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스페셜 > 어머니,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어머니,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 SBS스페셜 > ‘가족의 페르소나’ SBS 일 밤 11시 20분
첫 장면은 지극히 심상하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부엌에 서있고 우리에게 등을 돌린 채 식사를 준비한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쌀을 씻으며 동시에 찌개에 물을 맞춘다. 너무나 익숙한 풍경, 어머니의 하루. 하지만 방송 시작 1분이 채 안되어 그 평온해보이던 일상은 그야말로 잔혹하게 부서진다. 어머니는 30분 전에 당신이 꺼내들었던 바가지에 다시 쌀을 붓는다. 뭔가 이상하다. 콩나물국 안에는 파만 한 가득이다. 이미 파를 넣은 국에 또 파를 잔뜩 썰어 넣은 것이다. 남의 전화번호, 제사, 생일까지 다 외우던 명석했던 이봉순 씨는 5년 전부터 계산을 자꾸만 틀리더니 결국 치매 진단을 받았다. 가족들은 갑자기 공황상태에 빠졌다. “어머니는 늘 그 자리에 있을 줄만 알았다”던 그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무한 반복되던 어머니의 일상이 멈추자 뒤늦은 회한으로 억장이 무너졌다. < SBS스페셜 >이 가정의 달 특집으로 기획한 다큐 3부작 ‘가족의 페르소나’가 1부 ‘아버지의 빈 집’에 이어 방영한 2부는 그렇게 한평생 가족의 뒤켠에만 서 있던 어머니라는 존재를 조명했다. 40년 전 종손며느리로 시집와서 시댁 식구들과 자식 5남매를 뒷바라지하며 살아왔던 이봉순 씨의 삶은 우리 어머니 누구를 대입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만큼 보편적이고 익명적인 어머니들의 삶 자체다. “내 것을 버려야 가족들이 편안해지는 삶”을 지내며, 자신의 꿈도, 여자로서의 인생도 잊고 살아온 그녀가 정말로 기억을 잃어가는 모습은 아프고 또 아프다. 이금희의 담담한 내레이션으로 진행된 방송은 이봉순 씨 가족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어머니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내고 가부장제 하의 가족 내 기혼 여성의 억압된 삶이라는 사회적 맥락까지 조망한다. 3부 자식 편까지 방송되고 나면 가깝지만 먼 존재, 타인으로서의 가족에 대한 이해와 가족 관계를 성찰하게 하는 한편의 의미 있는 가족 다큐가 탄생할 것 같다.

글. 김선영(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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