휴렛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부품을 요구했다. 다니던 중학교에서 적응을 못하자 가족에게 전학을 주장하고, 숙제도 하고 싶은 것만 했고, 운동시합에서 지면 분에 못 이겨 울던 아이였으니 이런 일도 가능했을 듯 하다. 게다가 그는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새로 전학 간 지역은 전자기기를 다루는 회사가 많아 전자기기에 관심이 있었던 그가 하고 싶은 일에만 무섭게 매달릴 수 있었을 듯. 스티브 잡스는 윌리엄 휴렛과의 인연으로 휴렛 팩커드에 아르바이트를 다녔고, 이곳에서 마리화나를 배우는 등 새로운 경험을 했다고.
블루박스: 스티브 잡스가 처음으로 장사를 시작한 기계. 공짜 전화를 걸 수 있는 기계로, 당연히 불법이지만 기존 체제에 저항하는 히피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시절이라 이런 행동이 오히려 멋지게 받아들여졌다. 스티브 잡스는 환각제 LSD를 즐겼고, 동양사상에 심취해 명상에 깊이 빠졌다. 이때부터 과일과 점액이 형성되지 않는 채소만 먹는 채식주의가 됐고, 특히 사과의 효능에 매료됐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부모로부터 입양됐다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져 “나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으니, 히피 문화와 동양철학은 정체성을 찾기 위한 방법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듯. 이때의 영향인지 그는 애플 초기 신입사원 면접에서 “LSD는 해봤나?” 같은 질문을 던졌고, “밥딜런이 나의 역할 모델이다. 딜런은 결코 정체하는 법이 없다”라고 말하는 예술가와 인문학자의 DNA를 가진 사업가가 됐다.
애플 I: 스티브 잡스가 처음으로 판매한 컴퓨터. 평생 애증의 관계가 될 스티브 워즈니악이 설계의 대부분을, 스티브 잡스가 사업을 맡았다. 애플 I은 모니터나 키보드 없이 회로 기판만 기본으로 제공되는 기계였지만 개인용 컴퓨터 시장이 시작되던 때라 그럭저럭 팔렸다. 돈도 없고, 대학 중퇴자에 잘 씻지도 않은 히피였던 그는 사업과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스티브 워즈니악을 조르고 졸라 애플에 참여시켰고, 대형 광고주들과 거래하던 홍보 전문가 레즈스 매케너에게 돈 한 푼 없이 수없이 전화를 걸어 설득하는 것만으로 광고를 맡게 했다. 또한 신기술을 가진 엔지니어 스카우트를 위해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를 연봉을 제시하기도 했다. 때론 콜라병을 팔고 어항 수리로 돈을 벌 만큼 가난했지만,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얻어내려 했다. 스티브 잡스가 앞으로 숱한 찬반의 대상이 된 시작점.
애플 II: 스티브 잡스가 20대 갑부가 되도록 했던 컴퓨터. 그는 인도 여행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건 칼 마르크스가 아니라 토마스 에디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대학에서 캘리그라피를 배우며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다. 작은 컴퓨터에서 온갖 프로그램이 돌아가도록 만든 기술은 스티브 워즈니악의 창조물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한 플라스틱 케이스에 모든 내용물이 들어가도록 엔지니어들을 몰아붙이고, 아름다움을 위해 냉각팬의 소음을 없애는 방법을 연구하도록 만든 건 그의 공이었다. 그는 “상자 속에 들어있는 것이라고 해도 가능한 한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며 회로기판마저 아름답게 만들 것을 주문했다. 또한 그는 ‘예비투자제안서’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기능/시간과 돈 절약/삶의 수준 업그레이드’ 등을 개인 컴퓨터의 장점으로 꼽았고, 이는 그대로 현실이 됐다. 당시 그를 만난 한 사람은 “지평선 너머를 내다보는 원대한 비전”을 가졌다고 평하기도 했다. 특유의 비전과 디자인 감각이 드러나기 시작한 순간.
리사: 스티브 잡스의 딸 이름을 딴 컴퓨터. 정작 스티브 잡스는 오랫동안 딸을 친자로 인정하지 않았고, 회사 매출 1억 달러를 올리는 엄청난 부자가 됐지만 리사의 어머니 크리스 앤이 극빈자 보조금에 의지할 만큼 양육비마저 제대로 주지 않았다. 그 사이 원하는 것은 상대를 속여서라도 이루는 스티브 잡스의 사업 방식은 사람들의 반감을 일으켰다. 심지어 그는 오랜 친구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스톡옵션도 주지 않았다. 또한 스티브 워즈니악은 과거 스티브 잡스가 자신과 함께 공동으로 일을 하고 받은 돈 중 대부분을 가로챘다는 걸 알고 분노했고, 스티브 잡스는 사과 대신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건 없었던 일이야”라며 부정했다. 스티브 잡스에게 진저리치는 사람이 늘어났고, 그는 자신의 딸 이름을 쓴 컴퓨터 사업에서 밀려나게 됐다. 뭔가 잘못되고 있었다.
매킨토시: 스티브잡스가 모든 것을 주도한 컴퓨터. 기술적인 면까지 일일이 관여하며 매킨토시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했다. 심지어 부하직원이 주목받는 게 싫어 그의 프레젠테이션을 망치려고 했고, 직원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내면 앞에서는 거부한 뒤 얼마 후 돌아와 자신의 아이디어처럼 포장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매킨토시 직원들을 일주일에 90시간 이상씩 일하게 만들었고, 그들에게 호텔 수준의 음식을 제공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연봉을 리사 개발팀보다 형편없이 낮게 책정했다. 그는 1984년 역사적인 매킨토시 CF를 통해 애플을 거대 컴퓨터 기업 IBM에 맞서는 민주 투사처럼 포장했지만, 매킨토시 팀은 가장 비민주적인 조직이었고, 그는 이해 불가능한 ‘I’였다.
큐브: 그가 애플을 나와 만든 회사 넥스트에서 만든 컴퓨터. 아이패드에 USB 단자가 없듯 매킨토시에는 다양한 장치를 부착할 수 있는 확장슬롯이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자신의 제품에 타인이 무언가를 더하는 것을 싫어하고, 그 자체로 완벽한 것을 원하는 듯 하다. 그러나 자신의 독선, 모순, 갈등이 뒤죽박죽된 채 밀어붙인 매킨토시는 소비자의 마음을 전혀 읽지 못했다. 사용할만한 소프트웨어는 거의 없었고,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잘 제시하지 못했다. 매킨토시의 실패와 함께 애플에서의 입지는 추락했고, 스티브 잡스는 축출 당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에서도 여전히 성능과 디자인에만 집중, 소비자 입장은 고려하지 않았다. 큐브는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발표됐고, 또 망했다.
럭소: 스티브 잡스가 만든 회사 픽사에서 만든 첫 애니메이션 캐릭터. 원래 스티브 잡스는 픽사 핵심인력의 기술로 의료와 정부기관용 컴퓨터를 팔기 위해 회사를 설립했다. 자금난으로 직원들이 만들고 싶어 한 애니메이션에 대해 부정적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픽사의 주식은 상장 첫날 22달러에서 39달러로 급등했다. 또한 큐브를 만들면서 개발했던 운영체제 넥스트스텝은 그를 내쫓아낸 애플의 관심을 얻으면서 그가 컴백하는 계기가 됐다. 운이 좋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언제나 최고의 사람들을 끌어들이려 노력했고, 그들이 자신의 룰 안에서는 어떤 시도든 용인했다. 그 독특한 사업방식 안에서 천재들의 역량이 예측할 수 없는 것을 만들었고, 의 성공과 함께 하드웨어 위주의 사업가였던 스티브 잡스에게 대중문화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가치를 깨닫게 했다. 드디어, 그는 자신을 기쁘게 하는 기술과 기계 안에 대중을 기쁘게 하는 문화와 콘텐츠의 힘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이맥: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임시 CEO(interim CEO)로 복귀해 내놓은 첫 컴퓨터. 그는 복귀하자마자 15개이던 애플의 제품군을 ‘일반용/전문가용, 노트북/데스크북’으로 단순화 시켰다. “주변 사람들에게 무슨 제품을 추천해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추천할 수”있냐는 이유였다. 제품 수를 줄이는 것은 단기간의 성과에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10여년의 실패도 견뎠던 스티브 잡스는 강한 인내심을 발휘했고, 애플은 2008년 30개 이하의 제품으로 30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스티브 잡스의 성공은 독선적인 성격이 아니라 “성공한 기업가의 기준은 열정과 인내”라는 그의 말에 담겨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Think different’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제품에 정신적인 가치를 불어넣기 시작하면서 애플의 제품을 소비자의 문화 안에 집어넣었다. 이 고집스러운 ‘I’는 자신도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interim’이라는 걸 안 뒤에야 대중에게 자신의 세계를 전달하는 법을 익힌 것은 아닐까.
맥북에어: 봉투에 넣을 수 있는 얇은 노트북. 무대 위에서 직접 맥북에어를 봉투에서 꺼낸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은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일찍이 프레젠테이션을 하나의 쇼로 인식했던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발표 당시에도 매킨토시를 자루에서 꺼내는 쇼를 벌였다. 하지만 당시 프레젠테이션이 매킨토시의 신기한 기능을 전달하는 화려한 쇼에 가까웠다면, 복귀 후 그의 프레젠테이션은 이해하기 쉬운 한 줄의 문장, 소비자 입장에서의 효용성 강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애플은 업그레이드 된 제품을 지난 버전과 같은 가격으로 판매하고, 애플 II 시절부터 구형 모델에 대한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실시한다. A/S까지도 자신이 정해놓은 방식을 따라야한다는 자기중심적 사고. 하지만 기어이 사용자들이 좋아할 방법을 찾겠다는 집념. 독선적이면서도 세상과의 소통 법을 기막히게 잘 아는 사람이 가장 대중적이며 가장 배타적인 기계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 스티브 잡스가 내놓은 기계들. 아이팟은 음악 시장을,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세상 그 자체를 바꾸는 도화선이 됐다. 애플 I에서 키보드와 모니터 없이 회로 기판만 있는 제품을 내놓았던 스티브 잡스는 다시 버튼 하나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제품을 마지막으로 내놓고 떠났다. 그는 기어이 네모난 상자 안에 모든 것을 담았고, 그 안에서 사용자들이 각자의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수많은 ‘I’의 세상을 설계한 ‘I’. 그는 타인에게 자신의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법을 만들면서 결국 21세기의 가장 큰 개인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 사이 아이가 두려워 여자친구를 내팽개치던 남자는 세 아이를 갖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좋은 가장이 됐고, 리사와의 관계도 회복해 종종 행사에 함께 참석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스티브 잡스의 열정, 신념, 비전은 누구나 부러워할 것들이지만 흉내 낼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스티브 잡스의 성공은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부여받고, 기회에서 깨달음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사람은 착할 수도, 못될 수도 있다. 부유할 수도 가난할 수도 있다.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모든 것에서 ‘NEXT’를, 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성찰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세상의 기회다. 위대한 개인은 기회가 부여되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 개인이 우리의 세상을 바꾼다.
편집. 장경진 three@
블루박스: 스티브 잡스가 처음으로 장사를 시작한 기계. 공짜 전화를 걸 수 있는 기계로, 당연히 불법이지만 기존 체제에 저항하는 히피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시절이라 이런 행동이 오히려 멋지게 받아들여졌다. 스티브 잡스는 환각제 LSD를 즐겼고, 동양사상에 심취해 명상에 깊이 빠졌다. 이때부터 과일과 점액이 형성되지 않는 채소만 먹는 채식주의가 됐고, 특히 사과의 효능에 매료됐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부모로부터 입양됐다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져 “나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으니, 히피 문화와 동양철학은 정체성을 찾기 위한 방법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듯. 이때의 영향인지 그는 애플 초기 신입사원 면접에서 “LSD는 해봤나?” 같은 질문을 던졌고, “밥딜런이 나의 역할 모델이다. 딜런은 결코 정체하는 법이 없다”라고 말하는 예술가와 인문학자의 DNA를 가진 사업가가 됐다.
애플 I: 스티브 잡스가 처음으로 판매한 컴퓨터. 평생 애증의 관계가 될 스티브 워즈니악이 설계의 대부분을, 스티브 잡스가 사업을 맡았다. 애플 I은 모니터나 키보드 없이 회로 기판만 기본으로 제공되는 기계였지만 개인용 컴퓨터 시장이 시작되던 때라 그럭저럭 팔렸다. 돈도 없고, 대학 중퇴자에 잘 씻지도 않은 히피였던 그는 사업과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스티브 워즈니악을 조르고 졸라 애플에 참여시켰고, 대형 광고주들과 거래하던 홍보 전문가 레즈스 매케너에게 돈 한 푼 없이 수없이 전화를 걸어 설득하는 것만으로 광고를 맡게 했다. 또한 신기술을 가진 엔지니어 스카우트를 위해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를 연봉을 제시하기도 했다. 때론 콜라병을 팔고 어항 수리로 돈을 벌 만큼 가난했지만,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얻어내려 했다. 스티브 잡스가 앞으로 숱한 찬반의 대상이 된 시작점.
애플 II: 스티브 잡스가 20대 갑부가 되도록 했던 컴퓨터. 그는 인도 여행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건 칼 마르크스가 아니라 토마스 에디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대학에서 캘리그라피를 배우며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다. 작은 컴퓨터에서 온갖 프로그램이 돌아가도록 만든 기술은 스티브 워즈니악의 창조물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한 플라스틱 케이스에 모든 내용물이 들어가도록 엔지니어들을 몰아붙이고, 아름다움을 위해 냉각팬의 소음을 없애는 방법을 연구하도록 만든 건 그의 공이었다. 그는 “상자 속에 들어있는 것이라고 해도 가능한 한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며 회로기판마저 아름답게 만들 것을 주문했다. 또한 그는 ‘예비투자제안서’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기능/시간과 돈 절약/삶의 수준 업그레이드’ 등을 개인 컴퓨터의 장점으로 꼽았고, 이는 그대로 현실이 됐다. 당시 그를 만난 한 사람은 “지평선 너머를 내다보는 원대한 비전”을 가졌다고 평하기도 했다. 특유의 비전과 디자인 감각이 드러나기 시작한 순간.
리사: 스티브 잡스의 딸 이름을 딴 컴퓨터. 정작 스티브 잡스는 오랫동안 딸을 친자로 인정하지 않았고, 회사 매출 1억 달러를 올리는 엄청난 부자가 됐지만 리사의 어머니 크리스 앤이 극빈자 보조금에 의지할 만큼 양육비마저 제대로 주지 않았다. 그 사이 원하는 것은 상대를 속여서라도 이루는 스티브 잡스의 사업 방식은 사람들의 반감을 일으켰다. 심지어 그는 오랜 친구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스톡옵션도 주지 않았다. 또한 스티브 워즈니악은 과거 스티브 잡스가 자신과 함께 공동으로 일을 하고 받은 돈 중 대부분을 가로챘다는 걸 알고 분노했고, 스티브 잡스는 사과 대신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건 없었던 일이야”라며 부정했다. 스티브 잡스에게 진저리치는 사람이 늘어났고, 그는 자신의 딸 이름을 쓴 컴퓨터 사업에서 밀려나게 됐다. 뭔가 잘못되고 있었다.
매킨토시: 스티브잡스가 모든 것을 주도한 컴퓨터. 기술적인 면까지 일일이 관여하며 매킨토시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했다. 심지어 부하직원이 주목받는 게 싫어 그의 프레젠테이션을 망치려고 했고, 직원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내면 앞에서는 거부한 뒤 얼마 후 돌아와 자신의 아이디어처럼 포장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매킨토시 직원들을 일주일에 90시간 이상씩 일하게 만들었고, 그들에게 호텔 수준의 음식을 제공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연봉을 리사 개발팀보다 형편없이 낮게 책정했다. 그는 1984년 역사적인 매킨토시 CF를 통해 애플을 거대 컴퓨터 기업 IBM에 맞서는 민주 투사처럼 포장했지만, 매킨토시 팀은 가장 비민주적인 조직이었고, 그는 이해 불가능한 ‘I’였다.
큐브: 그가 애플을 나와 만든 회사 넥스트에서 만든 컴퓨터. 아이패드에 USB 단자가 없듯 매킨토시에는 다양한 장치를 부착할 수 있는 확장슬롯이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자신의 제품에 타인이 무언가를 더하는 것을 싫어하고, 그 자체로 완벽한 것을 원하는 듯 하다. 그러나 자신의 독선, 모순, 갈등이 뒤죽박죽된 채 밀어붙인 매킨토시는 소비자의 마음을 전혀 읽지 못했다. 사용할만한 소프트웨어는 거의 없었고,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잘 제시하지 못했다. 매킨토시의 실패와 함께 애플에서의 입지는 추락했고, 스티브 잡스는 축출 당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에서도 여전히 성능과 디자인에만 집중, 소비자 입장은 고려하지 않았다. 큐브는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발표됐고, 또 망했다.
럭소: 스티브 잡스가 만든 회사 픽사에서 만든 첫 애니메이션 캐릭터. 원래 스티브 잡스는 픽사 핵심인력의 기술로 의료와 정부기관용 컴퓨터를 팔기 위해 회사를 설립했다. 자금난으로 직원들이 만들고 싶어 한 애니메이션에 대해 부정적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픽사의 주식은 상장 첫날 22달러에서 39달러로 급등했다. 또한 큐브를 만들면서 개발했던 운영체제 넥스트스텝은 그를 내쫓아낸 애플의 관심을 얻으면서 그가 컴백하는 계기가 됐다. 운이 좋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언제나 최고의 사람들을 끌어들이려 노력했고, 그들이 자신의 룰 안에서는 어떤 시도든 용인했다. 그 독특한 사업방식 안에서 천재들의 역량이 예측할 수 없는 것을 만들었고, 의 성공과 함께 하드웨어 위주의 사업가였던 스티브 잡스에게 대중문화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가치를 깨닫게 했다. 드디어, 그는 자신을 기쁘게 하는 기술과 기계 안에 대중을 기쁘게 하는 문화와 콘텐츠의 힘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이맥: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임시 CEO(interim CEO)로 복귀해 내놓은 첫 컴퓨터. 그는 복귀하자마자 15개이던 애플의 제품군을 ‘일반용/전문가용, 노트북/데스크북’으로 단순화 시켰다. “주변 사람들에게 무슨 제품을 추천해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추천할 수”있냐는 이유였다. 제품 수를 줄이는 것은 단기간의 성과에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10여년의 실패도 견뎠던 스티브 잡스는 강한 인내심을 발휘했고, 애플은 2008년 30개 이하의 제품으로 30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스티브 잡스의 성공은 독선적인 성격이 아니라 “성공한 기업가의 기준은 열정과 인내”라는 그의 말에 담겨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Think different’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제품에 정신적인 가치를 불어넣기 시작하면서 애플의 제품을 소비자의 문화 안에 집어넣었다. 이 고집스러운 ‘I’는 자신도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interim’이라는 걸 안 뒤에야 대중에게 자신의 세계를 전달하는 법을 익힌 것은 아닐까.
맥북에어: 봉투에 넣을 수 있는 얇은 노트북. 무대 위에서 직접 맥북에어를 봉투에서 꺼낸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은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일찍이 프레젠테이션을 하나의 쇼로 인식했던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발표 당시에도 매킨토시를 자루에서 꺼내는 쇼를 벌였다. 하지만 당시 프레젠테이션이 매킨토시의 신기한 기능을 전달하는 화려한 쇼에 가까웠다면, 복귀 후 그의 프레젠테이션은 이해하기 쉬운 한 줄의 문장, 소비자 입장에서의 효용성 강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애플은 업그레이드 된 제품을 지난 버전과 같은 가격으로 판매하고, 애플 II 시절부터 구형 모델에 대한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실시한다. A/S까지도 자신이 정해놓은 방식을 따라야한다는 자기중심적 사고. 하지만 기어이 사용자들이 좋아할 방법을 찾겠다는 집념. 독선적이면서도 세상과의 소통 법을 기막히게 잘 아는 사람이 가장 대중적이며 가장 배타적인 기계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 스티브 잡스가 내놓은 기계들. 아이팟은 음악 시장을,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세상 그 자체를 바꾸는 도화선이 됐다. 애플 I에서 키보드와 모니터 없이 회로 기판만 있는 제품을 내놓았던 스티브 잡스는 다시 버튼 하나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제품을 마지막으로 내놓고 떠났다. 그는 기어이 네모난 상자 안에 모든 것을 담았고, 그 안에서 사용자들이 각자의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수많은 ‘I’의 세상을 설계한 ‘I’. 그는 타인에게 자신의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법을 만들면서 결국 21세기의 가장 큰 개인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 사이 아이가 두려워 여자친구를 내팽개치던 남자는 세 아이를 갖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좋은 가장이 됐고, 리사와의 관계도 회복해 종종 행사에 함께 참석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스티브 잡스의 열정, 신념, 비전은 누구나 부러워할 것들이지만 흉내 낼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스티브 잡스의 성공은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부여받고, 기회에서 깨달음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사람은 착할 수도, 못될 수도 있다. 부유할 수도 가난할 수도 있다.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모든 것에서 ‘NEXT’를, 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성찰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세상의 기회다. 위대한 개인은 기회가 부여되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 개인이 우리의 세상을 바꾼다.
10 Line list글. 강명석 기자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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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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