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펑펑 눈이 내려 운치를 더하는 헤이리의 한 레스토랑 겸 갤러리. 삼삼오오 모여 앉아 점심을 먹던 여학생들이 외마디 소리와 함께 우르르 달려 나간다. 굽 높은 구두가 나무 바닥을 울리고 접시에 담겨 있던 샌드위치가 바닥에 떨어져도 개의치 않는다. “F4다!!” 이 한 마디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 그리고 계단 위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F4, 1월 5일 첫 방송 되는 KBS <꽃보다 남자>의 네 남자 주인공인 구준표(이민호), 윤지후(김현중), 소이정(김범), 송우빈(김준)이다.

다과신의 쿠키 하나도 럭셔리하게

일본 만화가 카미오 요코의 순정만화 <꽃보다 남자>가 대한민국 여중, 여고생들의 교실을 휩쓴 것은 90년대 중반이었다. 제 1차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지기 전이라 해적판 <오렌지 보이>라는 제목으로 더 많이 알려졌던 이 작품은 우연히 귀족 학교에 들어간 서민 가정의 여고생이 부와 미모를 겸비하고 학교를 지배하는 네 명의 남학생 ‘F4’와 얽히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과 좌충우돌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신데렐라와 캔디를 절묘하게 조합시킨 듯한 설정과 잡초 같은 근성의 여주인공 츠쿠시, 다양한 매력의 F4, 그 중에서도 제 멋대로에 오만하지만 귀여운 구석이 있는 남자 주인공 츠카사 캐릭터는 이후 대만과 일본에서 연달아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져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꽃보다 남자>를 순정만화계 신(新)고전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드디어 2009년 한국에 상륙한 <꽃보다 남자> 역시 원작의 설정을 최대한 살려 ‘보는 재미’를 강화한 작품이다. 뉴칼레도니아와 마카오에서의 로케이션, 남해에서의 크루즈 신 촬영은 물론 주인공들이 다니는 ‘신화 고등학교’의 학생 식당으로 등장하는 이 레스토랑 역시 럭셔리한 분위기를 담아내기 위해 특별히 고른 장소다. 바로 옆에 위치한 ‘F4 라운지’에는 최신형 노트북까지 설치되어 있어 김범과 김준은 막간을 이용해 신나게 게임을 하기도 한다. 얼핏 보아서는 지나치기 쉬운 학생 식당의 음식들이나 차 마시는 신에서의 예술품 다기 세트, 블루베리 코코넛 쿠키 하나 하나에도 MBC <궁>을 비롯한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푸드 스타일링을 맡았던 고영옥 씨의 손길이 닿아 있다.

“나 오늘 <꽃보다 남자> 시청률 나오는 꿈 꿨는데…”

이 날 촬영의 하이라이트는 가난에도, 따돌림에도 굴하지 않는 씩씩한 여고생 금잔디(구혜선)가 자신에 대한 헛소문을 퍼뜨린 구준표를 찾아와 제대로 한 방 먹이는 장면. F4의 우아한 티타임에 난입한 금잔디가 화려한 돌려차기로 구준표를 쓰러뜨리는 설정에 모두들 환호하며 “준표 형, 저 끝까지 날아가야겠는데?”라며 웃자 바닥에 쓰러져 있던 이민호는 “얘네, 내 친구들이 아니야!”라며 하소연한다. 자신보다 20cm 이상 큰 이민호의 얼굴을 향해 하이킥을 날려야 하는 구혜선은 수차례 회전 방향을 확인한 뒤 “이야압!” 우렁찬 기합을 내지른다.

크리스마스에는 대구에서 촬영을 했고, 새해 첫날에도 촬영을 하고, 아마 설날에도 촬영을 하고 있을 거라는 <꽃보다 남자> 팀의 일정은 빡빡하다. 게다가 해외를 포함한 어디에 가도 팬들이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통에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기도 하다. 기대만큼 부담도 클 제작진과 배우들의 바람이 작용한 것일까. 로맨틱하고 섬세한 성격으로 금잔디와 구준표 사이에서 삼각관계를 이루는 윤지후 역을 연기하는 김현중이 동료인 F4 멤버들을 향해 조용히 입을 연다. “나 오늘 <꽃보다 남자> 시청률 나오는 꿈 꿨는데…” 모두의 기대에 찬 눈빛 속에서 “첫방 20%…”라는 희망찬 답이 이어진다. 물론 “꿈은 현실과 반대라던데?”라는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으며 다시 마음을 비우는 분위기로 넘어가지만, 어쨌든 <오렌지 보이> 시절부터 한국판 <꽃보다 남자>를 기다려온 소녀들은 1월 5일 밤, 드디어 TV 앞에서 목 놓아 외칠 수 있게 됐다. “F4다!!”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