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패셔니스타’나 ‘올랜도 블룸 전 여친’ 정도로 서술되곤 하지만, 케이트 보스워스는 패션이나 사생활보단 필모그래피가 더 흥미로운 배우다. 14살에 로 데뷔를 한 그는 20대로 접어 들며 선배들과 연기력으로 맞붙어야 하는 작품들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케빈 스페이시와 를, 시고니 위버와 를 찍었을 때 평단의 반응은 냉담했지만, 케이트 보스워스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에서 영화의 감정선을 책임지고 이끄는 배역인 서부소녀 린을 연기했다. 케이트 보스워스는 자칫 톰보이에 그칠 수 있었던 린을 분노하되 절규하지 않고, 슬퍼하되 절망하지 않는 인물로 묘사해 냈다. 지난 22일 언론시사 후 이어졌던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할리우드에서 여배우가 이렇게 거친 역할을 맡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며 배역에 대한 짙은 만족을 고백했다. 그 만족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다음은 케이트 보스워스와 나눈 대화다.가느다란 체구로 소화하는 액션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육체적으로 힘들진 않았나.
케이트 보스워스: 액션 연기를 위해 훈련하지 않을 때는 더 마른 편이다. (웃음) 역할이 요구한다면 그게 어떤 것이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소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
“상대의 인종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이 좋은 배우인지를 볼 뿐” 월드 프리미어에 몰린 팬들의 관심이 뜨겁다. 한국 팬들을 만나보니 어떤가.
케이트 보스워스: 너무도 사랑스럽고 열정적이다! (웃음) 살면서 많은 프리미어를 다녀 봤지만 어젯밤과 같은 환영은 처음이었다. 다들 흥분해 있었고, 나는 그 자리에 장동건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기쁘고 영광스러웠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아시아 배우 장동건을 만났을 때 할리우드 배우로서 어떤 인상을 받았을지 궁금해 한다.
케이트 보스워스: 처음 봤을 때부터 그가 따뜻한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그는 무겁지 않게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면이 있다. 그는 주변 모든 이들이 편안하고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아시아 배우에 대한 서구 배우의 시선’ 같은 질문을 받는 게 조금 이상한데, 나는 오픈 마인드로 모든 인종과 문화를 환영하는 환경에서 자라났다. 그래서 배우를 볼 때도, 상대의 인종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이 좋은 배우인지를 볼 뿐이다.
강인하고 활달한 서부 여인을 잘 그려냈다. 혹시 염두에 두고 참조했던 작품이 있나.
케이트 보스워스: 에서 르네 젤위거가 강인하고 재미있는 서부 여성상을 잘 표현했던 것도 생각이 났고, HBO의 라는 시리즈도 떠올랐다. 하지만 어떤 특정한 작품을 염두에 두고 연기하진 않았다. 그보단 내가 묘사하고 싶었던 거친 서부 여성상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전반적인 고민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영화 속 린은 언뜻 거칠어 보이지만 그 속에 순수함과 귀여움을 담고 있다.
케이트 보스워스: 어렸을 때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살았다. 정말 너무 좋아서 실제로 주인공들이 되고 싶단 생각을 했는데, 어쩌면 내가 연기를 하게 된 계기도 부분적으론 그 때문일지 모른다. (웃음) 린도 마찬가지다. 물론 린은 러프하고 터프한 여성이고, 강인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순수함과 진실된 면이 내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의상이나 머리 스타일, 메이크업의 과정에 최대한 참여하는 편” 린을 연기하기 위해 붉은 머리로 염색을 주장한 게 본인이라고 들었다.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외양을 중요시 여기는 편인가.
케이트 보스워스: 염색은 아니고 가발이다. (기자들이 놀라자) 무척 비싸고 좋은 가발이라 티가 안 났을 거다. 하하. 내게 캐릭터의 외양은 굉장히 중요하다. 외양은 캐릭터의 내적인 면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거니까, 그래서 의상이나 머리 스타일, 메이크업의 과정에 최대한 참여하는 편이다. 린의 붉은 머리는 내 아이디어였는데, 열정적인 린의 성격과 불타는 석양이라는 배경에서 붉은 색을 떠올렸다. 감독님은 린을 검은 머리로 설정했던 거 같은데, 시각적 요소를 중요시 여기는 분이라 쉽게 양보하기는 어려웠을 거다. 그래서 “그럼 내가 직접 보여줄게”라고 말하고 진짜 가발을 쓰고 왔다. 보고 나니 수긍을 해주더라. 연기를 위해서 배우는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자신감 있게 해석할 수 있어야 하고, 좋은 감독들은 그런 배우의 선택을 인정해 준다.
린과 전사 사이의 로맨스가 지금보다 더 깊었으면 어땠을까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케이트 보스워스: 둘은 연인이 되기에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이지만, 기저에 깔린 고통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교감하고 가까워진다. 이런 순수한 동기가 영화 속 로맨스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이상으로 로맨스가 발전했다면 좀 우스꽝스러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린과 전사에겐 각자 가야 할 길, 각자의 목표가 있다. 물론 과감하고 충격적인 연출도 때론 예술적으로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스토리의 개연성과 캐릭터의 진실성이 담기지 않은, 자극을 위한 자극이어서는 안 된다.
린이라는 배역에 대해 ‘할리우드에서 여배우가 이런 배역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고 말한 바 있는데, 최근 당신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유독 신인 감독들과의 작업이 많다. 신인감독과의 작업을 선호하는 건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은 욕심의 발로인 건가?
케이트 보스워스: 물론 지난 두 작품들이 첫 장편 데뷔를 하는 감독들의 작품인 건 맞지만, 특별히 신인감독들을 선호해서 의도적으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언제나 좋은 대본과 캐릭터다. 물론 첫 장편을 찍는 감독들의 신선함과 건강한 흥분상태를 사랑한다! 그들에겐 모든 게 새롭고 다채로워서, 마치 처음으로 색깔이라는 걸 만난 사람들 같다. 그런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작업을 하면 그 에너지가 전염되는 걸 느낀다. (웃음)
당신은 배우인 동시에 스타일 아이콘으로도 유명하다. 세계의 네티즌들은 실시간으로 당신이 뭘 입었는지 주목한다. 동시대 대중들에게 영감을 주는 당신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가.
케이트 보스워스: 글쎄, 세계의 여러 나라를 방문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영감을 받는다. 누구든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면 새롭고 다른 것에서 자극을 받지 않나? 변화와 환기에서 영감을 얻는다.
글. 이승한 four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