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100퍼센트] 21세기의 시트콤을 구하라](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2031317204923069_1.jpg)
21세기 시트콤이 선택한 가족의 해체
시트콤이 어느 날 갑자기 21세기 가족의 탄생을 알린 것은 아니다. 이미 에서 김수미는 술에 취해 사위에게 뽀뽀를 하는 등 전통적인 어머니 상을 벗어났고, SBS 의 오지명은 미용실의 젊은 미용사에게 잠시나마 연정을 품었다. 부터 까지 이어지는 김병욱 감독의 시트콤은 한국 시트콤의 가족사다. SBS 에서 재혼 가정이 등장했고, MBC 에서는 노년의 로맨스와 재혼 과정이 그려졌다. 드라마에서는 존재감이 미미하던 노인들이 시트콤에서는 욕망의 주체가 된다. 그리고, 은 할아버지이자 경제권을 쥔 가부장 이덕화는 젊은 여성과 결혼하며 가부장부터 가족을 재구성한다.
그래서, 김병욱 감독이 에 ‘할아버지’를 출연시키지 않는 것은 상징적이다. 집안의 실권은 부모 없는 윤계상(윤계상)과 김지원(김지원)에게 있다. 까지 김병욱 감독의 시트콤이 가족의 재구성이라면, 는 가족의 해체다. 가족은 경제적 몰락을 겪고, 청춘들은 직장 때문에 부모와 떨어져 산다. 의 주무대인 희엔터테인먼트 사람들은 가족보다 동료들과 더 가족처럼 붙어 지낸다. 까지의 시트콤이 기존의 가족 제도와 시트콤의 형식을 유지하면서 변화를 수용했다면, 2012년의 시트콤은 전면적인 변화를 시도한다. JTBC 는 한국 부유층의 상징과도 같은 청담동을 통해 빈부 문제와 한국인의 허위의식을 풍자한다. 그러나, 는 기존 시트콤처럼 어머니와 자식, 또는 형제 자매의 관계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작품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는 메시지에 비해 그 틀이 눈길을 끌만큼 새롭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외양을 넘어서지 못하는 현실의 한계
![[강명석의 100퍼센트] 21세기의 시트콤을 구하라](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2031317204923069_3.jpg)
그러나, “대한민국의 2011년은 고물가, 트위터, 현빈, TV 오디션 프로, 안철수, 그리고 여전히 돈, 돈의 해였다”라는 대사로 시작한 는 그 호기로운 시대 선언을 이어가지 못했다. 백진희로 대표되던 88만원 세대의 고난도, 경제적인 위기에 처한 안내상 가족의 고단한 삶도 사라졌다. 출연자들은 김병욱 감독의 전작처럼 모여 식사를 하고, 게임을 하고, 연애를 할 뿐이다. 집안의 경제를 책임진 윤계상은 언제나 착한 미소를 지을 뿐,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에 대한 부담은 지워져 있다. 오히려 SBS 같은 과거 김병욱 감독의 시트콤에서는 잘나가는 의사라도 병원 소유주에게는 비위를 맞출 수 밖에 없는 속된 현실이 있었다. 가 후반으로 갈수록 출연자들의 애정관계를 중심에 둘 수 밖에 없는 건, 그들이 사랑 외에 관계를 맺고 이야기를 만들 현실이 휘발 됐기 때문이다. 동시간대에 방영하는 도 차세주는 아내와 이혼한 것이 아니라 사별한 것이고, 그는 모든 가족을 넉넉하게 품는 반듯한 가장이다. 젊은 선녀에 대한 연정이라는 설정을 지워내면, 는 과거 홈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상파 일일 시트콤도 과거와 달라진 설정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지상파 일일 시트콤은 ‘인디 시트콤’처럼 파격적일 수는 없다. 변화 중인 시대 속에서, 시트콤은 변화와 안정 두가지를 모두 충족시켜야 하는 딜레마에 있는 셈이다.
기로에 선 시트콤
![[강명석의 100퍼센트] 21세기의 시트콤을 구하라](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2031317204923069_4.jpg)
그래서, 시트콤이 쏟아지는 지금의 상황은 아직 ‘붐’이나 ‘전성기’보다는 생존을 건 진화와 퇴화의 기로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종편과 케이블 채널을 통해 작품 수는 늘어났고, 달라진 시대와 미국 시트콤의 영향은 한국 시트콤에도 변화를 요구한다. 그러나 제작 환경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고, 제작진은 달라진 설정으로 무엇을 말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시트콤의 진정한 21세기는 새로운 형식과 내용으로 대중을 만족시키는 작품이 등장하는 순간에 올 것이다. 어떤 미래학자들은 21세기동안 기존의 가족 제도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21세기의 시트콤 역시 그렇게 될지 모른다.
글. 강명석 기자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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