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쿠데타를 일으켰다. 시민들을 사살했다. 부정한 방법으로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축재했다. 막대한 추징금을 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투표권을 가졌다.

전두환
정승화: 전 육군 참모총장.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에게 암살 당한 뒤 계엄사령관을 맡았다. 전두환은 당시 보안사령관이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건을 담당하던 합동수사본부장이었다. 당시 그는 육사 11기를 중심으로한 군의 사조직 하나회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했다. 이에 정승화는 그와 하나회가 군 지휘 체계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 동해경비사령관으로 좌천시키려 했다. 그러나 전두환은 하나회 조직원을 통해 이 사실을 먼저 알았고, 정승화가 김재규와 암살을 모의했다는 누명을 씌워 체포하려 했다. 참모총장에게 얼토당토 않은 죄를 씌워 체포하려면 대통령의 재가가 필요하고, 대통령이 바보가 아닌한 그런 선택을 할리 없으니 대통령을 협박할 무력 동원이 필요하다. 정승화를 체포하겠다는 것은 쿠데타를 일으키겠다는 말과 같았다. 전두환은 1979년 12월 12일 쿠데타를 일으켰다. 당시 그는 자신과 대치하고 있던 장성들에게 남북 대치 상황에서 서로 수도에 군대를 끌어들이지 말자고 주장했고, 상대방이 이를 받아들이자 자신들의 세력만 군대를 끌고 들어와 쿠데타를 성공시켰다.



최규하: 12.12 쿠데타 당시 대통령. 전두환이 실질적인 권력을 잡은 뒤 대통령에서 물러났다. 이 과정에서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이 최규하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전두환은 권력을 확실하게 갖기 위해 1980년 5월 17일 전국적인 계엄을 선포하고 계엄사령관이 됐는데, 이 과정에서 국무회의가 회의 8분만에 계엄령을 승인하도록 압박했다. 한마디로 한 번 더 쿠데타를 일으킨 것. 또한 전두환은 1979년 12월 초 대통령 선출을 위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소집 당시 최규하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대의원들을 상대로 선거 공작을 기도하며 정승화에게 “합수부에서 그 사람들을 잘 지도하겠다. 최규하 씨가 대통령이 돼야 하지만 60-70%밖에 나오지 않으면 권위가 서지 않으니 대의원들에게 미리 공작을 해놓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규하는 5.17 쿠데타 이후 저항 없이 대통령에서 물러났고, 전두환은 “최규하 대통령 부탁으로 대통령에 출마”했다며 정권을 잡는다.



노태우: 전두환과 함께 12.12 쿠데타를 일으켰고, 5.17 쿠데타를 처음으로 논의한 다섯 사람 중 한명. 전두환에 이어 대통령이 됐다. 12.12 이후 전두환과 함께 제 5공화국의 모든 책임을 함께 져야 할 인물이라는 의미다. 물론, 광주에 대한 책임도. 광주 민주화 운동과 그에 대한 전두환을 비롯한 당시 군부의 진압 명령에 따라 벌어진 죄는 너무 길고 끔찍한 것이어서 이 지면에 다 옮겨 적을 수 없다. 다만 ‘5.18 특별법’ 제정 후 검찰이 공식적으로 확인한 당시 상황 중 하나만 언급하겠다. “11공수여단 63대대가 무차별 사격을 가해 마을 앞 저수지에서 놀던 중학교 1학년 방광범 군과 총소리에 놀라 달아나다 벗겨진 신발을 주으려던 국민학교 4학년 전재수 군 등 어린이 2명이 숨졌다. 공수 병력은 이어 주변 민가를 수식해 주민 권근립 씨와 박연옥 씨 등 4명을 끌어내 대검으로 찌르거나 총으로 쏘아 숨지게 하고 다른 5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이근안: 고문 기술자. 은퇴 후 목사가 됐고, 최근에는 자서전도 발간했다. 자신이 민주화 운동가들을 고문했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남영동 1985>를 본 뒤 “영화에서는 물고문이라고 해서 호스로 물을 막 퍼붓던데, 사실은 물에 적신 수건으로 호흡을 곤란하게 한 것인데 얼토당토않게 연출했다”고도 했다. 전두환 정권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공무원일 수 있었다. 민주화 운동을 한 대학생들을 강제징집, ‘프락치’로 이용하는 이른바 ‘녹화산업’이 전두환의 지시로 이뤄졌고, 또다른 학생들은 삼청 교육대에 끌려가 불구가 될 만큼 구타와 가혹행위에 시달렸다. 방송에서는 뉴스 시작에 무조건 전두환에 관한 동정이 나오는 이른바 ‘땡전뉴스’가 나왔고, 르뽀 프로그램에서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다룰 수 없어 철새들의 생태를 보도해야 했다. 국민학생 아이들은 북한이 금강산댐을 만들면 남한이 물바다가 된다는 정부의 발표에 겁을 집어먹고 부모님에게 돈을 받아 평화의 댐 성금을 냈으며, 담임 교사들은 누가 성금을 냈는지 안 냈는지 조사해야 했다. 전두환 정권은 결국 민주화 운동을 하던 박종철의 고문 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으로 무너졌고, 국민들은 자신의 대통령을 투표로 뽑을 권리를 되찾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 운동의 양대 산맥이자 노태우의 민자당과 합당을 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된 후 하나회를 정리하며 군의 사조직을 뿌리 뽑기도 했지만, 그의 재임 기간 도중 전두환과 노태우의 쿠데타 등에 대해 쿠데타로 인정하면서도 “역사에 맡기자”는 발언을 했고, 이후 법원에서는 12.12를 군사 반란이라고 규정하면서도 기소유예 처리했으며, 이후 다시 “성공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유명한 논리로 두 사람에게 면죄부를 줬다. 두 사람이 다시 법정에 선 것은 불법 비자금이 폭로된 후로, 김영삼은 5.18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해 그들이 역사가 아닌 법정에서 판결을 받도록 한다. 재판 도중 전두환은 자신의 쿠데타에 대해 “누란의 위기를 타개하려던 구국일념”이라고 말했고, 노태우는 “평가될지언정 사법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구형 받았으나, 이후 감형을 거쳐 김대중 전 대통령 당시 “국민 대화합”을 이유로 사면 복권됐다. 재판 당시 전두환 정권에 의해 목숨을 잃은 대학생 강경대의 아버지는 전두환을 향해 “내 아들을 죽인 살인마!”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전두환의 세 아들들이 그를 폭행했다. 우리의 역사는 가해자를 용서했다. 그러나 피해자를 위한 심판은 하지 않았다.



이순자: 전두환의 아내. 남편과 함께 청와대도 갔고, 쫓겨나듯 백담사도 가봤다. 전두환의 사면 복권 이후에는 남편과 함께 잘 살고 있다. 금실이 얼마나 좋은지 검찰이 남편의 비자금 중 206억 원을 추적당하자 추징금으로 전액 대신 낼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전두환이 스스로 말한 전 재산이 “29만 1천 원”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전두환의 아들 전재용은 전두환으로부터 167억 원의 비자금을 받으면서 증여세 74억 원을 내지 않은 혐의로 구속기소됐었고, 전두환의 손녀는 17세에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대지 116평의 음식점을 다른 사람과 공동 매입, 지분의 70%를 갖기도 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국가에 내놓아야할 추징금은 아직 1900억 원 정도. 공소시효는 1년 남았다.



강풀: 영화 <26년>의 원작자. <26년>은 오래 전부터 영화화가 시도됐으나 여러 이유로 제작이 연기됐고, ‘32년’이 된 뒤에야 개봉할 수 있었다. <26년>은 뮤지션 이승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직접 투자를 통해 이뤄졌다. <26년>의 영화 속 인물들은 단죄와 용서, 또는 자책 사이에서 갈등한다.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평범한 삶을 살던 수많은 사람들이 전두환에 의해 죽거나, 불구가 되거나, 인생 자체가 뒤틀렸다. 그 역사는 지금까지 이어져 그의 자식들도 말로 다 하지 못할 고통에 시달린다. 역사가 시민의 삶을 파괴했고, 법은 역사를 바로잡지 못했다. 그리하여 평범한 시민이 가해자에 대한 용서와 단죄 사이에서 고민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용서냐 단죄냐는 딜레마가 아니다. 다만 상식적인 판단과 판결이다. 이를테면, 죄인이 죄 값을 치르는 것.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다. TV토론 중 12.12 이후 전두환에게 6억 원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해 화제가 되기도 했으나, 이 사실은 이미 전두환이 12.12 쿠데타에 관한 수사중 검찰 신문을 받을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청와대 사금고에서 9억 원을 빼내 6억 원을 박근혜에게 줬다고 발언한데서 밝혀진 사실이다. 아버지가 독재자라고 해서 정치를 못할 것은 없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독재를 통해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을 금고에 보관해두고 있었고, 독재자에 의해 군 실세가 된 전두환은 그 돈 중 일부를 딸에게 전달했으며, 그 딸은 그 돈을 비롯한 아버지의 경제적, 정치적 유산을 바탕으로 정치에 나설 수 있었다. 마지막 TV 토론의 마지막 발언 시간에서, 박근혜는 정권 교체가 아닌 “시대 교체”를 내세웠다. 그가 말하는 시대 교체란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가해자의 시대의 종식인가, 아니면 역사를 통해 독재자로 평가받게 된 아버지의 시대를 다시 복원하는 시대의 교체인가.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시대의 모습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과거에 대한 명확한 평가와 정리가 없는 한 미래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뿐이다.



Who is next
전두환을 소재로 한 영화 <26년>의 투자자 이승환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섰던 싸이와 만난 휴 잭맨과 영화 <레미제라블>에 출연한 앤 해서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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