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은 뜨겁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악다구니를 쓰거나 음모를 꾸미고 세상을 향한 증오로 끓어오른다. 대서양 그룹의 총수 태진(이순재)의 집안에서는 늘 전운이 감돌고, 곱게 차려입은 며느리들은 언제라도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자신의 욕망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이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원인 모를 결핍을 채우기 위해 맹목적으로 대서양그룹을, 아들을, 남자를 원한다. 김선영 TV평론가와 위근우 기자가 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주목했다. 다음은 각각 좌절된 여성 욕망에 대한 보고서와 재벌을 다루는 방식으로 재편된 이다. /편집자주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MBC 은 현재 한국 사회에 대한 잔혹한 풍속도처럼 보인다. 재벌과 가족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 아래 천민자본주의와 억압적 가부장제가 결탁한 전근대적 한국 사회의 모순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이 작품은 임상수의 와 함께 올 한해 가장 서늘한 ‘명품 막장 드라마’로 꼽힐 만하다. 두 작품이 그려내는 한국 계급사회의 폭력적 먹이사슬 구조에서, 최상위 포식자는 재벌 가부장이고 최하층은 하류 계급 여성이다. 그래서 상류층에게 철저히 유린당하며 끝내 스스로를 불사르고 마는 ‘하녀’ 은이(전도연)처럼, 하류층 출신 여성으로 신분상승에 도전하는 나영(신은경) 역시 결국엔 계급사회의 모순이 들끓는 용광로 안 부나비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모순의 시대가 낳은 괴물들 vs <욕망의 불꽃>│재벌과 여자, 그 욕망의 온도" />에서 시대의 모순이 압축된 공간은 대서양그룹의 창업주 태진(이순재) 일가다. 창업 50주년 기념식에서 자평했듯 ‘나라도 국민도 가난했던 시절, 맨손으로 상경해’ 한국 경제 신화의 주역으로 우뚝 선 이 재벌 성장사의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폭압적 근대사가 은폐되어 있다. 군부정권과 결탁하여 ‘돈이 되는 것이면 다 집어삼키며’ 부를 축적한 대서양은 개발독재 시대가 낳은 괴물이다. 정경 유착으로 성장한 재벌이 2000년대에는 친서민 이미지 뒤에 “요즘 쟤네 없으면 사업이 안된다”는 폭력조직, 사금융조직과 연관되는 모습은 그들 모두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동일함을 말한다. 이 폭력의 공모에 더 추가되는 것은 가부장제다. 11회, 자신의 시대 이후에 위기를 느낀 태진은 세 아들을 불러 대서양의 힘은 ‘곧 가족의 힘’이라며 단결을 당부한다. 하지만 무수한 외도를 통해 배다른 자식을 낳고, 자녀들에게 혹독했던 그의 가부장적 태도는 이 막장가족사의 원죄다. 영대(김병기)는 “가슴에 못을 박은 영감”이 어서 죽기를 바라고, 그 대신 장남 노릇을 해야 했던 영준(조성하)은 중년의 나이에 무력감을 느끼며, 외롭게 자란 영민(조민기)은 자신의 욕망이 무언지도 모른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가족에서 여성들은 소외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욕망의 대리인으로 남성을 앞세우는 것은 필연적이다. 금화(이효춘)는 자신의 아들들이 후계자가 되길 원하고, 순자(이보희)는 남편 영대가 차기 회장이 되어 ‘이 집을 무너뜨릴’ 날만 기다린다. 애리(성현아)의 자신감도 장관 아버지와 군부의 권력자였던 큰 아버지의 지원으로 가능한 것이며 그마저도 자신의 욕망을 따라주지 않는 남편에 의해 무시당한다. 영민에게 버림받은 것이나 다름없던 나영이 민재(유승호)에게 그토록 집착하는 것도 그만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켜 주고 정글과 같은 재벌가에서 살아남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후계자로서 계승권이 주어지지 않은 그들의 욕망은 암투를 통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좌절된 여성 욕망에 대한 보고서
이 드라마 속 세계의 모순을 잘 드러내는 것은 나영과 인기(서우) 모녀다. 계급사회 최하층으로서의 운명을 대물림하는 이 모녀의 비극은 울산 앞바다를 바라보며 아들 영민과 그 아들의 아들인 민재에게로 이어지는 태진의 맨주먹 성공 신화의 부계전통과 대조된다. 모녀의 처절한 신분상승적 욕망은 계급 사회의 한계와 정면으로 충돌하며 그 결과는 그들 몸에 폭력으로 새겨지거나 히스테리적 발작으로 드러난다. 나영은 덕성(이세창)의 사주를 받은 폭력배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고, 난산을 통해 인기를 낳으며, 반복적으로 구토하고, 자신의 악행에 대한 악몽과 환각에 시달린다. 어린 시절부터 자살 시도를 경험했던 인기는 조직 폭력배의 협박과 성상납에 고통당하며, 위악적 포즈로도 견디지 못하는 스트레스로 ‘몇 달에 한 번씩은 꼭 발작’을 한 뒤 끝내는 약을 먹는다.
바다 위 절벽 위에서, 내리치는 빗속에서, 절규하듯 선언하는 “운명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이들 모녀의 연극적 대사는 공고한 계급사회의 모순과 맞물려 종종 고대 비극적 위엄까지 성취한다. 계급의 ‘지붕을 뚫지 못한’ 그들 욕망의 좌절이 종국에는 서로를 겨냥한 채 자기파괴적 파국으로 치닫는 결말은 더 잔인하다. 그들이 사이에 두고 갈등하는 민재는 대서양의 진정한 적자요 후계자이며, 결국 누구도 온전히 차지할 수 없는 좌절된 욕망의 대상이다. 나영과 인기가 민재로 인해 서로에게 고통을 주는 아이러니야말로 이 모녀의 비극을 극대화하는 최고의 잔인한 장치다. 요컨대 은 한국 사회의 모순을 그려내는 냉정한 통속극인 동시에 드라마 사상 가장 잔혹하고 슬픈 여성 욕망에 대한 보고서다.
글 김선영
MBC 은 재벌의 탄생, 그 이후에 대한 이야기다. 이 드라마는 분명 대서양 그룹과 태진(이순재) 일가를 갈등의 중심에 놓지만 KBS 이나 SBS 처럼 재벌의 성장과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단지 태진의 고백과 애리(성현아) 집안과의 관계에서 대서양 그룹 역시 70년대 개발 독재와 함께 지금에 이르렀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드라마 속의 대서양 그룹은 생산적인 경제 주체로 그려지지 않는다. 개발 독재가, 그리고 재벌의 탄생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그나마 그것이 경제성장이라는 서사를 어느 정도는 만족시켰기 때문이었다. 에서 비리의 온상인 만보건설도 어쨌든 아파트를 비롯해 무언가를 계속해서 생산한다. 이것은 한국에서 재벌이 탄생한 것에 대한 최소한의 알리바이며 현재까지도 이 성장 서사는 재벌의 필요성을 재생산한다. 하지만 그 서사 혹은 신화가 현재에도 유효할 것인가. 이 재벌을 다루는 방식이 독특한 건, 대서양 그룹이 오직 한 가족 구성원들의 욕망의 대상으로서만 그려지기 때문이다.글. 김선영(TV평론가)
욕망을 ‘채우기’ 위해 모인 사람들
vs <욕망의 불꽃>│재벌과 여자, 그 욕망의 온도" />이 드라마가 앞서 언급한 기업 드라마처럼 영웅적인 주인공의 성공 신화를 그리는 대신, 가족극의 형태를 따르는 건 그래서 흥미롭다. 태진이 쓰러진 이후 대서양 그룹 오너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수많은 암투는 대부분 회사가 아닌 태진의 집 안에서 이루어진다. 태진의 장남 영대(김병기)가 셋째 영민(조민기)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건 거실이고, 나영이 금화(이효춘)에게 주식 소유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건 안방이다. 태진의 막내딸인 미진(손은서)은 마치 노트북 하나 사달라고 조르는 듯한 애교로 백화점의 소유권을 약속 받는다. 물론 애리와 나영이 안면몰수하고 펼치는 서늘한 공방전은 결코 평범하다 말할 수 없지만 그것이 영웅, 혹은 반영웅의 서사를 만들어내는 건 아니다. 여성들이 암투를 펼치지만 정하연 작가의 전작 KBS 와 이 드라마가 전혀 다른 건 그래서다. 다시 말해 그들은 대서양 그룹이라는 엄청난 기업을 인수하고 운영하기 위해 모인 능력자들이 아니다. 드라마 제목에서부터 ‘야망’이 아닌 ‘욕망’을 강조한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욕망을 ‘채우기’ 위해 대서양 그룹을 원한다.
이 그리는 재벌의 탄생, 그 이후
나영을 비롯해 의 인물들은 어떤 큰 뜻을 이루겠다기보다는 자기 안의 결핍을 채우는데 급급해 보인다. 나영이 “아버지보다 돈이 좋다”며 돈에 대한 집착을 보이게 된 것은 어릴 때 가족이 가난 때문에 겪은 수모 때문이다. 그것은 유년기에 일어난 일종의 균열이다. 그녀는 돈이라는 상징적 기호로 이를 메우려 하지만 아무리 그녀가 상당한 돈을 얻어도 그 처방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족스러울 수 없다. 마찬가지로 영대는 장남임에도 서자 같은 처지에 대해, 영준(조성하)은 능력에 비해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과 아내에게 무시당한다는 것에 대해, 영민은 영준에 대한 콤플렉스에 대해 각기 결핍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을 채울 대상으로서 아버지의 인정 혹은 권위를 상징하는 대서양 그룹을 욕망한다. 즉 그들의 스케일이나 경영 능력이 큰 게 아니라, 그들의 심리적 결핍을 채울 대상이 하필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인 것이다. 이것은 분명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최근 울산에서의 조선소 건설을 둘러싼 영준과 영민의 반목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인도주의자 대 악덕 자본가의 대결이 아닌 형제간의 자존심 싸움이다. 비록 영준은 좀 더 합리적으로 정순(김희정)을 비롯한 지역 주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만, 그것이 형제의 다툼 결과에 따라 한 마을의 존폐가 결정되는 비합리적 상황을 가려줄 수는 없다. 하다못해 기업의 이익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경제 논리조차 여기선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면에서 이 그리는 재벌의 탄생 이후는 개발 독재의 논리보다도 퇴보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과연 그들에게 대서양을 맡기는 것이 옳은 일인가. 드라마 안에서, 혹은 그 바깥에서.
글 위근우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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