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조금만 예뻤으면 좀 더 빨리 좋아했을 텐데” 하며 차 안에서 한도훈(류진) 이사장님이 김 비서(이수경)의 고개를 고쳐 어깨에 기대 편히 잘 수 있게 해주고 조심스레 손을 끌어다 잡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주책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지더군요. 난생처음 ‘나쁜 사람’의 편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당황스러웠습니다. 저는 언제나 정의의 편에 서 왔거늘 이게 어인 일이란 말입니까. 어쨌거나, 문제는 이 모든 게 착각과 오해에 의한 짝사랑이라는 사실 아니겠어요?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기도 유분수지,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나중에 사랑스러운 김 비서(실은 오하나 순경)가 스파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더구나 김 비서의 동생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백수 진상(김상경)이 정보국 요원 고진혁 팀장인데다가 김 비서와 이미 연인 사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충격이 심하실지 차마 생각하고 싶지도 않네요. “용돈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 이 옷, 직장인 코스프레. 눈물 난다” 라며 은근히 동정했던 진상이 이사장님을 잡아들이려는 수사요원일 줄, 어디 짐작이나 하셨겠습니까. 이사장님이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이렇게 남의 감정을 가지고 놀아도 되나 싶어요.
근본이 영 나쁜 사람은 아니시잖아요 대놓고 ‘나쁜 사람’이라 해서 기분 언짢으시겠지만 그냥 나쁘다기보다는 ‘범죄자’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겁니다. 이사장님은 엄연히 마약밀매라는 천인공노할 범죄에 가담하고 계시니까요. 도무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지만 말이에요. 솔직히 저는 이사장님이 또 다른 수사기관에서 심어 놓은 비밀요원이었다든지, 아니면 알고 보니 마약이 아닌 단순한 미술품의 밀반입이었다든지 하는 반전이라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FBI라든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국제적인 수사기관이 또 있을 수 있지 않겠어요? 미술품 밀반입이라면 인명에 관계된 범죄는 아니니 그나마 다행인 거고요. 물론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거, 잘 압니다. 하지만 이사장님의 암울한 미래가 눈에 빤히 보이는지라 딱한 마음에 이런저런 궁리를 해보게 됩니다.
사실 처음에는 이사장님을 제가 경멸해 마지않는 부류의 인간이라 여겨 삐딱하니 봤어요.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나 안하무인인데다 어려운 사람들 무시해치우는 남자는 답이 없는 법이거든요. 그런데 김 비서가 정보국의 감시용 목걸이를 아버지가 남긴 유품이라며 둘러대자 단박에 속아 눈물을 글썽이며 동정하는 걸 보니 제가 오해를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근본이 영 나쁜 사람은 아닌데 자칫 한 발 잘못 내딛는 바람에 한없이 그릇된 길로 가게 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안하무인인 건 일종의 허세고, 사람이 순수하고 귀가 얇아 누군가가 작심하고 꼬드기면 홀랑 넘어가 버리는 걸 거예요. 바른길로 이끌어줄 어머니는 안 계시는데다가 대쪽같이 꼿꼿한 아버지는 그저 어렵기만 하니 마음 붙일 곳이 없었겠죠. 그러다 보니 돈 하나에 의지하고 살았을 텐데 ‘국가투명성확립위원회 위원장’이라는 거창한 직함을 지닌 아버지가 그 직책에 걸맞게 전 재산 기부를 선언해버리셨으니 얼마나 혼란스러웠겠어요. 더구나 벌이는 일마다 실패를 하고, 채워 넣을 돈이 필요했을 테고 그래서 이젠 빼도 박도 못하게 된 걸 테고요.
뭐든 눈앞에 닥치면 다 견디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어떤 변명을 늘어놓는다 한들 이사장님이 무서운 범죄에 가담했다는 사실만큼은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경찰이란 신분을 사사로이 이용해 이른바 ‘삥’을 뜯어 온 오하나 순경은 이번엔 이사장님의 사랑을 이용해 마약밀매조직 일망타진이라는 수훈을 세우고 당당히 복직할 수도 있겠지만 이사장님이 저지른 범죄는 쉽게 용서받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니까요. 선과 악의 갈림길에 선 이사장님, 부디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몇 번씩이나 아버지께 털어놓으려다 원천 봉쇄되곤 하셨지만 김 비서에 의해 되살아난 ‘순수’의 불씨를 그냥 사그라지게 놔두지는 말아 주세요. 김 비서가 모처럼 옳은 소릴 하더군요. “과감하게 버리세요. 다 버리고 그 뒤에 오는 상황들은 걱정하지 마세요. 뭐든 눈앞에 닥치면 다 견디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이사장님이 ‘내가 어떤 사람인 거 같으냐?’ 묻자 ‘나쁜 사람은 아닌 거 같아요’ 라고 답하기도 했죠. 저 역시 동감입니다. 이사장님께 크나큰 상처가 될까 두려워 이 편지는 보내지 못할 테지만 올바른 길을 택하시리라는 믿음으로 기다려 보려고요. 부디, 부디 최악의 선택만큼은 하지 않으시길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장경진 three@
근본이 영 나쁜 사람은 아니시잖아요 대놓고 ‘나쁜 사람’이라 해서 기분 언짢으시겠지만 그냥 나쁘다기보다는 ‘범죄자’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겁니다. 이사장님은 엄연히 마약밀매라는 천인공노할 범죄에 가담하고 계시니까요. 도무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지만 말이에요. 솔직히 저는 이사장님이 또 다른 수사기관에서 심어 놓은 비밀요원이었다든지, 아니면 알고 보니 마약이 아닌 단순한 미술품의 밀반입이었다든지 하는 반전이라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FBI라든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국제적인 수사기관이 또 있을 수 있지 않겠어요? 미술품 밀반입이라면 인명에 관계된 범죄는 아니니 그나마 다행인 거고요. 물론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거, 잘 압니다. 하지만 이사장님의 암울한 미래가 눈에 빤히 보이는지라 딱한 마음에 이런저런 궁리를 해보게 됩니다.
사실 처음에는 이사장님을 제가 경멸해 마지않는 부류의 인간이라 여겨 삐딱하니 봤어요.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나 안하무인인데다 어려운 사람들 무시해치우는 남자는 답이 없는 법이거든요. 그런데 김 비서가 정보국의 감시용 목걸이를 아버지가 남긴 유품이라며 둘러대자 단박에 속아 눈물을 글썽이며 동정하는 걸 보니 제가 오해를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근본이 영 나쁜 사람은 아닌데 자칫 한 발 잘못 내딛는 바람에 한없이 그릇된 길로 가게 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안하무인인 건 일종의 허세고, 사람이 순수하고 귀가 얇아 누군가가 작심하고 꼬드기면 홀랑 넘어가 버리는 걸 거예요. 바른길로 이끌어줄 어머니는 안 계시는데다가 대쪽같이 꼿꼿한 아버지는 그저 어렵기만 하니 마음 붙일 곳이 없었겠죠. 그러다 보니 돈 하나에 의지하고 살았을 텐데 ‘국가투명성확립위원회 위원장’이라는 거창한 직함을 지닌 아버지가 그 직책에 걸맞게 전 재산 기부를 선언해버리셨으니 얼마나 혼란스러웠겠어요. 더구나 벌이는 일마다 실패를 하고, 채워 넣을 돈이 필요했을 테고 그래서 이젠 빼도 박도 못하게 된 걸 테고요.
뭐든 눈앞에 닥치면 다 견디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어떤 변명을 늘어놓는다 한들 이사장님이 무서운 범죄에 가담했다는 사실만큼은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경찰이란 신분을 사사로이 이용해 이른바 ‘삥’을 뜯어 온 오하나 순경은 이번엔 이사장님의 사랑을 이용해 마약밀매조직 일망타진이라는 수훈을 세우고 당당히 복직할 수도 있겠지만 이사장님이 저지른 범죄는 쉽게 용서받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니까요. 선과 악의 갈림길에 선 이사장님, 부디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몇 번씩이나 아버지께 털어놓으려다 원천 봉쇄되곤 하셨지만 김 비서에 의해 되살아난 ‘순수’의 불씨를 그냥 사그라지게 놔두지는 말아 주세요. 김 비서가 모처럼 옳은 소릴 하더군요. “과감하게 버리세요. 다 버리고 그 뒤에 오는 상황들은 걱정하지 마세요. 뭐든 눈앞에 닥치면 다 견디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이사장님이 ‘내가 어떤 사람인 거 같으냐?’ 묻자 ‘나쁜 사람은 아닌 거 같아요’ 라고 답하기도 했죠. 저 역시 동감입니다. 이사장님께 크나큰 상처가 될까 두려워 이 편지는 보내지 못할 테지만 올바른 길을 택하시리라는 믿음으로 기다려 보려고요. 부디, 부디 최악의 선택만큼은 하지 않으시길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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