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수정 기자]
퍼포먼스 없는 아이돌 음악은 앙꼬 없는 찐빵 아닐까. 아이돌 음악은 노래, 비주얼 그리고 퍼포먼스가 3박자를 맞춰 펼치는 콘셉트 음악이다. 그중 퍼포먼스는 보는 음악의 정점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자 케이팝 한류 열풍의 핵심. 잘 만든 포인트 안무 하나가 노래의 인기를 견인하기도 한다. 아이돌이 컴백할 때마다 유튜브에서 쏟아지듯 만들어지는 해외팬들의 댄스 커버 영상도 퍼포먼스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에 퍼포먼스를 만드는 안무가의 역할도 함께 커졌다. 3분여의 무대를 위해서, 아이돌 그룹의 뒤에서, 땀을 흘리는 안무가들을 만난다.

이은지 안무가
이은지 안무가
‘여성 카리스마’. 이은지 EZIN 안무단장은 온몸으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사람이다. 큰 키와 또렷한 이목구비, 구릿빛 피부와 파워풀한 춤선이 무대를 장악하는 힘을 지녔다. 1999년 본격적으로 무대에 오른 뒤, 16년 동안 김종국, 휘성부터 에일리, 제시 그리고 앤씨아 등 다양한 가수의 춤을 췄다. 본격적으로 안무단을 이끈 건 이제 5년째, 여성 안무가로서 자신만의 카리스마를 쌓고 있는 이은지 단장은 일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프로였다.

Q. 현재 가수 앤씨아와 걸그룹 앤화이트, 힙합듀오 배치기와 작업 중이다. 앤씨아 신곡 ‘바닐라 쉐이크’는 어떻게 작업했나?
이은지 단장 : 앤씨아는 계속 귀엽고 큐티하다. 이번 음악이 그전에 나온 것보다는 걸그룹스럽다. 비트나 박자가 화려하고 치어리더 느낌이다. 안무가 경직된 느낌도 많고, 그동안 앤씨아가 해온 이미지가 있으니까 포인트적인 느낌을 넣어야 한다. 섹시하지 않는데 억지로 섹시하게 보이려 했다. 남들이 봤을 때 안 섹시한데 자기는 섹시하게. 귀여운데 잘 보면 야한 부분이 있다. 걔한테는 야할 수 없다. 춤을 보고 그런 궁금증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것을 노리고 짰다.

Q. 앤화이트 신곡 ‘천국’은?
이은지 단장 : 앤화이트는 상큼하다. 섹시하게 생긴 애들인데 상큼해서 깜짝 놀랐다. 여름이고 장마철이라 우산을 들었다. 댄서만 우산을 들고 그림을 만든다. 여자들은 산뜻하고 푸릇푸릇 파랗고 살랑살랑 느낌을 나게 한 뒤에, 댄서들이 전부다 우산으로 그림을 만들었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Q. 지금까지 작업하면서 가장 뿌듯한 가수는 누구였나?
이은지 단장 : 에일리. 잘되기도 했고, 하하. 지금은 배치기가 그렇게 뿌듯하다. 배치기 노래는 사랑 노래가 아니다. 솔지가 피처링을 하고 배치기가 랩하니까 ‘눈물샤워’ 느낌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랑 노래가 아니다. 인생 이야기다. 어떻게 풀까 고민하다가 콘셉트를 생뚱맞게 잡았다. 여자 댄서 여섯 명을 하는데 두 명은 ‘시카고’ 느낌 나게, 두 명은 조교 느낌, 두 명은 메이드 느낌을 담았다. 블링블링 ‘시카고’는 솔지한테 붙어서 섹시한 지팡이를 들고, 뮤지컬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군복을 입고 섹시한 조교 빨간 모자를 쓴다. 탁에게 붙어 군인 느낌의 군무를 선보인다. 무웅에 붙은 에이드는 메이드 옷을 입고 인형 같이 춤을 춘다. 랩으로 푸는 인생 이야기를 위트 있게 가사에 맞춰서 담았다. 걸그룹이 아니다 보니 포인트 안무는 없지만, 좋은 그림이 만들어졌다. 이런 시도는 처음인 것 같다. 가수나 회사에서도 칭찬을 해줬다.

에일리와 EZIN 안무단
에일리와 EZIN 안무단
Q. 작업을 하면서 기억에 남은 가수들은 누구인가?
이은지 단장 : 앤씨아가 잘됐으면 좋겠다. 어설픈 게 매력이고, 귀여운 친구다. 또 나인뮤지스와 피에스타. 나인뮤지스와는 ‘건’, ‘글루’를 했고, 피에스타와도 ‘짠해’를 작업했다. 나인뮤지스는 정말 내숭이 없는 친구들이다. 활발하다. 옆집 동생 같다. 피에스타 린지는 정말 잘하고, 차오루는 애교도 많고 분위기 메이커다. 예지는 걸걸하고 털털하다. 다들 실력도 있고, 춤도 잘추고, 잘됐으면 좋겠다.

Q. 다른 사람의 안무지만, 정말 잘해서 감탄했던 안무가 있나?
이은지 단장 : 씨스타 ‘나혼자’. ‘나혼자’는 의상, 안무, 노래의 삼박자가 잘 맞은 곡이다.

Q. 앞으로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가수가 있다면.
이은지 단장 : 사람자체가 매력적인 가수는 이효리. 댄서라도 해보고 싶다. 너무 매력 있다. 춤을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도 아닌데 사람 자체가 매력이 있으니까 아우라가 있다. 자이언티 같은 분들과도 해보고 싶다. 자이언티는 댄서를 안 쓰는데 자이언티, 크러쉬 같은 아티스트의 음악이 댄서들이 정말 좋아하는 스타일의 노래다. 멋있으면서 대중적인 안무를 할 수 있고, 콘셉트를 잘 짜서 공연이든 뭐든 해보고 싶다. 자이언티 음악은 정말 춤을 추고 싶게끔 만든다. 리듬감 있게 재미있게 노래한다. 그 노래는 자이언티의 목소리가 아니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자이언티 목소리는 한 음악의 소스 같다. 그 목소리에만 맞춰서 춤을 춰도 될 정도다. 노래를 부를 때 타는 리듬이 독특하니까, 아티스트적인 가수와 아티스트적인 안무가 만나서 방송이 아니더라도 함께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Q. 아이돌을 지켜본 입장에서 어떤 아이돌이 성공하던가.
이은지 단장 : 사실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성공하는 아이돌도 있고, 실력이 뛰어난데 안 되는 아이돌도 있다. 실력이 뛰어나고 얼굴도 예쁜 애들이면 다 좋다. 하하. 나는 전문가라서 그런지 실력이 좋은 아이돌 그냥 좋다. 그런데 대중이 원하는 마스크가 따로 있다. 전문가와 대중 사이에 그 중간 지점이 있다. 실력은 평균, 얼굴도 평균..

Q. 아이돌이나 댄서를 꿈꾸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솔직한 조언을 부탁한다.
이은지 단장 : 솔직히 어설프게 아이돌에 도전하지 말고 춤에 재능이 있다면 댄서를 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구석에 있고, 누구를 빛내는 직업이 아니라 같이 만들어 가는 직업이다. 스타에게도 우리가 없으면 안 된다. 우리가 같이 만들어 가야한다. 그림자 역할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 춤에는 소질이 있는데 노래에 소질이 없는 사람은 댄서로 전향해도 좋을 것 같다. 배우는 기간이 힘들지만, 안무가나 꿈을 찾아가는 것도 좋다.

노래를 그리는 사람들① 이은지 안무가, “보는 케이팝을 만들어 간다” (인터뷰①)

박수정 기자 soverus@
사진. EZIN 안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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