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앨범 보여드렸어요?”(무키) “네.”(만수) “뭐라셔요?”(무키) “차암, 재미있게들 산다.”(만수) “아, 나는 못 보여드렸어. 사진이 야한 건 아니지만 좀….. 부모님이 뭐라고 하실까?”(무키) 자신들의 맨몸 사진이 실린 앨범 를 테이블 위에 올려둔 채 두 명의 여자아이가 대화를 나눈다. 구장구장을 치는 무키와 기타를 치는 만수, 일각에서는 ‘올해의 걸그룹’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 이들의 이름은 무키무키만만수다. 목욕탕에서 누드로 찍은 사진을 실은 발칙한 앨범 재킷이나, 타이틀곡 ‘안드로메다’에서 ‘벌레벌레벌레벌레벌레’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독특한 후렴구는 무키무키만만수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들을 주목해야 하는 건 ‘지금까지 없었던 무엇’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이 아니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할, 무키무키만만수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가 무키무키만만수와 나눈 아래의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첫 번째 앨범 의 재킷 사진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다. 목욕탕에서 파격적인 누드를 감행했는데. (웃음)
무키: 그런가? 우리가 계획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무난한 수준이다. 사실 목욕탕에서 재킷 사진 촬영을 한다고 했을 때, 개인적으로는 ‘아, 드디어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완전 군살 없이 쭉 빠진 몸매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내 몸매를 만천하에 자신 있게 보여줄 기회라고 생각하고 찍었다. (웃음)
만수: 따로 콘셉트가 있는 건 아니었고, 그냥 목욕을 하고 싶어서 그렇게 찍었다. 부클릿에 실린 홍어 집이랑 실내낚시터도 우리가 좋아하는 학교 앞 장소들이다.
“이제는 노래 한 곡을 부르고 나면 목이 아프다” 기획부터 촬영까지 다 본인들이 한 건데, 타이틀곡 ‘안드로메다’의 뮤직비디오도 그렇게 만든 거라고 들었다.
무키: 그것도 그냥 날을 잡고 뭐라도 찍어보자, 하고는 배가 고프니까 라면을 먹다가 찍기 시작했다. 악기들은 무겁기 때문에 갖고 다니기가 너무 귀찮아서 음악을 틀어놓고 치는 척만 한 거다. (웃음) 카메라 테스트를 해보려고 우리 집에서 고양이를 찍은 것도 중간에 넣고. 그런 테스트 소스들까지 있는 대로 다 갖다 붙여서 완전 개똥 같이 만들었다.
만수: 연못과 샤워실 등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곳이 전부 다 학교 안이다. 우리한테 익숙한 공간들이니까 좀 자연스럽게 찍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무키: 편집할 때도 두 가지 안이 있었다. 하나는 습기가 가득 찬 샤워실에서 우리가 악기 치는 시늉만 하는 영상을 원 테이크로 가는 안이었고, 다른 건 모든 소스를 0.1초 단위로 잘게 잘라붙여서 정신없게 만드는 안이었다. 이 중 후자를 선택한 거지. 노래와 상통하는 의미는 없다. 그냥 박자만 맞춰서 편집한 거다.
사실 지난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동아리 돌곶이비스타소셜클럽이 기획한 ‘쓰레빠음악회’를 통해 얼떨결에 데뷔할 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던 것 아닌가.
무키: 뻥 하고 터진 이벤트 같은 일이었다. 공연하기 3일 전쯤 무키무키만만수가 결성됐고, 부를 노래도 너무 없어서 ‘머리 크기’ 딱 한 곡을 만들었다.
만수: 그런데 얌전하게 맞춰질 거라고 상상했던 것과 달리, 한번 합주를 해보니까 노래를 부를수록 흥분이 되면서 소리를 지르게 되고 엄청나게 과격한 음악이 나왔다. (웃음)
무키: 다 구장구장 때문이다. 구장구장을 치면 막 흥분이 된다.
한진중공업이나 강정마을 등 힘이 필요한 현장에서 공연할 땐 구장구장이 더욱 잘 어울리기도 한다.
무키: 처음 만들 땐 내가 한 달 정도 드럼 레슨을 받고 있었다. 할 줄 아는 악기가 그것밖에 없었는데, ‘쓰레빠음악회’가 열렸던 신이문역 앞에 야외고 노점들이 많아서 시끄럽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드럼 세트를 아예 준비할 수 없다기에 위아래가 있는 장구를 개조해서 직접 드럼을 만든 거다. 제일 개조하기 쉬울 것 같았다. (웃음)
만수: 투쟁 현장은 다른 공연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고 사람 수도 비교가 안 될 만큼 많다. 오천 명이 있을 때도 있으니까. 친구들도 엄청나게 많아서 훨씬 신이 난다.
무키: 초반에 집회 현장에 가서 ‘투쟁과 다이어트’ 같은 걸 부를 때는 의도적으로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원래 강철 목이라 할 만큼 튼튼한 성대를 가지고 있어서 수련회 같은 걸 가도 목이 절대 안 쉬었는데, 무키무키만만수를 하고 나서 일 년 정도 되니까 노래 한 곡을 부르고 나면 목이 아프다. 만수는 뭐, 원래부터 그랬고.
“만들어 놨던 노래들을 다 긁어다가 넣었다” 소리 지르는 부분이 많아서 삐삐밴드 생각이 난다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물론 노래는 본인들이 만든 것이지만, 달파란이 앨범 프로듀싱을 맡았다는 게 흥미로웠다.
만수: 삐삐밴드 이후로 이런 느낌의 밴드가 한동안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원래 내가 달파란 선생님 밑에서 영화음악 만드는 걸 도와드리면서 배우고 있었다. 밴드를 만들고 나서 선생님한테 “저 밴드도 만들었어요. 이상한 것 좀 하고 있어요”라고 하니까 “그래? 너네 앨범 만들게 되면 프로듀싱 내가 해줄게!”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로 우리가 계약하고 앨범을 내게 된 거다. 선생님은 우리가 진짜 이렇게 될 줄 모르고 그냥 말씀하신 게 아닐까….. 선생님은 별로 우리한테 터치를 안 하신다. “너희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러시지.
앨범을 전체적으로 들어보면 ‘안드로메다’나 ‘남산타워’처럼 굉장히 튀는 곡과 ‘2008년 석관동’, ‘식물원’처럼 서정적인 곡들이 고루 섞여 있다. 구성은 어떻게 짠 건가.
만수: 만들어 놨던 노래들을 다 긁어다가 넣은 거다. 선별해서 넣을 만큼 곡이 많지 않았다. (웃음) 초반에는 거의 무키가 싸이나 블로그에 쓴 일기를 긁어다가 가사로 썼다. 그게 ‘머리 크기’랑 앨범에 수록되지 않은 곡 하나가 더 있다.
무키: (노래 부르며) 네 옷은 참 예쁘다, 너도 그걸 알고 있는 것 같구나. 물론 내 옷도 예쁘지, 얼마나 애썼는데. (웃음) 그래서 옷을 바꿔 입자는 내용이다.
만수: 불러봤는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았다. 델리스파이스의 ‘고백’ 후렴구랑 비슷한 느낌? 너무 90년대 후반 인디 음악 같아서 앨범에는 넣지 않았다.
무키: 내가 하는 건 작곡이라고 하기에도 참 민망한 수준이다. 맨 처음에는 기타도 완전 기본코드밖에 못 잡으니까 그걸 한번 좡~ 치고 노래를 혼자 흥얼흥얼 해서 만수한테 보냈다. 그러면 얘가 그걸 듣고 음계로 만들어 준다. (웃음) 내가 의도했던 곡이 만들어져서 다시 나한테 오는 거다. 시간이 흐르니까 나도 기술이 좀 생겨서 이제는 녹음한 노래를 더블링까지 할 수 있게 됐다.
만수: 얘가 부른 노래를 듣고 ‘이 정도 코드를 의도했던 것 같은데?’라고 생각해서 곡을 만들어 보내면 맞다고 한다. (무키를 보며) 그런데 니가 엄청 빨리 좋아졌어. 원래 예전에는 진짜 말도 안 되게 만들어서 나한테 보냈는데, 이젠 정말 음악이 됐잖아. (웃음) 일이 많이 줄었다.
둘이 그렇게 음악을 하면서 공유하게 된 가치관도 있을까.
무키: 만수랑 놀기 시작하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한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하게 됐다. 원래 난 그런 개념이 정말 희박했다. 특히 한번 시작한 일을 오랫동안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어서, 밴드든 뭐든 이렇게 일 년 가까이 하고 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만수: 그런 점에서 나는 역으로 배우는 게 있다. 이전에는 일에 매여서 이걸 꼭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는데, 무키를 보면서 꼭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지금 학교에서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데, 고학번의 뻔뻔함과 무키한테서 배운 가치관이 잘 맞물려서 수업 땡땡이를 치고 지각을 해도 마음이 되게 편안하다. 처음만 어려운 거다. (웃음)
무키: “아니, 어떻게 수업을 안 갈 수가 있어?”라고 이야기하던 인물이 이상해졌다. 무키무키만만수를 시작하고 한 다섯 달까지는 얘가 매일 아침에 전화해서 나를 깨워줬다. 내가 “나 오늘 뭐 하지?” 이러면 만수가 너 오늘 무슨 수업 있고, 무슨 약속 있고 그러면서 스케줄러 역할을 해준 거다. 그런데 스케줄러가 점점 게으름을 피우고 학교도 잘 안 가고 있어.
만수: 아냐. 졸업하면 또 어떻게 변할지 몰라.
“10집까지 내거나 아예 1집만 내고 없어지거나” 두 사람을 보니 무키무키만만수는 이런 느낌, 이런 콘셉트라고 정의하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만수: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시작한 게 하나도 없고, 어쩌다 보니 이까지 온 거라 콘셉트라는 게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무키: 그런데 얼마 전에 트램폴린의 (차)효선 씨한테 앨범을 드렸더니 막 살펴보면서 “딱 너네 같다” 이렇게 이야기해서 기분이 좀 이상했다. 어떻게 만들려고 의도한 게 아닌데, 그냥 막 만들어봤더니 딱 우리 같다고 말하니까. 엊그제도 어떤 남자분이 “말은 되게 조용조용하게 하면서 공연할 때는 엄청 소리 지르는 게 콘셉트죠?”라고 물어보시는데 ‘아, 이게 우리 콘셉트인가?’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다. 계속 그런 식으로 별 생각 없이 활동을 하고 있었던 건데, 이제 다른 방식으로 공연하는 게 되게 힘들어져 버린 것 같기도 하다.
막 데뷔앨범을 냈으니 다음 앨범에서 그걸 확 깰 수도 있지 않을까.
만수: 다음 앨범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
무키: 없을 것 같다. 만약에 다음 앨범을 내려면 산울림처럼 10집 정도까진 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아예 1집만 내고 없어지거나. 그래서 2집을 꼭 내야 한다는 강박 없이 그냥 마음 편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만수: 어중간한 것보다는 나으니까.
무키: 그런데 앨범을 내면서 좋다고 생각한 건, CD가 선물용으로 정말 제격인 것 같다. 주변 친구들한테 나 이런 거 하고 있어, 내가 열심히 만든 거야, 이러면서 선물하는 거다. 그러면 선물을 좀 더 하기 위해서 앨범을 더 낼 필요도 있겠다. 아, 헛소리 하고 있네. (웃음)
각자 시도해보고 싶은 음악의 방향성은 어떤 건가.
만수: 어어부프로젝트 같은 걸 하고 싶은데, 무키무키만만수에서는 그런 욕심이 전혀 없다.
무키: 나는 황신혜밴드 같은 걸 하고 싶었다.
만수: (무키를 보며) 어느 정도 실현된 것 같아요? 몇 퍼센트?
무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에서는 가장 많이 노력한 것 같다.
어쨌든 벌써 데뷔한 지 1년이 되어 과거를 돌아볼 수 있게 됐는데, 소감이 궁금하다.
만수: 맙소사. 워낙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잘 못하는 편이라, 밴드라는 건 내 인생에 있어서 완전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여겼다. 이렇게 돼 버린 걸 보니 ‘아, 이것은 필연인가보다. 팔자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앨범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그래도 만들었으니까. (웃음)
무키: 누군가 우리 앨범을 불법복제해서 판매할 정도가 됐으면 좋겠다. 그 정도는 굉장히 대단한 일이라고 본다.
이번 앨범의 쇼케이스는 과연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웃음)
만수: 우리 둘 다 5월 말에 학교 졸업 심사가 있어서 약간 패닉이 온 상태다.
무키: 나는 조형관데, 차력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 무키무키만만수가 차력하는 밴드니까. 막 구장구장을 치면서 소리 지르고. (웃음) 쇼케이스는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는데, 연습할 시간이 별로 없어서 그냥 무난하게 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만수: 차력해, 차력.
글. 황효진 기자 seven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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