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한혜리 기자]
배우 이기우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장소=루이비스
배우 이기우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장소=루이비스
강렬한 이미지일수록 기억하기는 쉬운 법이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배우 이기우는 대중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키기 위해 강렬한 이미지로 변신을 꾀했다. 이기우는 지난 7일 종영한 tvN ‘기억’에서 재벌 3세 신영진이란 역할을 맡아 소시오패스의 모습으로 완벽히 변신했다. 이기우가 보여준 악인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웃는 낯으로 사람들을 괴롭히고, 할머니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등 그간 이기우에게선 전혀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이기우의 강렬한 모습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시청자로 하여금 이기우가 그려낸 악인을 기억하게 했다.

10. 변신을 꾀했던 첫 작품이 끝났다. 지금 기분은 어떤가.
이기우 : 끝나고 나서 시원함보다는 섭섭함과 아쉬움이 더 큰 것 같다. 박찬홍 PD님을 비롯한 배우들, 스태프들 모두 즐겁게 촬영해서인지 더 보고 싶다. 아직까진 그리움이 더 크다.

10. 신영진을 쉽게 떠나보낼 수 있었나.
이기우 : 신영진과 이기우는 참 다르기 때문에 빠져나오는 데에는 어렵지 않았다. 원래 캐릭터에 몰입해서 생활까지 이어가는 타입도 아니다. 신영진은 다른 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할머니를 죽일 때라든지 박태석(이성민) 변호사를 괴롭힐 때라든지 일부 장면들이 잔상처럼 남는다.

10. 데뷔 이후에 악역은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
이기우 : 맞다. 신영진처럼 악역다운 악역은 처음이었다. 재미있었다. 극 중에서 누군가를 괴롭히는 게 재밌기도 하더라. 하하. 최대한 비열하게 보이고 싶어서 공부를 많이 했다. 감독님과 함께 세부적인 설정들을 그려나가면서 신영진이란 인물의 체계를 잡아갔고, 그 과정을 즐겼다.

배우 이기우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배우 이기우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10. 새로운 도전에 대해 주변 반응은 어땠나.
이기우 : 많은 분들이 ‘재수 없다’고 하시더라. 하하. 싫어해 주셔서 고맙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하다. 재벌 3세 옷이 안 맞으면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했다. 주변에서 그 옷이 잘 어울린다고 많이 칭찬해주셨다. 많이 성원해주셨기 때문에 다음엔 좀 더 완벽한 악역을 선보이고 싶다.

10. 그야말로 이기우에게서 서늘함을 본 건 처음이었다. 시청자들도 그렇겠지. 이런 모습을 낯설어할 대중의 시선이 걱정되진 않았나.
이기우 : 걱정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시청자들을 속인다는 사실에 신이 났다. 원래의 나를 잊게 하고 시청자들을 당황스럽게 만든다는 점이 재밌고 흥미로운 일이었다. 이런 모습이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부모님에게도 신선하게 다가갔던 것 같다. 부모님께서도 ‘기억’이란 작품을 굉장히 재밌게 봐주셨다. 나보다 모니터링을 열심히 해주셨다.(웃음)

10. 앞서 비슷한 이미지의 재벌 3세 악역들이 많이 등장하고 많은 주목을 받았다. 뒤늦게 재벌 3세 악역 도전에 부담감은 없었나.
이기우 : 솔직히 부담이 많았다. 첫 악역이기도 했고 앞서 많은 배우들이 ‘좋은 예’를 보여줬으니까. 다른 악역의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었다. 대본 나올 때마다 감독님, 작가님과 함께 철저히 분석했다. 한 신을 한 회처럼 생각하고 쪼개고 또 쪼개서 생각했다. 그렇게 신영진이란 인물의 포인트를 꺼낼 수 있었고 그 일련의 과정이 내게는 굉장히 재미있었다.

10. 그 ‘포인트’는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나.
이기우 : 선과 악이 동시에 공존하는 신영진의 모습이었다. 불안정하고 유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게 포인트였다. 신영진은 웃는 낯으로 허점을 보이면서 속으론 중요한 그림을 그려내는 인물이다. 표정 자체도 근엄한 표정이 아니라 늘 웃음 짓고 있잖아. 웃음 뒤에 항상 계산이 깃든 속내를 그려내는 게 포인트였다.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긴 했지만 또 가장 즐거운 작업이기도 했다.

10. 혹시 레퍼런스를 둔 캐릭터나 작품이 있었나.
이기우 : 특정한 캐릭터를 레퍼런스로 두지 않았다. 그저 앞에 악역을 하신 선배님들의 연기를 많이 봤다. 국내 배우 중에서는 영화 ‘관상’의 이정재 선배님, ‘신세계’ 박성웅 선배님의 모습을 관찰했다. 특히 웃는 장면을 눈여겨 봤던 것 같다. 외국 배우 중에서는 영화 ‘프라이멀 피어’의 에드워드 노튼이 있다. 당시 에드워드 노튼이 10대 후반에 찍었던 작품이었는데, 착한 얼굴로 이중인격을 연기하는 모습이 굉장히 소름돋더라. 이정재 선배님, 박성웅 선배님, 에드워드 노튼 등 대체로 그런 반전 있는 모습을 많이 관찰했다.

배우 이기우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배우 이기우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10. 악역은 또 다른 희열이 있을 것 같다.
이기우 : 신영진은 정(情)이란 것을 가진 착하디착한 변호사들을 괴롭히는 역할이잖아. 똑바로 서 있는 걸 잡고 쓰러뜨리는 못된 심보를 가진 인물이지. 이런 모든 일들이 평소에는 해볼 수 없는 일탈이었다. 진짜 재미있었다. 뭔가 쾌감이 있었다.

10. 스트레스도 풀리지 않던가.
이기우 : 스트레스가 풀리는 건 잘 모르겠는데, 내가 감히 ‘갓성민’이라 불리는 선배를 괴롭히는 게 묘하게 재밌더라. 하하.

10. 스스로 아쉬움이 남는 점이 있는가.
이기우 : 좀 더 신영진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시간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신영진의 모습이 더 자세히 설명됐더라면 아마 시청자분들이 더 미워하고 싫어했을 텐데.(웃음)

10. 이기우에게 신영진은 어떻게 남았나.
이기우 : 첫 경험을 시켜준 인물? 첫사랑 못 잊듯이 절대 못 잊을 캐릭터일 것이다. 연기 인생에 있어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신영진이 정신 차리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 마음으로 신영진을 떠나보내고 있다. 처음엔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기억’이란 작품 자체가 과거의 죄를 용서하는 과정을 그려냈잖아. 드라마처럼 나도 신영진의 죄를 용서하고 그와 화해한 것 같다.

10. 악역도 많은 종류가 있잖아, 다음번엔 어떤 악역을 맡고 싶은가.
이기우 : 신영진 같이 소시오패스도 좋고 사이코패스도 좋다. 가장 하고 싶은 건 정말로 도덕적인 결함이 큰 사람을 연기하고 싶다. 권력이나 명예만을 믿고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잖아. 힘과 돈으로 진실을 은폐시키는 사람. 그들은 정말 악의 중심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분노장애인 것보다 부와 권력을 이용해 못된 짓을 하는 ‘진짜 악인’을 연기해보고 싶다.

한혜리 기자 hyeri@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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