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 MBC <소울메이트>가 첫 방송된 뒤로 꼭 3년이 지났다. 사랑보다는 연애, 연애보다는 결혼이 목표인, 심지어 결혼마저도 부모의 간섭이나 온갖 음모로 얼룩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한국 드라마 안에서 오로지 사람과 사람의 감정 그 자체만을 들여다보았던 <소울메이트>는 우리가 정말로 기다려 왔지만 미처 기대하지 못했던 작품이었다. “연애는 입술을 떨리게 하지만 사랑은 가슴을 떨리게 한다”, “사랑은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하는 것이다” 를 비롯해 수많은 명대사와 섬세한 이야기로 우리의 가슴을 두드렸던 조진국 작가는 <소울메이트> 집필 후 20만부 가량 판매된 러브 에세이 <고마워요, 소울메이트>와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를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했다.

“제가 아는 분야는 사랑 밖에 없으니까요” 신문사 교열부 기자와 음악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다 MBC <두근두근 체인지>와 <안녕, 프란체스카>의 대본 작업에 참여하며 드라마 작가로 데뷔한 뒤 꾸준히 ‘사랑’만을 화두로 글을 쓰고 있는 이유에 대해 그는 말한다. “사랑을 할 때 치열하게 하는 타입이에요. 나 자신이 힘들 정도로 달려가는 편이다 보니 상처도 많았고 남들이 겪지 않았던 일도 많이 경험했죠.” 특히 사랑이라는 감정에는 좋아하는 것이나 행복한 감정 뿐 아니라 슬픔이나 미움, 질투와 두려움 등 여러 가지가 섞여 있어 그 무엇보다 무겁고 진지한 영역이기도 하기 때문에 조진국 작가는 여전히 사랑에 가장 관심이 많다. 그래서 궁금했다. 세상의 그 많은 사랑 이야기 가운데 그가 사랑한 러브 스토리는 무엇이었을까.

KBS <거짓말>
1998년, 극본 노희경, 연출 표민수

“준희(이성재)는 은수(유호정)와 결혼한 상태에서 선배 성우(배종옥)와 사랑에 빠져요. 불륜이죠. 하지만 <거짓말>이 좋았던 건 그 전까지 ‘불륜=나쁜 놈’ ‘배우자=착한 애’로만 바라봤던 드라마들과 달리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 그 사람의 배우자, 주위 사람들의 진심 하나하나를 짚어냈기 때문이에요. 드라마를 보는 게 아니라 한 권의 소설을 읽는 느낌, 누군가가 나에게 개인 대 개인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라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저는 국문과를 나왔고 원래 소설가가 꿈이었는데 이 작품을 보면서 처음으로 ‘드라마 작가라는 직업이 참 멋진 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日 <뷰티풀 라이프> TBS
2000년
“<롱 베케이션> <사랑한다고 말해 줘> <하늘에서 떨어지는 1억 개의 별> 등을 써서 ‘러브 스토리의 신’이라고 불리는 기타가와 에리코의 작품인데 제가 제일 좋았던 건 <뷰티풀 라이프>에요. 헤어 디자이너인 남자 슈지(기무라 타쿠야)와 다리가 불편한 도서관 사서 쿄코(도키와 다카코)가 처음에는 길에서, 다음에는 도서관에서 만나요. 쿄코가 슈지의 커트 모델을 해 주면서 인연이 계속되고 사랑에 빠지는데 결국 쿄코는 병이 재발해서 죽게 돼요. 시한부라는 소재는 흔하다고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저 울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통해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끼게 해 줘요. 그런 걸 보면 불륜이나 시한부 같은 뻔 한 소재들 역시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좋은 드라마가 될 수도 있고 막장 드라마가 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SBS <발리에서 생긴 일>
2004년, 극본 이선미 김기호, 연출 최문석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결말에서 재민(조인성)이 수정(하지원)과 인욱(소지섭)을 죽이고 자살하는 대목이에요. 우리나라에서 그런 이야기를 만들려면 반대가 정말 많았을 텐데 그걸 밀고 나간 게 강렬해서 좋았어요. ‘마음을 주지 않는 건…내 마지막 자존심이에요’ 같은 대사도 기억나고, 무엇보다 <발리에서 생긴 일>은 우리가 사랑할 때 느끼는 끈적거리는 감정을 놓치지 않았거든요. 누구나 사랑이 레모네이드 같고 사이다 같이 깔끔하길 바라지만, 사실 마시다 보면 삼키기 싫거나 거슬리는 것도 어쩔 수 없이 넘겨야 한다는 게 사랑의 중요한 부분인데 그걸 너무나 잘 잡아낸 작품이에요. 그래서 그 이후로 이만큼 끌리는 멜로는 아직 못 만난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계속 사랑하겠죠.”

조진국 작가는 요즘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대로 소설을 쓰고 있다. 역시 사랑 이야기다. 네 남녀가 등장하는 이야기로 설정은 도발적이지만 정서는 보편적이면서도 슬프게 펼쳐지면서 ‘진짜 멜로’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책을 쓰는 작업이 즐겁긴 하지만 드라마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경험이 그립다”는 그는 연내에 출간 예정인 이 작품의 드라마화 역시 함께 구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직도 많은 팬들이 기다리고 있는 <소울메이트>의 다음 이야기가 있다면 어떨 것 같은지 그에게 물었다. “동욱(신동욱)과 수경(이수경)이 다시 만난다면, 아마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싸우고 똑같이 오해하고 똑같이 힘들어 할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계속 사랑하겠죠.” 시작할 때부터 ‘나와 내 주변, 바로 우리의 사랑 이야기’를 해 보기 위함이었다던 <소울메이트>에 가장 잘 어울리는 대답이었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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