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국의 삭털 VS 언론인들의 삭발
김흥국의 삭털 VS 언론인들의 삭발
김흥국의 삭털
월드컵은 4년마다 돌아오는 ‘맨 정신으로 미칠 수 있는 기회’다. 100만 명의 사람들이 단체복을 입고 거리로 나오고, 치킨 한 마리를 위해 경기 3시간 전부터 전화기에 매달리는 것은 애교에 불과하다. 누구도 시키지 않지만 자발적 ‘무리수’가 쏟아진다. 한국이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하자 최화정은 비키니 차림으로, 홍진경은 한복에 족두리를 쓰고 라디오 방송을 진행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안선영, 발레복을 입은 박소현, 합동 삭발식을 단행한 레이지본 등 각양각색의 자축 세리머니 가운데서도 단연 온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가수인지 축구인인지 정치인인지, 호랑나비가 나인지 내가 호랑나비인지 모호한 김흥국의 ‘삭털’이었다. 월드컵 전 “한국 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하면 30년간 길러 온 콧수염을 자르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그는 결국 남아공 원정응원에서 돌아온 뒤인 26일, 자신이 진행하는 MBC 라디오 에서 콧수염 면도 장면을 생중계했다. ‘김흥국-콧수염=김흐국’이라는 안타까운 반응과 동시에 ‘8강 진출 시 삭발, 4강 진출 시 전신제모’ 등 화려한 공약에 대한 기대를 이끌어냈던 그는 삭털 반나절만인 26일 밤 한국과 우루과이 경기를 보며 이렇게 외쳤을지도 모른다. “으아~ 으애에요!”
언론인들의 삭발
월드컵은 4년마다 돌아오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묻어버릴 수 있는 기회’다. 2010 남아공 월드컵 독점 중계권을 따낸 SBS는 ‘국민 밉상’이 된 대신 시청률을 얻었다. MBC는 월드컵 개막 1주일 전인 6월 4일, 4월 총파업을 이끌었던 이근행 노조위원장과 사내게시판에 김재철 사장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 PD 수첩 > 오행운 PD에 대한 해고 결정 등 41명의 서울지부 노조원에 대한 징계를 알리며 ‘화려한 숙청’의 서막을 알렸다. 노조 집행부는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슬로건 하에 부당징계에 항의하며 사장실 앞에서 삭발식을 감행했지만 월드컵 개막으로 온 나라가 들떠 있던 11일, 사측은 인사위 재심에서도 이근행 위원장 해고를 확정했다. 12일 대~한민국은 그리스전 2대 0 승리로 들썩였다. 시대가 MBC PD들의 머리카락만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23일, KBS PD 11명은 의 보도본부 이관을 규탄하며 집단 삭발식을 거행했다. KBS 공채 1기 기자로 출발해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언론 특보를 맡았던 김인규 사장은 MBC < PD 수첩 >을 비롯한 시사 보도 프로그램에서의 ‘PD 저널리즘’에 대해 줄곧 문제제기 해온 바 있다. 같은 날 한국은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2대 2로 비기며 16강에 진출했다. 월드컵과 함께, 그렇게 많은 언론인들의 머리카락이 잘려나갔다. 다음이 머리가 아니라는 보장은 없다.

사진제공. MBC, MBC 노조

글. 최지은 f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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