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년부터 99년에 걸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3부작을 만든 뒤 “할머니들만큼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한동안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리고 “영화는 못 봤지만 정말 수고하셨고 훌륭하십니다”라는 다소 씁쓸한 인사말을 듣는 데 지치기도 했던 변영주 감독은 “보지 않고서는 칭찬도 할 수 없고 욕도 하기 힘든 영화를 만들고 싶어” 극영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남편의 외도에 괴로워하다 자신도 다른 남자와의 관계에 빠져 드는 주부를 주인공으로 한 , 미성년과 성년의 경계에서 세상에 순응하지도 폭발하지도 못하는 열여덟 청춘을 그린 에 이은 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복기하되, 나에게 또 기회가 오지 않을지라도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를 잊지 않고자 하는” 그가 단단히 벼려 내놓은 무쇠 같은 영화다. 그리고 올해로 마흔 여섯이 되었지만 “여전히 아침이면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서 깨곤 한다”는 변영주 감독이 자신을 두근거리게 만든 영화들을 추천했다.

2012년 | 알렉산더 페인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영화중에서도 최고고, 조지 클루니가 출연했던 영화중에서도 최고예요. 조지 클루니라는 배우가 정말 훌륭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소위 ‘로컬리티’라는 것이 단순한 지역주의가 아니라, 그 공간 자체가 영화 전체의 정서를 담당한다는 걸 너무나 잘 보여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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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 클린트 이스트우드
“는 이번 영화 만들면서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인데, 이 작품이 좋은 이유를 이 작품에만 한정해서 말하긴 어려워요. 이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들은 정말 모두 다 좋거든요. 를 시작으로 그 후의 영화들은 각각 다른 것들을 묘사하면서도 모든 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요. 내가 정말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나이가 되어서 세상의 모든 것들과 일대일로 붙어 그 결들을 살펴볼 수 있는 지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대가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소설가 데니스 루헤인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한 도 있지만, 훌륭한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건 감독에겐 독이 든 성배를 마시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세 친구가 엮인 이 미스터리에서, 각 캐릭터의 마음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명실공히 거장의 자리에 오른 이 노감독은 한 사건이 만든 서로에 대한 불신과 오해가 어떻게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원작의 문제의식을 잃지 않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1971년 | 루치노 비스콘티
“조금 부끄러운 취향일 수 있는데 전 정말 낭만적이고 탐미적인 게 좋아요. (웃음) 초로의 작곡가가 아름다운 소년에게 사랑을 느끼는 역시 그런 탐미적인 매력이 있어요. 부르주아적인 낭만이라 해도 좋은데, 가령 그런 상상을 하는 거죠. 실제로 이런 영화는 존재하지 않지만, 같은 격변의 시대가 배경인데 그 와중에 죽어라 예쁜 여자 뒤만 쫓는 부르주아 남자의 이야기 같은 걸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취향이죠. 제가 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느낌도 그런 탐미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었어요.”
만약 탐미주의를 대표하는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가 자신의 소설 을 직접 영화화했다면, 완벽하게 아름다운 그레이 역으로 에 소년 타지오로 출연했던 비요른 안드레센을 골랐을 것이다. 주인공 구스타프가 자신이 그토록 추구하던 아름다움과 순수가 사람으로 현신한 듯한 타지오에게 마음을 뺏기고 그저 바라만 보는 과정이 말 그대로 너무 탐미적이라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안드레센의 미모는 때로 설명 없이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있음을 증명한다.

1962년 | 데이빗 린
“날 영화로 이끈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렸을 때 광화문에 있던 국제극장에서 70㎜로 상영했던 걸 봤죠.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신이 두 개 있어요. 영화 속에서 알리 역으로 나오는 오마 샤리프가 저 지평선에서 다가오는 롱 숏, 그리고 주인공 로렌스인 피터 오툴이 아라비아 족장 옷을 입고 노래를 부르다가 안소니 퀸을 만나는 장면을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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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 조지 루카스
“ 6부작은 언제나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할 때마다 보는 작품이에요. 저는 언젠가 이런 청춘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제게 는 청춘 연가거든요. 특히 모두들 ‘망작’이라고 했던 이 가장 좋았어요. 다스베이더의 탄생. 요즘은 모 통신사 광고에 그렇게 이용돼서 좀 싫지만, ‘워프’는 과학 기술이지 초능력이 아니라고요! (웃음) 어쨌든 제 꿈 중 하나는 에 대한 오마주 영화를 꼭 한 번 만들어보는 거예요.”
변영주 감독은 청춘물이라 말했고, 누군가는 광선검을 든 제다이의 정의감을 말할 것이며, 또한 누군가는 제국에 맞선 공화주의적 신념에 대해 말할 것이다. 그만큼 이 거대한 스페이스 오페라는 다양한 해석의 결을 지녔다. 제국의 등장과 공화정의 파괴, 그리고 영화 역사상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악당 다스베이더의 탄생과 그의 아들 루크의 등장 등 탄탄한 통시적 구조는 가히 압도적이다. 를 한 편도 보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단 한 편에라도 마음을 뺏긴다면 나머지 시리즈를 보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다.

글. 최지은 five@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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