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x), god, 미미 시스터즈, AOA

너는 이미 패턴을 다 읽혔어, 더 싸워봤자 아무 의미 없겠어, 뭐 했다 하면 너는 그냥 쓰러져, 너 순식간에 벌써 게임 끝이야

f(x) ‘Boom Bang Boom’ 中

f(x) ‘Red Light’
에프엑스의 정규 3집. EP가 아닌 정규앨범을 연달아 발표하다니 걸그룹으로서는 정말 이례적인 행보다. 하긴 에프엑스는 비슷한 포맷이 반복되는 한국의 아이돌 시장에서 명확한 콘셉트와 음악적인 완성도로 균형을 잡아주는 존재가 아닌가.(그냥 에프엑스는 음악적으로 여타 걸그룹과 떼어놓고 보는 게 맞을 지도 모른다) 연달아 정규앨범을 내는 것도 에프엑스니까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한다. 타이틀곡 ‘레드 라이트(Red Light)’는 기존의 타이틀곡에 비해 음악, 콘셉트, 뮤직비디오에 있어서 가장 센 이미지를 전하고 있다. 역시나 기존의 걸그룹들이 한 전사 이미지와는 거의 겹치는 바가 없으며 나름의 스타일을 전하고 있다. 곡 중간에 마치 ‘승룡권’ 효과음과 같은 소리가 나는데 이 역시도 어색하지 않다. 타이틀곡보다도 오히려 빛나는 곡들이 많다. 타악기 소리가 전자음악과 절묘하게 섞인 ‘밀크(MILK)’는 요 근래 들어본 아이돌그룹 음원 중 단연 훌륭한 편에 속한다. ‘콩닥콩닥콩닥콩닥’이라고 시작하는 ‘무지개’는 마치 투애니원을 연상케 하는 스타일이라 호불호가 갈릴 듯. 테디 라일리가 참여한 ‘올 나잇(All Night)’은 복고적인 팝 R&B 곡으로 멜로디가 선명해 귀를 잡아끄는 트랙이다. 이 곡에서 에프엑스가 꽤 능숙하고 예쁘게 펑키 리듬을 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이런 기본적인 이해도가 음악을 좋게 들리게 하는 이유 중 하나.

god ‘Chapter 8’
지오디(god) 열풍이 거세다. 요즘처럼 거창한 프로모션을 한 것도 아니고, 단지 원년멤버가 모여 새 앨범을 낸 것뿐인데도 반응이 뜨거운 것을 보면 참 많은 이들이 지오디를 기다려왔나보다. 돌이켜보면 지오디는 달랐다. 90년대 중반 H.O.T.와 S.E.S. 이후 근 20년간 등장한 수많은 아이돌그룹들이 화려한 군무와 패션, 파격적인 콘셉트, 섹시, 귀여움 등의 이미지로 기억 속에 남았지만, 지오디만큼은 노래, 멜로디, 가사로 우리 가슴에 남아있다. 이번 앨범의 인트로 트랙인 ‘5+4+1+5=15’은 1~5집의 타이틀곡을 연주곡으로 엮었는데, 굳이 지오디의 팬이 아니더라도 이 곡을 들으면 익숙한 노래들이 떠오를 것이다. 특히 의미 있는 트랙은 6집 타이틀곡 ‘보통날’이다. 원곡은 윤계상이 빠진 버전이지만, 새 앨범에 실린 곡은 윤계상의 노래 부분이 추가돼 다섯 명이 완전히 모였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앨범에는 과거 지오디 특유의 미니멀하고 따뜻한 사운드, 가스펠적인 면을 잘 살리고 있다. 자신들이 과거에 일군 비옥한 토양을 외면하지 않은 선택이 대중에게 통한 것이다.

미미 시스터즈 ‘어머, 사람 잘못 보셨어요’
이것은 ‘블링블링’해지고, 더욱 엉큼해진 미미 시스터즈다. 미미 시스터즈의 전작 ‘미안하지만… 이건 전설이 될 거야’가 전설이 됐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이 앨범의 60년대 한국적인 록 스타일이 신선함과 함께 존재감을 각인시킨 것은 사실이다. 새 앨범에서는 프로듀서 이병훈과 함께 또 다른 스타일을 들려주고 있다. 전작이 시대적인 배경을 감안한 로파이 사운드였다면 신작은 음악적으로 깔끔하게 잘 다듬어진 사운드를 들려준다. 헌데 이것이 가요적인 어법에 매몰된 것이 아니라 미미 시스터즈의 새로운 개성을 잘 살려주고 있다. 특히 가사가 압권이다. ‘궁합도 안 본다는 택시로 5분’ ‘오늘은 낮술이니까 술값은 누나가 낼게’와 같은 가사가 미미의 도발적인 매력을 잘 대변한다. 요 근래 십센치의 가사들만큼이나 성적인 메타포가 많은 듯. 오묘한 느낌으로 가슴을 살랑거리게 하는 ‘배꼽’은 걸그룹 에프엑스가 노래하면 잘 어울릴 것 같다.(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맹목적인 찬양과 함께 엄청난 논란이 일어나겠지)

박준면 ‘아무도 없는 방’
배우 박준면의 첫 솔로앨범. 음악기자라 다른 분야는 관심이 없어서 박준면이 누구인지 모르는데 꽤 많은 뮤지컬에 출연한 베테랑 배우라고 한다. 헌데 이 앨범을 들어보면 그녀의 배우 이력이 전혀 궁금하지 않을 정도로 음악적인 스타일이 뚜렷하다. 단순히 노래를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지르는데 있어서 본인의 감정이 매우 풍부하다. 첫 곡 ‘우산은 하나’를 들었을 때에는 마치 신촌블루스 출신 보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블루지한 색을 잘 표현한다. 이 앨범에서 박준면은 전곡을 작사 작곡해 싱어송라이터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뮤지컬 배우가 노래를 할 경우 뮤지컬적인 발성, 즉 ‘송쓰루(Song Through, 대사 없이 노래로 진행) 뮤지컬에서 볼 수 있는 연기 풍의 노래인 경우가 많은데 박준면은 결코 그렇지 않으며 자신이 만든 곡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다. 고경천, 이기태 등 국내 정상급 연주자들의 연주도 훌륭하며 특히 오르간이 적극적으로 배치되고 있다. 참 매력적인 음악과 보컬인데, 음악만 본업으로 해서 이런 스타일을 영위해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배우니까 가능할지도.

원모어찬스 ‘one more chance 2nd mini’
원모어찬스의 두 번째 EP. 원모어찬스는 작곡가 최고 등용문으로 꼽히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선후배 출신인 정지찬(8회 대상)과 박원(19회 대상)이 결성한 듀오다. 13살의 나이 차이. 공동으로 작사 작곡을 맡고 노래는 주로 박원이 부른다. 원모어찬스는 정지찬이 1997년 나원주와 함께 듀오 자화상으로 가요계에 이름을 알린 후 오랜만에 시도하는 2인 파트너 작업으로도 관심을 모았다.(자화상의 ‘나의 고백’은 발라드 명곡으로 남아있다) 정지찬은 작곡가, 솔로활동을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여 왔다. 원모어찬스를 통해서는 힘을 뺀 편안한 스타일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여기서 힘을 뺐다는 것은 장식을 덜어냈다는 표현이다. 트렌드가 점점 가볍고 편한 음악으로 흐르면서 ‘걸어 간다’ ‘만나러 간다’와 같은 절절한 발라드들이 요새 잘 통하지 않는 편이다. 때문에 이런 음악들이 더욱 반갑고 가슴에 와 닿는다.

슈가볼 ‘Nuance’
스타 부재에 시달리고 있는 인디 신에서 슈가볼(고창인, 소이빈 페이스트, 이혜진)은 최근 눈에 띄게 팬덤을 늘려가고 있는 팀이다. 음반, 음원 성적도 좋고, 나름의 아이디어를 통한 단독공연이 매진을 기록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슈가볼의 음악은 현재 국내에서 사랑받고 있는 어쿠스틱 풍의 음악부터 적당한 R&B까지 걸쳐 있다. 즉, 인디에서 각광받고 있는 트렌드를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편안한 사운드를 추구하지만, 완성도도 출중한 편. 말끔한 연주 위 고창인의 보컬은 여성 팬들의 귀에 쏙 들어갈 만큼 유려하다.(고창인은 페이퍼컷 프로젝트라는 조금 다른 성격의 팀도 이끌고 있다) 이 앨범에 실린 ‘농담 반 진담 반’ ‘머리 쓰다듬지 마’을 한 번만 들어봐도 왜 슈가볼이 요새 대세가 돼가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결국은 음악.

AOA ‘단발머리’
AOA는 올해 걸스데이, 에이핑크와 함께 가장 인기를 드높인 걸그룹으로 기억될 것이다. 팬들이라면 기억하겠지만, AOA는 밴드 콘셉트로 구성된 AOA 블랙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밴드로 나왔을 때는 큰 반응이 없더니, 섹시한 퍼포먼스가 함께 한 용감한 형제의 곡 ‘짧은 치마’로 나오자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어쩌면 AOA는 이 땅에서 밴드가 정말 대중에게 다가가기 힘들다는 것을 몸소 증명한 팀이 아닐까. ‘단발머리’ 역시 ‘짧은 치마’에서 이어지는 스타일의 댄스곡이다. 과도한 퍼포먼스는 덜어냈지만, 노래 풍은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판타지’ ‘조아 요!(Joa Yo!)’ 등은 꽤나 사랑스러운 콘셉트의 달콤한 곡인데 나름 잘 어울린다. 이제 AOA는 올해 거둔 소기의 성과를 오래 끌고 가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밴드 콘셉트는 다시 시도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밴드로 나와 주길 바래보지만.

더티 룹스 ‘Loopified’
스웨덴의 무서운 신인으로 떠오른 밴드 더티 룹스의 데뷔앨범. 더티 룹스는 일반적인 록밴드와는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다. 조나 닐슨(보컬, 건반), 헨리 린더(베이스), 아론 멜러거드(드럼) 세션 연주 생활이 무료해 팀을 결성하게 된다. 보통 세션 맨 출신들이 밴드를 만들면 연주는 화려하나 음악이 팝의 관성에 머무르는 경우가 있는데 더티 룹스는 기발함 그 자체다. 이들의 가장 큰 강점은 대중성. 아바, 맥스 마틴을 배출한 나라의 밴드인 만큼 전 곡의 멜로디가 대중적이다. 그럼에도 여기 저기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낭중지추처럼 도드라진다. 데뷔 전부터 스티비 원더, 퀸시 존스, 데이빗 포스터 등의 거장부터 아비치, 아담 리바인 등 최근 잘나가는 뮤지션들이 찬사를 보냈다는 사실이 수긍이 갈 정도. 세 명이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내기 때문에 편곡에 대한 아이디어가 상당하다. 전반적으로 곡들이 댄서블하다. 완전히 새로운 음악은 아니고, 왕년의 티어스 포 피어스, 홀 앤 오츠와 같은 출중한 연주자들이 결성한 팀들의 사운드가 떠오르기도 한다. 케이팝과 협연을 해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노기자카46 ‘깨닫고 보니 짝사랑’
노기자카46의 싱글. 노기자카46은 AKB48의 뒤를 이어 등장한 일본이 인기 걸그룹이다. 일본에서는 8장의 싱글이 연속으로 오리콘 주간차트 정상에 오르며 신흥 강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노기자카46은 이 8장의 싱글을 한국에도 그대로 발매하며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실 국내의 경우 정서상의 문제로 인해 공중파에서 일본음악을 거의 틀지 않기 때문에, J-팝 아티스트의 프로모션이 쉽지 않다. 때문에 일본 메인스트림 아티스트들은 한국 진출에 관심이 크지 않은 편이다. 엑스 재팬부터 시이나 링고까지 마니아를 거느린 록 뮤지션들은 워낙에 음악에 대한 팬들의 충성도가 높기 때문에 음성적인 통로, 또는 팬클럽 활동으로 인기를 굳힌 경우다. 때문에 노기자카46와 아이돌그룹이 공중파 활동 없이 인기를 모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음악을 들어보면 일본의 아이돌그룹이 이제 국내 아이돌그룹과는 음악적으로 상당히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싱글의 록의 질감, 엔카 풍의 멜로디가 도드라진다.

메클릿 하데로 ‘We Are Alive’
에티오피아 출신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메클릿 하데로의 새 앨범. 메클릿 하데로는 기본적으로 재즈 보컬리스트의 색이 강하지만, 동시에 통기타를 연주하는 모던포크 뮤지션의 정서도 지니고 있다. 메클릿은 흑인으로 외모는 빌리 홀리데이를 연상케 하지만 눈을 감고 노래를 들으면 재즈를 하는 조니 미첼이 떠오른다. 2010년에 나온 데뷔앨범 ‘온 어 데이 라이크 디스(On a Day Like This…)’는 미국의 음악전문지 필터 메거진을 통해 “뉴욕 재즈와 미국 서부해안의 포크음악 그리고 아프리카의 화려한 퍼포먼스의 결합이라는 평을 얻기도 했다. 처음 이 앨범을 들었을 때에는 개인적으로 재즈와 모던포크와 결합이 유려하게 이루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새 앨범은 특정 장르로 쏠리지 않고 발칸 집시왈츠, 에티오피아 전통 음악 등 보다 이국적인 색이 강하게 느껴진다. 특유의 ‘딥’한 감성은 여전하다. 한국 재즈 페스티벌에 다녀간다면 좋은 반응을 얻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SM엔터테인먼트, FNC엔터테인먼트, 싸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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