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집 밖으로 나올 시간입니다
이제, 집 밖으로 나올 시간입니다
총 맞은 것처럼 세경과 지훈이 떠난 다음 날, 짙은 황사가 하늘을 어두침침한 갈색으로 물들였던 그 날이 마치 세상 마지막 날처럼 느껴지진 않으셨나요. 저 역시 지난 반년을 함께한 이란 이름의 연인을 떠나보낸 슬픔에 혹은 그 마음을 읽고 있는 우중충한 날씨를 핑계로 집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은 채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토요일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전날의 공포를 잘 이겨낸 상처럼 일요일의 하늘은 이보다 더 푸르를 수 없더군요. 여전히 옷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은 겨울의 그것에 가까웠지만 코끝에 느껴지는 기운은 이미 봄처럼 간지러운 기묘한 반전. 황사를 이겨낸 푸른 하늘은 결국 피폐해진 영혼마저 집 밖으로 끌어내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먼 여행을 떠난 것도 아니요, 그저 발길 닫는 대로 하릴없이 쏘다니다가 동네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는 것이 다였지만요. 아, 우연히 MBC 을 찍고 있는 손예진과 이민호가 골목을 빠져 나와 제 앞을 쓱 지나갔다면 그날의 큰 소득이라면 소득이려나요.

사실 개인적으로 지난 일요일을 가장 신선하게 만들어 준 경험은 바로 집 건너편 골목탐험이었습니다. 이사 온 이후로 지난 몇 년간 창문 너머로 쳐다보기만 했지 너무 가까워서 궁금하지 않았던 곳, 항상 풍경이었던 곳으로의 첫 발자국. 같은 동네이름을 쓰지만 반대편 방향에 대칼코마니 마냥 놓여져 있는 골목과 집들 사이를 걷는 기분은 마치 오른손잡이의 왼손쓰기 같았습니다. 익숙하지 않아서 조심스럽지만 어쩐지 짜릿한 도전 같은 기분. 마치 영화 의 젊은 부부가 끝내 이루지 못한 미션을 홀로 이룬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언제나 바라보기만 했던 풍경 속으로 진짜 한 발을 내딛는 것. 그것이야 말로 우리의 삶을 거창하게도 ‘혁명적인 길’로 향하게 만드는 시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붕을 뚫던, 대문을 박차던 이제, 집 밖으로 나올 시간입니다.

글. 백은하 on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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